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차기 美연준 의장, 인공지능만 바라보면 되나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2026-01-12 11:52:20
차기 연준의장 후보, AI가 1990년대 그린스펀 시대 재현 기대
AI, 신황금기 필요조건이나 제도·정치경제적 충분조건 작동해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차기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공통적으로 인공지능(AI)이 미국 경제를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의 경로로 이끌 것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2020년대 후반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 시절 경험했던 1990년대의 재현이다. 해싯은 AI에 따른 생산성 호황을, 워시는 AI가 구조적인 디플레이션 요인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린스펀 시대의 인플레이션 없는 번영을 다시 구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또한 1990년대의 시나리오, 즉 저금리, 고성장, 고생산성을 예상하며 차기 연준 의장이 그린스펀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금리 인하를 요구해 온 만큼 이러한 서사는 차기 의장직을 맡기 위한 정치적 필수 조건처럼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생산성 호황이라는 가설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롬 파월 현 의장도 연준이 2026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5%포인트 상향 조정한 이유로 생산성 향상을 들었다. 파월은 미국의 생산성이 지난 수년간 구조적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체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빠르다. 그 배경에는 AI 등 역동적인 기술 부문이 있다.

 

▲ 미 연준과 AI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문제는 AI를 1990년대의 컴퓨터화(computerization)와 동일선상에 놓고 장기간의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 국면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데 있다. 1990년대 미국의 그린스펀 신화는 IT 혁신 하나로만 설명될 수 없다. 당시에는 여러 정치경제적 여건이 동시에 작동했다. 냉전 종식 이후 형성된 안정적인 지정학 질서, 세계화 가속, 아웃소싱과 글로벌 공급망 확장, 자유무역 체제에 대한 신뢰, 이민 증가, 노동참가율 상승이 맞물렸다. 기업들은 잘 정의된 국제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서사에 투자할 수 있었고 이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사뭇 다르다. 지정학은 다시 힘의 패권으로 회귀하고 있고 공급망은 재편되고 있으며 보호무역과 안보 논리가 지배하는 형국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민은 감소하고 있으며 노동참가율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구조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생산성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경로에도 중대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AI가 가져오는 기술적 진보가 크더라도 그 진보를 둘러싼 제도·정치경제적 환경은 1990년대와 다르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과거의 성공을 현재에 그대로 투사하려 한다면 이는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에 해당한다. 영국의 철학자 길버트 라일이 그의 저서 '마음의 개념(The Concept of Mind)'에서 설명한 범주의 오류란 서로 다른 논리적 범주에 속한 개념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는 오류를 의미한다. 1990년대의 장기 호황은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수 있었던 제도·정치경제적 환경의 산물이었다. AI라는 지금의 기술 요소를 1990년대의 제도·정치경제적 조건과 동일 범주에 놓고 비교하는 순간 분석은 왜곡될 수 있다.

차기 연준 의장 후보가 AI를 근거로 저금리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유인은 강하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고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는 통화정책 교과서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 논리가 정책결정자의 고정된 신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는 데이터 센터 구축에 자본 지출 붐을 일으키는 국가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더욱 지속가능하다. AI 기반 생산성 붐에 관한 서사는 재무적 또는 투기적 수익을 노리는 기업들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진보된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의 실증적 증거가 강력해질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AI 자체 못지않게 AI를 해석하는 정책결정자의 통찰력이다. 기술 발전을 성장률과 물가 변수로만 환원하는 접근이라면 중앙은행가 관점에서 지나치게 협소하다. AI는 노동시장, 소득 분배, 산업 구조, 금융시장, 재정 지속성 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통화정책만의 관련 영역이 아니다. 차기 연준 의장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거시경제모형 분석 및 운용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경제·사회적 요소와 변화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균형 있는 통찰이 필수적이다.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생산성이 어떤 제도적 조건에서 사회 전체로 확산할 수 있는가다. 기술 혁신과 제도적 조건을 동일한 범주에 놓고 접근하는 범주의 오류에 빠지는 순간 정책 판단은 편향으로 기울 우려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금리 경로 설정에서 특히 위험하다. 예컨대 기술에 대한 낙관이 통화정책의 중립금리 판단과 인플레이션 기대 관리에 과도하게 반영되는 경우 정책 오류의 비용은 커질 수 있다.

AI가 2020년대 후반 새로운 황금기를 여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그 자체만으로 충분조건은 아니다. 1990년대의 경험이 보여주듯 황금기는 기술 외적인 조건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안정적인 국제 질서, 개방된 노동시장, 신뢰할 수 있는 제도, 정책결정자의 통찰력 등이 그 토대에 포함된다.

차기 연준 의장 후보가 AI에만 모든 것을 건다면 이는 위험하고 무모하다. AI는 마법이 아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역할은 마법을 믿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균형을 만드는 일이다.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은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며 정책 신뢰를 좌우하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사가 주는 함의 또한 지대하다. 기술을 이해하되 제도의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는 인물이 중앙은행을 맡을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 각국의 인사 혁신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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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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