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 한 장에서 역사를 읽어내다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이강백 작가와 다시 만났다. 1998년 ‘이강백 연극제’ 이후 20년 만에 연극 <어둠상자>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어둠상자’는 사진기의 오래된 이름이다. 이번 공연은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기획연극으로, 오는 12월2일까지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이강백 작가가 쓰고, 이수인이 연출을 맡은 <어둠상자>는 고종의 마지막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을 찍은 황실 사진가 집안이 4대에 걸쳐 그 사진을 되찾기 위해 펼치는 108년 간의 이야기다.

이 작가는 뉴워크미술관에서 발견된 옛 사진 한 장에서 역사를 읽어낸다. 고종의 사진에 적힌 사진사 이름에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
고종은 자신이 미국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에게 선물한 사진이 “황제다운 존재감은 없고 애처롭고 둔감한 모습”이란 조롱을 받는다. 이에 고종은 황실 사진사 김규진에게 반드시 그 사진을 되찾으라는 밀명을 내린다. 미국으로 건너가 그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사진을 찾아 없애야 하는 고난에 찬 분투가 시작된다.
예전 우리는 실물(주체)과 사진(객체)를 동일하게 여겼다. 사진을 욕하면 실제 인물을 욕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길 충고한다. 작가는 100년이 지났는데도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준 충격과 혼란이 남아있다고 경고한다.

이 작가는 “고종의 사진을 식민지를 거치며 모멸당하고 주체를 잃은 민족적 경험의 상징으로 본다면, 새로운 시대는 그 사진을 없애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새 시대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생겨난다”라고도 했다.
이번 무대는 김씨 4대의 활동을 4막으로 구성한 옴니버스극으로 꾸며졌다. 각각의 막이 자체로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전개된다. 이번 작품에서도 ‘알레고리의 작가’라는 평을 듣는 이강백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우화와 풍자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인양 전개되지만, 이야기의 논리 구조에 담아낸 여러 역사적 사실은 현실의 이야기를 풀어낸 역사극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수인 연출은 이강백 작가와 20여 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강사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고, 2016년 이 작가의 <심청>을 초연하며 시작된 무대 인연이 이번 <어둠상자>로 이어졌다.
<어둠상자>에서는 어둠이 빛을 가두어 압착하는 그 공간에서 유폐되고 압착되어 버린 우리 자신의 이미지(고종의 사진)가 4대에 걸쳐 이어진다. ‘문제의 사진을 없애는’ 선대의 유지를 수행하려는 각 인물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위기에 직면한다.

도입부인 '대한제국말기'와 결말부인 '오늘 현재'까지 하나의 줄기가 온전하고 생생하게 자긍심을 되찾는 여정으로 실감나게 이어졌다.
이수인 연출은 <어둠상자>의 무대를 여백이 많은 무대로 시각적인 리듬을 만들어 작품의 맥락과 전환을 연결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 근현대사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어둠상자를 벗어나 빛이 보이는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고 연출 소감을 밝혔다.

입장권은 2만~5만원.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콜센터, 인터파크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30일 공연까지 수능 수험생 본인에 한해 전석 1만원.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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