마가(MAGA)와 천인(千人) 계획 사이에서 K-브레인이 줄줄 새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을 각료로 기용했고, '세계 정상급 과학자 1000명의 귀국'을 외치던 시진핑 주석은 딥시크 쇼크로 서구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다. 반면, 과학기술계 카르텔 비난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실망한 한국 과학자들은 고국을 떠나고 있다. '두뇌=국력'이라는 절박한 현실인식 아래, 리버스(reverse) 브레인 드레인의 역발상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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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합성 일러스트 [김윤주 기자] |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두뇌 유출로 번역되는 인재(人材) 이탈 현상을 말한다. 고급 인력이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은 시장원리상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사람, 물자, 자본이 국경 없이 옮겨 다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추억이다. 호시절은 지나갔다. 각자 문을 닫고 '나 혼자 산다' 모드로 돌입했다. 특히, 과학기술이 국력의 척도가 되는 이 시대에 두뇌 유출은 곧 심각한 국가 경쟁력의 훼손 요인이 된다. 더구나 수출, 그것도 고등교육까지 이수한 우수 이공계 두뇌들이 주도하는 R&D발(發) 혁신제품 시장 개척에 국가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나라 같은 무역대국에게는 치명상으로 작용한다.
선각자들은 인재의 중요성을 예전부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해왔다. 역사적 공과는 차치하고라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시동을 걸면서 해외 우수인재 유치를 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 애국심에 호소하며 읍소하는 삼고초려 작전은 물론이고, 파격적인 연봉과 연구 환경에다 주택 제공이나 자녀 진학지원 같은 개인적 인센티브까지 초특급 대우를 해줬다. "우리가 자본이 있나 뭐가 있나, 머리 하나밖에 더 있나"하는 게 당시 정서였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천재 1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사람이 전부라는 '인재제일 경영'을 펼쳤다. 고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은 1988년 취임하면서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론을 본 딴 과학인재 10만 양병,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10만 군 해커병 양성'을 주장하며 현대 사이버전에 대비하자는 예지력을 선보였다.
앞선 세대의 이런 지혜가 무색하게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인재관리 현황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최근 우리나라 인공지능(AI)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2020년 이래 급감한 것은 국내 인재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등으로 해외 취업을 나간 이유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뿐인가. 삼성전자 등 국내 유수기업의 전·현직 엔지니어들이 중국 같은 추격국가로 비싼 몸값에 스카우트돼 가거나, 고의적인 기술 빼돌리기를 저질러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난다. 왜 코리아 엑소더스 사태가 발생하고 있을까.
원인은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국과 중국의 기술전쟁으로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 중국 과학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스파이 색출 작전을 벌였다. 미국에서 기술 정보와 지식재산권(IP)을 탈취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저지하겠다며 '차이나 이니셔티브'(China Initiative)'라는 범정부 수사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 결과, 중국 과학자들의 본국 귀국 비율이 75%까지 올라갔다. 미국은 대중국 제재로 공백이 생긴 대학, 연구소의 빈자리에 한국 유학생과 박사들을 두 팔 벌려 받고 있다. 중국도 '천인 계획'을 앞세운 자국 인재 유치, 양성과 더불어 이웃 한국과 일본의 고급 두뇌에도 온갖 추파를 던지고 있다. 한국 일류 기업, 연구소의 기술자와 과학자를 몇 배나 더 높은 연봉으로 유혹한다. 이미 일본 최고 도쿄(東京)대학 재학생의 13%를 중국 학생들이 차지할 정도로 기술 선(先)확보까지 나서고 있다. 요는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하는 해외 경쟁국에 한국의 우수한 두뇌를 뺏기고 있다는 말이다.
둘째, '한국이 싫어서'하는 혐오성 탈출 정서 때문이다. 우리나라 R&D 환경은 자율성을 억제하는 상하 위계질서와 관료주의 연구행정으로 천재들을 숨 막히게 하는 답답함이 남아있다. 창의력을 가로막는 케케묵은 규제의 과감한 혁파와 함께, 연구 풍토를 선진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연구 성과를 창의적인 개발자에게 되돌려주는 특허 등 지식재산(IP) 제도의 정비도 미흡하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석학으로 창업까지 했다가 까다로운 연구비 관리 규정 때문에 재판에 시달린 끝에 싱가포르 국립대 초빙교수로 한국을 떠났다가 최근 카이스트 교수로 복귀한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의 여정은 기술사업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면, 어떻게 두뇌 유출의 물꼬를 되돌릴 것인가.
정부와 산학연이 인재제일 목표를 리셋해야 한다. 정부는 비자·교육·세제 등 인재 유치 제도를 손보고, 산학연은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자유롭게 맘껏 연구할 수 있도록 R&D 생태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달 중 도입키로 한 '톱 티어 비자' 같은 제도가 모범적인 사례다. 앞서 김 교수는 해외 한인 과학자를 국내로 불러들이는 한국판 '천인계획'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1000명의 해외 과학자들에게 국내에서 연구하는 조건으로 향후 10년간 연간 10억 원을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총 1조 원의 연구비는 우리나라 1년 국가 R&D 예산 30조 원의 3% 수준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중국처럼 불과 한 세대 만에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두뇌의 리쇼어링(reshoring)뿐 아니라 국내에서 유학 중인 아세안, 중동 등지의 고급 인재가 우리나라에서 취업해 K-테크에 기여할 수 있는 길도 넓혀야 한다. 여성 이공계 인재들이 유리천정에 부딪히지 않고 쑥쑥 클 수 있도록 양성평등 환경을 조성하고 일·가정 병행, 출산 및 육아 지원 정책도 강화해야한다.
소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던 부모 세대의 교육열로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 잘 훈련받은 고급인력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석·박사들이 빠져나가는 텅 빈 껍데기가 돼가고 있다. 중동 전쟁이 터지자 고국으로 귀국하는 이스라엘 학생들의 사진을 본적이 있는가. 지금 지구촌의 과학기술 경쟁은 육해공 전쟁과 다름없다. 그 나라 과학의 수준이 생존을 보장해준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무릎을 꿇은 것은 대러시아 드론전(戰)에 필수인 GPS 등 기술 지원 중단 위협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남이 지켜주지 않는다. 안보 주권, 과학 주권에 이어 인재 주권까지 확립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K-브레인을 지키고 소중하게 키워야할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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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KPI뉴스 논설위원(2024.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대외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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