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축소·진흥으로 엇갈린 미중 과학기술정책

KPI뉴스 / 2025-03-27 14:19:31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정책 노선이 축소와 진흥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한국은 양국 사이에서 현명한 입지를 선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의 갈 길은 어디일까.

 

미국은 정부효율부(D.O.G.E.)를 앞세운 공공개혁 중 하나로 과학 분야 기초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돌입했다. '미국판(版) R&D 카르텔 사태'라 할 이 조치로 미국 국책연구소와 대학들은 초비상 상태로 들어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오픈AI의 샘 올트먼 등 빅테크 기업 수장들을 요직에 발탁한 트럼프가 정작 안보와 산업의 뼈대인 R&D 예산을 일률 감축하는 모순된 정책이 미국의 경쟁력을 어디로 끌고 갈지 미궁 속에 빠졌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대중 기술 봉쇄에 맞서 연구역량을 자체 양성하겠다며 과학기술 굴기(屈起) 정책을 실천 중이다. 최근 전 세계에 딥시크발(發) 기술 쇼크를 던진 중국은 올해 800조 원의 R&D 예산을 책정할 예정이다. 이는 10년 전 처음 나온 '중국 제조 2025' 청사진의 실행 수순이다. 2015년 리커창 중국 총리는 양적으로 성장해온 중국 제조업의 질적 개혁이란 목표 아래 2045년까지 3단계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1단계가 끝나는 2025년, 당초 목표였던 글로벌 제조강국 반열에 올라서는데 성공할 전망이다. 이제 더 이상 중국을 하청 제조기지, 싸구려 짝퉁 제품의 3류 공업국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 드론, 지능형 로봇 등은 이미 세계 1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과학기술 예산을 줄이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반(反)지성주의는 뿌리가 깊다. 1964년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건국 이래 지성인을 경멸하는 반지성 문화가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 정기적으로 출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척기에 복음주의 대 부흥주의 종교의 대결에서 출발해 애들라이 스티븐슨 대 아이젠하워 정치의 대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에 들어 아버지 부시 대 앨 고어, 아들 부시 대 존 케리, 트럼프 대 힐러리 클린튼의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 미국 남부의 백인 하층 노동자와 중서부의 농민을 포함해 엘리트와 거리가 먼 절대 다수의 유권자들은 부시와 트럼프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 특징으로 원시주의, 지성에 대한 경멸, 당당하고 노골적으로 현실적 성공을 밝히는 사업가 정신을 꼽았다. 트럼프는 그 화신과 같은 인물이다. 트럼프 정부는 벌써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국립과학재단(NSF)의 간접비를 일괄 삭감하는 등 과감한 예산 감축에 나섰다. NIH는 27개의 의학·생물학 분야 산하 연구소뿐 아니라 일반 대학에도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는데,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인건비와 연구비가 한순간에 날라가 버렸다. 실업자가 된 과학도와 기관이 반발해 소송 등에 나서고 있지만 판을 뒤집을지 불투명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킬링 차이나'에 올인한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기술 자강(自彊)에 매진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제조 2025 플랜에서 정보, 로봇, 항공, 해양, 철도, 자원, 전력, 농업, 신소재, 의료를 10대 전략 산업으로 제시하고 이들을 2035년까지 글로벌 제조 강국 중 중간 수준, 2045년까지 정상 수준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 앞에 불려나간 바이두, 알리바바, BYD, 샤오미 등 '차이나 매그니피선트 7'은 국가의 디지털 신산업 육성 정책에 적극 호응하겠다고 충성 맹세를 했다.

 

앞으로 중국 곰들이 날뛰는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는 미국에 출발은 뒤졌지만 이미 주행기록은 추월했다. 미국보다 훨씬 자유롭고 유연한 신기술 테스트베드 육성 정책은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우리는 자율주행차 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웨이모'나 테슬라의 '로보택시'를 떠올리지만 중국 바이두의 '아폴로고'는 2022년부터 운행 개시했음에도 벌써 웨이모의 4배 주행 기록을 달성했다. 5G 첨단 통신망을 먼저 깐 중국의 7개 선도 도시에서는 레벨3·4의 자율주행차가 시범 운행되고 있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는 500여 대의 무인택시들이 돌아다니며 시민의 발 노릇을 하는 중이다. 중국은 전기차와 무인차를 결합해 모빌리티 혁명의 선구로 떠올랐다. SNE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2024년 8월 현재 세계 전기차 인도량에서 세계 1위 BYD를 포함해 지리(3위), 상하이자동차(5위), 창안자동차(6위), 리오토(10위) 등 10위 안에 중국 기업이 절반을 차지했다.

 

독수리와 곰의 과학기술 전쟁 틈새에 낀 한국의 처지는 어떠한가. 거리는 데모꾼들로 넘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에서는 죽기 살기의 정쟁만 살벌하다. 언론은 매일 법관이 무슨 말을 하고, 정치인이 어떻게 변명했나만 줄창 보도한다. 내일 세상이 망해도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겠다며 자기 마당에서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민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요구한다. 다음 지도자가 되겠다며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정책을 제시하기를, 과학기술 진흥 방안을 밝히기를.

 

참고로 중국이 1만 6000개의 자율주행 면허를 발급하고 70여 시범 도시에서 3만2000㎞ 도로 주행기록을 쌓을 때 한국은 아직 자율주행 테스트에만 목을 매고 있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들의 큰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KPI뉴스 논설위원(2024.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대외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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