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교육 굴기' 앞장서는 중국의 부자들

KPI뉴스 / 2025-04-24 11:26:10

중국 부자들이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 대학 설립에 앞장서고 있다. '교육 굴기(崛起)'라 할 만한 이런 움직임은 기업인들이 첫째, 교육 사업을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비즈니스로 보고 둘째, 정부의 기술 자립 정책에 부응하는 안전한 투자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오픈AI 'ChatGPT'로 생성한 대학 설립을 원하는 중국 부호 이미지. [ChatGPT 생성]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 최고의 재벌기업으로 꼽히는 생수업체 눙푸산취안(農夫山泉)의 창업자 중산산(鐘睒睒) 회장은 향후 10년 간 400억 위안(약 8조 원)의 사재를 들여 항저우(杭州)에 사립대인 첸탕(錢塘) 대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항저우 주정부는 첸탕 대학의 우수한 연구자 및 교수진 500명으로 35만 명의 학생에게 가장 뛰어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매년 15명의 세계 정상급 인재를 배출하겠다고 밝혔다.

 

중산산 회장은 1996년 항저우의 맑은 물을 사업화한 생수업체로, 한때 미국 워런 버핏을 제치고 세계 6위 부자에 올랐던 인물이다. 항저우는 최근 중국 토종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량원펑(梁文鋒)의 모교 저장(浙江)대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항저우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인근 실리콘밸리처럼 AI, 로봇 등 첨단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어 'AI 인재의 요람'으로 불린다.

 

미국 혁신창업의 요람인 스탠포드 대학을 벤치마킹해 진짜 '중국판 스탠포드 대학'을 만들겠다고 나선 부호도 있다. 중국 1위, 세계 2위의 유리 제조업체인 푸야오(福耀) 그룹의 창업자 차오더왕(曺德旺) 회장은 고향인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에 100억 위안(약 2조 원)의 투자금으로 푸야오과학기술대(FYUST)를 설립하고 최근 정부로부터 학생 등록까지 승인받았다. 푸야오 대학에는 재료과학, AI, 기계공학 등 국가 전략산업의 미래 인재를 키울 학과들이 포진해 있다. 또, 반도체 재벌 위런룽(虞仁榮)이 300억 위안(약 6조 원)의 사재를 투입한 중국 닝보(寧波)의 동부기술연구소(EIT)도 2002년 박사과정 학생 첫 등록에 이어 올 연말 학부생까지 맞이할 예정이다. EIT는 기초연구 결과를 사업화하는 응용기술연구센터의 선두를 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胡潤) 연구소의 '2024년 중국 자선사업 목록'에 따르면 중국 상위 기부자의 70%가 교육 분야 기부에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58%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중국 부자들이 교육 사업에 기부하는 것은 경제적 수익성보다 먼 미래를 내다본 정치적,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공유 번영'이라는 정책으로 부의 분배를 권장해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청나라 말 300여 개의 학교를 설립한 장건의 역사적 모범 사례를 배우라고 기업인들에게 연설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따라 부호들의 사립대 설립이 줄을 잇는 한편, 기존 대학의 위상은 높아지는 '대학 굴기'도 이뤄지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타임즈 고등교육(THE)에 따르면 2024년 중국 저장대는 세계 47위로 올라왔다. 2011년 197위에서 150개 계단을 뛰어올라 서울대(62위)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중국판 카이스트' '중국판 서울대'인 칭화대(12위), 베이징대(13위)는 한국을 한참 앞서는 아시아 선두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200위 안에 드는 중국 대학은 홍콩(5개)을 제외하고도 12개 대로 늘어난 반면, 한국 대학은 6개 대에 그쳤다. 본토에만 베이징대, 중국과학기술대, 칭화대, 난징대, 중산대, 저장대 등 9개의 공학 명문대가 있다. 이들은 중국판 아이비리그인 '구교(九校)연맹'으로 불린다.

 

중국의 대학 굴기는 일관된 지원 정책 덕분이다. 1991년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의 세계 일류 대학 100곳 육성 '211공정', 장쩌민(江澤民)의 구교연맹 재정 1% 투자 '985공정'에 이어 시진핑도 '쌍일류(세계 일류대학·일류학과 건설)'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의 '교육 굴기' '대학 굴기'를 지켜보며 부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한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여전히 '형제의 난'과 '세기의 이혼'에 매달려 집안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인가. 사업보국은커녕, 할아버지의 돈을 아들과 손자에게 물려주기 급급한 후진적 세습자본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10대 수출 상품이 20년째 그대로 같은 업종에 머무는 기술혁신 정체의 배경에도 이런 도전 정신의 실종이 숨어있지 않을까. 중국이 교육과 대학에 무한 투자하면서 세계 일류의 인재로 일류 기술과 상품을 쏟아내면 우리 기업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사회에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문화가 한국 땅에서는 여전히 척박한 상태다. 근대화 초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몇몇 사학 이래 토종 기업이 설립한 세계정상급 명문대학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을 키우는 교육 사업은 100년 대계로 불린다. 인재 양성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미국 철강왕 카네기의 카네기멜론대학, 철도왕 스탠포드의 스탠포드대학, 석유왕 록펠러의 시카고대학은 종교재단이 세운 하버드대, 예일대와 함께 여전히 미국의 지성과 산업을 이끌고 있다.

 

한국의 재벌도 100년을 내다보고 '사람 숲' 조림(造林)에 투자하는 안목을 가지길 기대한다. 정부 역시 조삼모사 교육정책에서 벗어나 이공계 인재 양성의 일관된 국정 철학을 실천해주길 바란다. 한국인은 근면 성실한 성품과 뛰어난 두뇌, 창의적 역동성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다. 그 다음 단계를 이끌 미래의 인재 키우기에 민관이 힘을 합쳐 전력투구해야할 때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KPI뉴스

KPI뉴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