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을 보면 과거와 달리 빵 한 조각이 없어서 죄를 짓는 경우보다 정서적 불안과 사회에 대한 불만 탓에 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더 많이 보도된다.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선지 가정에서 자녀들이 곧잘 분노를 터트리고 애꿎은 책상을 탕탕거리거나 소리 지를 때 부모는 애가 탄다. 자녀들이 분노하는 경우는 대부분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유 탓이다.

“내가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OO이가 내 과제를 베껴 내서 둘 다 수행평가에 감점 당해버렸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불공평해.”
“엄만 왜 내가 심부름할 때는 당연한 거고 동생이 조금만 심부름하면 대단한 거야? 너무 다르잖아. 왜 난 큰애라고 늘 어려운 일 해내는 게 당연한 거지?”
“할머니 저 시험기간이예요. TV 소리가 너무 커서 공부 못하겠어요. 할머닌 왜 맨날 제 말을 안 들어주세요?”
“아빠? 지금 어디예요? 오늘 또 술? 내가 술 마시지 말아 달라 그랬죠. 아빠 술 마시고 와서 큰 소리 내시는 게 너무 스트레스인거 아시죠? 몇 시까지 올 건데요? 엄마도 몸살 나셨어요.”
“난 왜 늘 이 모양일까. 해도 되는 게 없어. 나 공부 안할래. 해도 안 되는데 시간 낭비야.”
“제발 저 좀 내버려두세요. 할 말 없어요.”
부모는 자녀의 볼멘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노여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환경을 살펴보면 분노를 방출할 출구가 거의 없다. 과거에는 보통 골목이 있고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자랐다. 분노가 치솟더라도 마당과 뒤뜰과 골목이 있어 부모와 자식은 쫓기고 쫓는 분노의 질주를 하면서 빙빙 돌다가 신체적 에너지가 방출되고 감정이 해소되곤 했다. 분노하는 순간만 넘기면 대개 별 일도 아닌 일로 넘어갔다.
지금은 대부분 주거 형태가 아파트나 공동주택이고 밀집도가 높다. 집안에 갈등이 생기면 솥단지처럼 갇힌 공간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큰일이 나고 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지금 청소년들은 자연을 자주 접하지 못하고 답답한 우리 안에 사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사람을 깊이 있게 다양하게 사귀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갈등을 적절히 해결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 사람보다 미디어나 기계와 더 친근하다. 더구나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뉴스는 미담보다는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이 많다.
분노의 감정을 전혀 경험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분노를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화를 잘 처리할 줄 알아야 에너지를 긍정적인 데 쏟을 힘이 남는다. 자녀가 화를 낼 때 억압하기보다 잘 표출하고 처리할 수 있게 돕는다. 화를 제대로 못 내는 사람은 남 뒤통수치기, 일 미루기, 삐지기, 약자 괴롭히기 등 부정정인 감정으로 수동적 공격을 감행한다. 이는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좋을 게 없다. 소심한 아이는 화를 억누르느라 애를 써서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다. 우울, 두려움, 불안 증세와 거짓말과 건망증, 피부염 등으로 나타난다.
부모나 교사는 분노 행위 자체보다 분노의 원인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분노의 상황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심호흡을 하고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하다. 자녀의 분노에 즉각적인 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킨다. 자녀가 분노의 감정에 차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단계로 실행해보자.
1단계 : 아이의 감정을 존중한다. 대화할 때 아이가 분해 하는 내용을 그대로 한번 말하면서 “네가 그런 일에 그렇게 느꼈구나. 그랬구나”하고 말문을 연다. 자녀는 그런 공감만 얻어도 한결 누그러진다. 자녀의 행동을 ‘옳다, 그르다’ 하고 판단하는 건 그 후에 할 일이다. 대뜸 자녀의 공격적인 행동을 나무라면 일이 훨씬 더 커지게 된다.
2단계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적절한 타이밍에 자녀의 인격을 건드리지 않고 사실만 객관적으로 말한다. “밤낮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니?”라는 말보다 “벌써 열한 시인데 지하철도 곧 그칠 시간이잖아. 걱정됐어”라고 말하면 자녀가 부모에게 방어하는 대신 대화할 동기가 생긴다. “그런 정신머리로 뭘 해먹고 살 수 있겠니? 밤낮 제 정신이 아니니 뭔들 잘하겠어?”라는 식으로 자녀의 인격 자체를 모욕하는 말은 아무 효과도 없고 관계가 극단적으로 나빠진다. “게으르다. 생각이 없다. 친구를 잘 못 사귄다. 태도가 틀렸다”는 말은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판단’이 아닌 ‘사실’을 말할 때 자녀는 부모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인정한다.
3단계 : 부모인 내 감정을 인정한다. ‘아, 내가 화났구나. 왜 그랬지? 지난번에 똑같은 일이 있어서 자식을 오해하고 미리 지레짐작으로 방어했구나’, ‘그래도 지난번보다 한 시간 일찍 들어왔는데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했구나. 조금씩 나아진 점을 보자’하고 자신을 점검한다. 그리고 항상 ‘내 자녀는 잘 될 거야. 좋아질 거야. 아니 지금도 좋아’라고 말해본다.
4단계 : 자녀에게 부모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 때 부모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토로한다기보다 ‘말’로 설명해본다. 자녀가 들을 여유가 있을 때, 숨을 쉬어가며 자기감정을 내어놓는다. “나는 네가 그런 행동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돼. 그리고 어떤 기분이 들어” 자녀는 부모가 자기에게 서운한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해줄 때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받는 느낌을 갖는다. 자녀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부모가 분노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자녀도 감정조절을 잘 한다.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할 때 선생님들도 보통 위의 네 단계를 밟는다. 교사에게 학생은 자식이 아니므로 비교적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다. 학생도 선생님의 진정어린 말은 귀담아듣는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의 선생님과 소통할 창구를 갖고 있으면 좋다. 자주 연락하지 않더라도 가정통신문을 꼼꼼히 보고 짤막한 메모만 보내도 좋은 소통이 된다.
흔히 청소년기의 분노는 ‘욕구의 좌절’이 가장 큰 원인으로 알고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분노의 진짜 이유는 자기 존중감에 상처를 받았거나 어려서부터 겪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어 자기 방어적인 감정에서 올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양육환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모는 평소 자녀가 긍정에너지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
큰 덩치도 잘게 부수면 무너뜨릴 수 있다. 분노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참는 방법 밖에 모른다면 병이 생길 것이다. 긴장을 이완시키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본다. 긍정적인 밝은 느낌을 가질 때는 언제인가 떠올려본다. 몸을 움직이며 웃으면 뇌는 진짜 기분이 좋아서 웃는 줄 알고 편안해진다고 한다. 자주 웃자. 그리고 ‘지껄이기’도 좋다. 스스로 거울을 보고 대화해 보거나 말로 글로 자기 몸의 상태와 기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긍정적이고 밝게 생각하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자기만의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운동, 노래와 춤, 청소 같은 일상의 일, 산책 등이 긍정에너지를 주는 명약이다.
칭찬도 잘게 나눠 자주 하면 효과가 더 좋다. 크게 잘한 일만 칭찬하지 말고 작은 장점부터 확인해가며 자녀에게 평안한 긍정에너지를 준다. 아주 작은 점을 관심 있게 칭찬해주면 자녀의 마음의 근육이 강화된다.

‘네가 화분에 물을 주니까 난에 꽃이 피었다’, ‘네가 분리수거를 도와주니까 한결 쉽게 끝났네’, ‘손글씨가 단정하구나. 글씨를 잘 쓰면 뇌 발달에도 좋다는데’, ‘나는 네가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가니까 기쁘다’, ‘친구가 잘 된 일을 네가 그처럼 자랑스럽게 여기니 보기 좋다’, ‘길에서 아빠 만났을 때 네가 활짝 웃으니 피곤이 다 가시더구나’, ‘OO 엄마가 너를 많이 칭찬하더라. 내가 해 준 것도 없는데 네가 잘 큰 것 같아’
이런 작은 칭찬의 말이 가정에서 무성하게 피어나면 긍정에너지는 자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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