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음이 태어날 때 새로운 시간이 빚어진다"

윤흥식 / 2019-03-25 11:25:43
김종구 한겨레 편집인이 펴낸 '오후의 기타'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이것은 수필집인가, 자기계발서인가, 음악안내서인가? 기자를 천직으로 삼아온 35년 경력의 언론인이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한 마디로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운 책을 펴냈다. 

 

▲ '오후의 기타' 표지 [황정원 기자]

 

인문교양서에 취미생활 도전기 성격의 책

 

한겨레 편집인이자 전국 주요 신문·방송·통신사 간부들의 모임인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구(62) 씨가 펴낸 <오후의 기타>.(필라북스, 306p)


저자는 연합뉴스를 거쳐 1988년 한겨레 창간작업에 합류한 뒤 그곳에서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평생을 언론계에서 보낸 셈이다.

통상 언론인들이 내는 책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이 오래 취재했거나 전공으로 삼는 분야의 전문서적이고, 다른 하나는 데스크나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 쓴 글을 모은 칼럼집이다. 이런 책들이 어림잡아 1년에 수백 권은 쏟아져나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는 기자들의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유효기간이 짧다. 책을 펴낸 사람만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척 한다.

기타를 씨줄 삼아, 삶을 날줄 삼아

흥미롭게도 <오후의 기타>는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책이다. 음악을 땔감으로 삼은 인문교양서 같기도 하고, 아재의 때늦은 취미생활 도전기 같기도 하다.

'기타를 씨줄로, 삶을 날줄로 촘촘히 엮어낸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가 50대 초반에 클래식 기타에 입문해 그 매력에 빠져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책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기타'와 '삶'이다. 저자에게 기타는 쉰 살 넘어 사랑에 빠진 정부(情婦)와도 같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전반 생에 살짝 브레이크를 걸어 주고, 남은 후반 생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를 나직한 목소리로 일깨운다.

쉰 넘어 만난 기타에 바치는 헌사

책은 크게 9부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각 부분은 뚜렷이 나뉜다기보다는 서로 맞물린 가운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 세시봉에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저자 [필라북스 제공]


'앵그르의 바이올린'이라는 제목이 붙은 도입부에서는 기타와의 첫 만남에 이은 오랜 헤어짐, 그리고 나이 쉰이 넘어 이루어진 재회를 그리고 있다. 이어지는 '시간의 축적'에서는 황소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한 가지 일에 매달렸을 때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보여준다.

'기타와 현의 노래'와 '마법의 묘약'은 저자가 기타에 바치는 본격적 헌사다. '뇌 속의 불꽃놀이'로 비유되는 기타 연주가 생활과 일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는가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로망스에서 알함브라까지'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명곡들의 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숨겨진 명곡들과 저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기타 들고 세상 밖으로'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의 후반부는 본격적인 무대 도전기로 채워져 있다. 아마추어들이 갖기 마련인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마침내 무대에 서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기타를 가르쳐준 다섯 명의 스승을 모시고 '5+1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는 대목에 이르면 저자의 기타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책의 갈피마다 촘촘히 들어있는 기타에 대한 백과사전적 기술은 저자가 취재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온 언론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다. 기타의 종류, 기타의 물리학 등 '기타에 관한 알쓸신잡'을 섭렵해가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몸과 악기 사이의 교감  


현역 작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훈은 이렇게 추천의 말을 적었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몸과 악기 사이의 교감을 고백하는 페이지들이다. 김종구의 고백은 경험과 사실에 바탕한다. 그의 글은 기타 줄을 튕기고 기타 줄을 누를 때, 몸이 악기를 통해서 소리와 감응하는 내밀한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때 저자와 같은 신문사에 근무했던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김종구의 기타는 결국 삶의 새로움, 삶의 기쁨, 삶의 수고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기타로 추구하려는 것은 소리이고, 그 추구를 통한 삶의 쇄신이다. 한 개의 음이 태어날 때, 새로운 시간이 빚어진다는 것을 김종구의 글은 말하고 있다."

책의 여러 갈피에서 선배 언론인이자 스타일리스트 작가 김훈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는 저자는 이렇게 화답했다.

"고백하건대 김 선배의 소설 <현의 노래>는 기타 연습을 하는 내내 음악과 소리,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나의 사고를 자극하고 더욱 깊이 생각하게 했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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