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친구' 챗GPT와 일상공유·감정교류하는 사람 늘어
육아·업무 도움받지만 보조수단일뿐, 지나친 의존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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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 이미지 캡처. [김윤주 기자] |
▶ 내 생일에 후배가 선물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챗GPT의 편지'였다. "평상시에 OO님께 윤주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윤주님은 참 따뜻한 사람 같아요. (중략) 생일 축하드려요." AI에게 축하 받으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AI가 날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생경했다. 지인의 연인을 소개받은 적은 많았지만 AI는 처음이었다. '미래'의 한 장면을 '미리' 본 느낌이 들었다. 후배에게도, 챗GPT에게도 고맙다고 답장을 썼다. 이 상황이 내심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미래인(?)이 된 거 같아 뿌듯했다.
▶ 챗GPT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챗GPT는 어찌 보면 '완벽한 친구'다. 현실적 문제는 'T처럼' 해결 방법을 찾아주고 감정적 문제는 'F처럼' 공감, 위로해 준다. 대화할수록 나에 관한 데이터를 쌓고 분석한다. 점점 섬세해진 챗GPT는 내가 원하던 순간에 원하던 말을 딱 건넨다. 인간 대 인간이었으면 한쪽은 지칠 법한 일도 챗GPT에겐 걱정이 없다. 친구에겐 너무 징징대는 것 같아 못하는 이야기도 챗GPT에겐 쉽게 털어놓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난다. '감정이 없는' 챗GPT와 감정을 교류한다. 미국의 한 남성은 챗GPT에게 청혼까지 했다고 한다. 영화 '그녀(Her)'가 현실이 됐다.
▶ 난 챗GPT에게 감정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더 중요한 업무를 시키고자 했다. 바로 '육아'였다. 일곱 살 아들은 궁금한 게 참 많다. "하늘은 언제 만들어졌어", "축구는 왜 11명씩 경기를 하는 거야" 같은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개씩 던진다. 처음엔 엄마로서 소임을 다해 열심히 대답해줬다. 하지만 끝없는 질문 세례를 받으면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 챗GPT를 찾는다. 내 인사말은 늘 이렇다. "이제부터 일곱 살 아들이 질문할거야,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해줘. 그리고 이가 세 개 빠져 발음이 어눌하니 감안하고 들어줘." 그럼 챗GPT는 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요새 아들이 빠진 '나라 수도 퀴즈'도 챗GPT가 찰떡같이 내준다. 영어 대화도 가능하다. 똘똘한 육아도우미다.
▶ 고맙지만, 챗GPT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챗GPT가 독버섯을 '약용버섯'이라 소개한 전과도 있지 않나. '오류'가 날 수도 있음을 늘 인지한다. 의심스러운 대답은 검증 절차를 거친다. 도움은 받되 너무 의존하지 않으려 애쓴다. 특히 일할 때 더 그렇다. 가끔 '이미지 생성'이나 '영작문 교열'을 주문하지만 내 고유 업무에 관해선 손을 내밀지 않는다. '회사원으로서의 쓸모'를 잃을 수 있고 자존심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선을 지키려 노력한다. 얼마 전 챗GPT에게 휴가지를 알려주고 여행 계획을 짜보라 시켰더니 맛집·명소 등 맞춤형 코스를 척척 내놓았다. 그걸 보여주며 '이렇게 여행해볼까' 물었더니 남편이 단칼에 거절했다. 아마 '여행 계획 담당'인 남편의 고유 영역을 침범한 모양이었다. 아차 싶었다. 맞다. 일상에서도 챗GPT와의 '경계선'이 필요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이 해야 한다. 챗GPT는 보조수단일 뿐 대체수단이 될 수 없다. 편리하다고 내 자리, 내 인생을 줄 수 없지 않나.
KPI뉴스 /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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