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의 공통점은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2025-12-19 10:48:28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 선택에 신뢰 긴요
신뢰 설계 능력, 우리 시대의 사회계약 핵심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나는 디지털 금융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마지막을 둘러싼 의료 윤리 문제라 할 수 있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두 이슈는 놀라울 만큼 같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스테이블코인은 주류 금융(mainstream finance)의 대안적 용도로 선택하고자 하는 디지털 자산이다. '안정적(stable)'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는 생의 마지막 국면에서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둘 다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둘 다 선택 이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신뢰다.

 

▲ 스테이블코인, 연명의료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묻는다. 이 스테이블코인은 정말 약속한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필요할 때 법화(legal tender)로 항상 바꿀 수 있는가. 누군가 임의로 규칙을 바꾸지는 않는가. 연명의료에서도 질문은 다르지 않다. 나의 뜻은 존중될 것인가.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판단하고 있는가. 혹시 경제적 비용이나 효율성 논리가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불확실하다면 사람들은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블록체인 기술,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신뢰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믿어도 된다고 하는 수사(修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테이블코인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준비자산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발행과 상환의 규칙이 명확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는 등의 구조(architecture)가 있어야 한다. 연명의료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사가 사전에 기록되고 충분한 설명과 숙의가 이루어지며 의료진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등의 메커니즘이 갖춰져야 한다.

두 이슈는 모두 최악의 순간을 고려해야 한다. 시장이 평화로울 때는 스테이블코인도 안정적일 수 있겠으나 시장의 동요 시에는 대규모 스테이블코인 인출 사태나 뱅크런 위기 등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가 의사 표현이 분명할 때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어려움을 덜 수도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연명의료는 환자 스스로 의사 전달이 어려운 생의 마지막 순간, 가족 간 판단의 갈등, 돌이킬 수 없는 결정 등을 전제로 논의된다. 그래서 이 두 이슈는 사람들이 항상 선의(good faith)로 완전하게 행동한다는 가정보다는 흔들리며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을 전제로 하는 제도의 설계를 요구하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가능해졌다. 연명의료 또한 의료기술의 발달 덕분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그러나 기술은 가능성을 열어줄 뿐 그 선택이 합당한지, 보호받는지, 존중받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두 이슈는 정확히 같은 한계에 부딪힌다. 기술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회는 해도 되는가를 묻는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신뢰 설계(trust design)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대는 개인의 선택권을 점점 더 넓히고 있다. 금융에 관한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물론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까지도 선택의 영역이 되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그 선택이 합당하고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신뢰의 구조를 함께 제공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다. 그 신뢰 구조는 설계되어야 하는 제도다.

최악의 순간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제도일수록 사회적 약자 등 취약 그룹에 대한 고려는 중요해진다. 위기는 취약 그룹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와 같은 우리 시대의 첨예한 금융과 의료 이슈를 다룸에 있어 인간의 얼굴을 한 공정과 정의가 함께 하는 포용적 제도가 한층 더 긴절히 요청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약자에 대한 깊은 고려는 신뢰 설계의 필수 요소다. 신뢰 설계는 최악의 순간에도 취약 그룹을 포함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두 이슈는 공통적인 딜레마의 성격을 안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과도하게 보호하면 시스템이 불안정해질 수 있고 시스템 안정을 앞세우면 개인의 존엄과 선택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연명의료에서 개인의 결정이 비용 절감 수단으로 오해받는 순간 제도는 윤리적 정당성을 잃게 되고 의료 자원의 공공성 논의 없이 개인의 선택만 강조하면 사회적 합의 토대가 흔들릴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의 혁신을 억압하면 발전이 멈추고 규제 없이 방임하면 금융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상충적인 요소 간의 균형점 위에서 신뢰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 당위가 있다.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사회 진화론(social Darwinism)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회는 진화하는 생물체처럼 스스로 최적의 모습을 향하여 진화해 나갈 수 있고 금융과 의료도 그렇게 진화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는 우리 시대에 만들고 설계하고자 하는 사회 진화에 관한 이슈이며 규범적 사회 진화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사회공동체의 치열한 성찰을 요구하면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social contract)을 모색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계약으로서의 신뢰 설계가 긴요하다.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선택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공동체는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옳고 그름의 단선적 기준만으로는 정리되지 않는다. 옳음과 옳음 사이에서 신뢰를 제도화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계약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 사회계약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도 국가나 시스템이 모든 결정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신뢰 설계는 현대 문명에 있어서 핵심적인 운영 원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연명의료는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우리 시대에 긴요한 문명사적 질문을 공통적으로 던지고 있다. 기술은 계속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그만큼 선택지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신뢰를 설계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선택은 쉽지 않다. 기술은 선택지를 늘릴 수 있지만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뢰다. 금융에서도 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신뢰를 설계할 능력을 갖춘 사회로 진화할 수 있는가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우리 시대 사회계약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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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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