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과방위에 과학 없고, 방통위에 통신 없다

KPI뉴스 / 2024-08-15 10:37:27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과학이 없다'는 질책이 들려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도 '통신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양쪽 위원회에서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오로지 '방송'에만 집중하면서 나타난 기(奇)현상이다. 부작용이 하도 커서 이럴 바엔 아예 과방위에서 과학을 독립위원회로 떼어내고, 방통위도 방송만 별도 조직으로 분리하자는 대안까지 제시됐다. 과학과 통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국민의 대의기관이 철 지난 방송에 목을 매는 현재 모습은 시대착오이다.     

 

▲ 지난달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의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현장. [뉴시스]

 

21세기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 국가의 과학 수준이 국력을 좌우한다는 것은 유치원생도 아는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과학에 기반을 둔 첨단기술 경쟁에 목을 매는 배경이다. 우수 과학 인재와 1급 논문 수를 놓고 사활을 건 전쟁(Tech-war)을 벌이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한판승부다. 

 

이 마당에 여의도 국회에서는 과방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오로지 '방송 장악'을 놓고 정쟁에만 몰두한다. MBC, KBS에 내 편을 얼마나 심나 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국회 과방위의 전체 소관 기관은 81개나 되지만, 10%에 불과한 방송과 통신 영역 8개 기관에 모든 이슈가 집중됐다. 그동안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가 16차례 있었지만 과학기술법안소위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엄중한 글로벌 안보·경제 환경을 외면한 우물 안 개구리 행보에 국민은 불안하다. 경쟁국가들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의 정책과 법 등 선구적 제도를 하루빨리 완비해 국제 표준으로 정착시키려 애쓰는 모습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이 정쟁의 희생양이 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방송은 전혀 다른 성격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상임위에서 다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린 방송 이슈가 부각 됐다. 최근 몇 년간 과방위는 과학기술보다 방송사 임원진 인사, 공영방송의 편파성 논란 등 방송 헤게모니 잡기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는 과방위의 역할을 왜곡시키고, 과학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과학기술 분야의 법안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충분한 논의 없이 처리되거나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와 일부 국회의원은 이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방위에서 과학기술위원회를 분리하자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과학기술과 방송은 각각의 중요성과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별도의 상임위에서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수진(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상임위에서 과학과 방송통신을 별도로 분리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소관하고 있는데, 추가로 미디어위원회를 신설해 방송 분야를 별도 상임위로 떼어내는 내용을 담았다. 최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야당의 일방적 방송 장악 공세로 과학기술과 R&D(연구·개발) 분야 지원을 위한 정책이 실종되고 있다"며 "AI, 반도체, 첨단 바이오 등 세계적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략적 투자와 핵심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계 각국이 첨단 과학기술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소모적 논쟁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상임위를 별도로 분리하는 국회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개정 필요성을 밝혔다. 

 

이런 사정은 과방위에 대응해야 하는 방통위도 마찬가지다. 5G 시대를 넘어 6G 통신망 조기 구축과 OTT 망 사용료, 구글을 비롯한 해외 빅테크의 인앱 결제 규제, 통신사 판매 장려금 담합 등 굵직한 통신 현안이 즐비하지만 위원장 탄핵 소추 등 '방송 장악' 이슈에 묻혀 식물 상태다. 5인 합의제 구조가 지난해 8월부터 2인 체제로, 최근 직무대행 1인 체제로 파행 운영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여부의 결정이 내려지는 수개월 동안 개점휴업이 불가피하다.

 

행정부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과학기술·정보통신·유료 방송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공영방송은 독립규제위원회인 신설 방송위원회로 이관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료방송 정책과 통신 및 인터넷 정책은 독임제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리·감독에 관한 업무만 현행대로 여야 합의제 구조를 유지하는 안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도 행정부 변경에 맞춰 공영방송위원회를 국회 운영위원회나 정무위원회 소관으로 바꾸는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

 

방통위는 2008년 당시 민간기구인 방송위원회와 행정기관인 정보통신부가 통합돼 탄생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기술, 서비스, 산업 부문에서 미래지향적 독립행정을 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당초 기대와 달리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쟁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공영방송 정쟁이 다른 모든 방송·통신 현안을 뒤덮는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선 공영방송을 분리하는 방법 외엔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 정치권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빠르게 논의를 진행해주길 기대한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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