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에 정치 양극화····같은날 트럼프 기소는 상징적
非선출 현자 그룹에 재정거버넌스 위임 고려해볼 만
정치 현실-이상 간극 韓, 美케이스 반면교사 삼아야 두 달 전 부채한도 협상을 놓고 여야 간 벼랑 끝까지 가는 치열한 대결로 세계 경제를 불안과 불확실성의 극한으로 몰아넣은 다음에야 디폴트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갔다. AAA에서 AA+로 신용등급을 내린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하향 조정의 주된 근거로 미국의 재정 거버넌스 악화를 지적했다.
지난 20여 년간 부채한도 증액에 관한 정치적 대치 상황이 반복되었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가까스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재정 관리(fiscal management)의 신뢰성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12년 전인 2011년 8월에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동일하게(AAA→AA+) 하향 조정한 바 있고 당시에도 재정 거버넌스 문제가 신용등급 강등 배경으로 작용했다.
백악관과 미 재무부가 피치의 결정에 강력한 반대 입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표명한 가운데 금번 신용등급 하락이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미미할 것으로 보는 투자분석가들의 견해가 다수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미국 국채의 확고한 위상이 흔들릴 것으로 보는 전망도 사실상 전무하다. 다만 세계 3대 신용평가사중 2개 사가 신용등급을 내리면서 재정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강조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납세자 입장에서 재정 거버넌스는 국가운영체계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가벼이 넘길 사안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오는 과정에서 세계는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의 시대에 와있다. 정부 재정지출의 급격한 증대와 함께 국가부채 또한 크게 늘어났다. 확대재정이 그동안 인플레이션 상승과 함께 통화정책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미친 영향도 크다. 재정의 힘과 파급력이 커진 이러한 재정 지배에 상응하는 재정 거버넌스의 부재가 문제다. 종국적으로 재정 지배와 재정 거버넌스 간의 파열음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 바로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파열음의 핵심에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존재한다. 미국 디폴트 위기를 목전에 두고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숱하게 벌여온 당파 싸움에 그동안 재정 거버넌스가 부식되어온 것이다. 금번 피치 결정에도 양당은 그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고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최근 방한한 공화당 소속의 미 하원 세입위원회 제이슨 스미스 위원장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이미 고전하고 있는 국민들이 바이든으로 인해 떨어진 미국 국가신용등급으로 더 힘들게 되었다고 비난했다.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공화당이 부자와 대기업 감세로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부채한도 협상 때 디폴트를 부추기는 극단론(extremism)으로 갔다며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공교롭게도 피치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당일 미 연방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 등과 관련하여 미국 민주주의 근간에 대한 공격 혐의로 기소했다. 마치 역사의 신이 연출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의 일치(coincidence)가 상징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가 이후 사법절차와 2024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치 일정에서 민주-공화 양 진영의 대립을 증폭시키고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면 재정 거버넌스에 관한 리스크는 오히려 커질 우려마저 있다. 그래서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본질이 민주-공화 양당 패권 다툼의 산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극명한 시간 일치를 금번 기소에서 보는 듯하다.
미국 정치 생태계가 양극화의 덫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한다면 향후 재정 개혁을 위한 초당적인 이니셔티브를 만들어 나가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재정 책임성 및 개혁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Fiscal Responsibility and Reform, 일명 심슨-볼스 위원회)'와 같은 초당적 공식기구는 그 이후 제대로 시도된 적조차 없다. 통상적인 정치 프로세스에 재정 문제를 맡길 수 없다고 해서 재정 거버넌스의 정상화를 마냥 미룰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미국을 트리플 A로 만들기(Make America AAA Again)'와 같은 슬로건을 초당적으로 내걸어야 할 상황이다. 재정 지배, 재정 관리, 재정 거버넌스의 상호 메커니즘 속에서 현실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투자가와는 달리 미국 정치시스템을 바라보는 납세자의 회의적 시각을 백악관과 미 재무부는 애써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정과 같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현대 경제정책 영역에서 정치적 책임성(political accountability)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현실적 접근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전문역량이 부족한 당파성 기질의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모든 국민의 삶과 운명을 맡김으로써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의 결함을 자초하는 오류를 반복하기보다는 선출되지 않은 현자 그룹에 재정 거버넌스의 역할을 일부 위임하는 제도 디자인도 고려해볼 만하다.
정치 양극화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정치 현실이 이상과는 간극이 있음을 직시하고 미국 케이스를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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