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형 대 개방형 대결 보다 장점 고루 취해야
세상은 초연결 경제 생태계…'블랙아웃'은 기우
7월 19일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OS)와 세계1위 보안업체의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이 충돌하면서 '글로벌 정보기술(IT) 대란'이 벌어졌다. 발생 며칠 만에 전체 피해액이 약 10억 달러(1조4000억 원)를 훌쩍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약 850만 대의 컴퓨터가 먹통이 됐고, 다수 국가에서 2만여 편 이상의 항공기들이 결항되거나 연착하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피해 집계 액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로 전 세계 주요 항공사와 미국 금융회사들이 대형 재난에 봉착했다. 항공사들은 항공 티켓과 좌석 예약 시스템을 MS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었고, 뉴욕증권거래서(NYSE)처럼 별도의 망 분리 전산망을 가동하던 일부 기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금융사들도 MS OS에 기반한 거래 시스템을 운용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과 방송사 등 언론사, 통신회사, 유통업체에서도 소규모로 장애가 발생했다. 일주일 만에 서서히 복구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이번 대혼돈의 유니버스 사태에서 21세기 '슬기로운 IT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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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IT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 [AP뉴시스] |
첫째, 다양성의 확보이다. IT 대란을 일으킨 MS 클라우드 '애저'에 연결된 단말기는 전 세계 컴퓨터의 1%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대혼란을 일으킨 것은 클라우드와 클라우드, 서버와 서버, 단말기와 단말기 간에 촘촘하게 얽혀 있는 초(超)연결 때문이다. 나비 효과처럼 어느 한 지점에서 발생한 사소한 문제가 다른 반대쪽 끝까지 삽시간에 증폭돼 퍼져나가는 게 인공지능(AI) 사회의 맨 얼굴이다. IT 대란의 진원지가 미국이어서 중국은 이번 MS발 통신대란에서 완전히 비껴 나온 무풍지대였다고 한다. 수년째 지속 중인 양국 간 기술 전쟁으로 중국 내 보안시설에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쫓아낸 지 벌써 제법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고 국내 전문가 중 어떤 그룹은 'IT 주권(sovereignity)'을 주장하기도 한다. 즉, 클라우드나 AI를 글로벌 빅 테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자체 개발해 국산 클라우드, 국산 AI를 보유하자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위성을 러시아, 미국, 유럽 로켓에 실어 날리지 말고 고유 발사체로 궤도에 올려 우주 독립국이 되자는 주장과 비슷하다. 그런데 내가 만난 우주 정책의 최고 책임자는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정도의 중간 규모 국가가 모든 장비와 기술을 모두 국산화할 순 없다. 핵심만 개발하고 나머지는 사와서 쓰면 된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국산과 외산을 조립한 최종 생산품이 다른 나라의 제품보다 싸고 우수해야 한다. 그 결합의 강도와 수준, 타이밍을 정하는 게 노하우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소수의 지배적 플랫폼에만 독점적으로 묶이지 말고 자국산과 외국산, 빅테크와 스몰테크의 적절한 배합으로 유연하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양화, 민주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애초 인터넷의 탄생도 전쟁 시 중앙집권식 핵심 통신망이 무너져도 국지적으로 잘 연결돼 소통하는 '튼튼한(robust) 네트워크'가 목표였다. AI 역시 중앙 서버에서 대용량의 학습과 추론이 이뤄지는 1세대 대신, 여러 개의 서버로 나눠 진행하는 연합(federated) 학습 또는 소비자 단말기에서 소량의 작업을 자체 해결하는 장착형(on-device)으로 민주화하는 추세다.
둘째, 폐쇄형과 개방형 간 경쟁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진리다. 사태의 원인이 보안업체의 어이없는 검증 오류에서 비롯됐다는 게 드러났지만, 어느 한 곳의 책임으로만 몰긴 어렵다. 유럽연합(EU)의 엄격한 보안수준 요구, 클라우드업체의 관리 소홀 등 '네 탓 내 탓'의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모두가 정답은 아니다. MS는 보안업체가 자사의 핵심 보안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방형 시스템을 유지하지만, 경쟁사인 애플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철저한 폐쇄형 구조로 악명이 높다. 창업자인 고 스티븐 잡스의 완벽성에 대한 집착으로 애플 생태계 내부에서만 호환이 자유롭다. 이로 인해 오히려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명성을 얻는 아이러니도 벌어진다. 수사기관조차 애플폰을 포렌식하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 됐다.
문을 걸어잠그고 출입통제가 엄격한 한 곳으로 출입하는 집과 여러 개의 문으로 다른 곳들과 쉽게 왔다갔다하는 집은 특성이 다르다. AI 생태계도 현재 폐쇄형 대 개방형의 전쟁이 진행 중이다. 생성 AI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오픈AI 진영과 이를 추격하는 메타(옛 페이스북) 진영이 대표적이다. 오픈AI 측은 AI를 훈련시키는 데이터의 수집부터 학습, 검증 과정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반면, 메타는 AI의 소스코드부터 거의 모든 데이터를 모두 오픈하고 있다. 앞쪽은 AI의 안전성을 내세우며 영리를 추구하고, 뒤쪽은 민주화된 집단지성을 강조하며 인류복리를 주장한다. 지구상에 독재국가와 민주국가들이 공존하듯, IT 왕국 역시 마찬가지다. MS조차 개방형 OS인 리눅스로부터 폐쇄적 영리집단이란 비판을 받았었다. '폐쇄냐 개방이냐'의 질문 역시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는 민주주 다양성 원리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지나친 공포에 사로잡히지 말고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피해를 입혔지만 새로운 지혜로 조기 극복됐다. 온라인 재택근무라는 노동 시장의 변화를 초래하는 동시에, 아날로그 대면 접촉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도 제공했다. IT 대란은 일주일 만에 거의 수습되고 있다. 전세계 컴퓨터들이 한꺼번에 마비되는 밀레니얼 사태도, 한 도시의 전원이 일제히 꺼지는 블랙아웃 현상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 세상이 초연결로 촘촘하게 서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연결은 곧 지능이다. 뇌세포도 촘촘하게 연결될수록 지능이 높아진다. 21세기 초 문명사회의 지능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지역의 통신망이 붕괴되어도 곧 복구되는 지구촌 인터넷망처럼 전 세계 산업과 경제는 강건(强健)하다. 그러니 IT판 노아의 홍수를 걱정 말고 하루하루를 여느 때처럼 살아내면 된다. 다만, 연결과 협치(協治) 없이 극과 극으로 대치하는 정치 대란은 조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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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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