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스테이블코인, 통화 황금시대 열까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2025-12-05 15:01:48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 통화지배 시대 복원하나
긍정적 가능성과 구조적 제약 양면성 내재 평가
핵심 관건 제도설계···최종 신뢰 설계자 역할 긴요

각국 중앙은행은 지금 이례적으로 좁아진 정책 여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급증한 국가부채와 국채 수요 기반 약화 등이 재정지배(fiscal dominance)의 부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재정지배란 재정의 제약이 통화정책의 운신 폭을 좁히는 상황이다. 주요국의 재정적자는 구조적 성격마저 띠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경기침체 국면에서만 재정적자가 확대되었으나 이제는 국채 발행이 상수처럼 된 시대다. 정부가 국가부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면 중앙은행이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데 부담을 갖게 되고 시장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도록 하는 압력도 받게 된다.

 

▲ 스테이블코인 관련 이미지. [제미나이 생성]

 

이러한 재정지배 메커니즘 때문에 재정이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는 상황이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재정지배가 완화될 방법은 무엇인가. 교과서적 답은 재정 건전화이지만 현재 주요국에서 이는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빠르게 실행되기는 어렵다. 바로 이 대목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준비자산이 국채로 구성되면서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국채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증가할수록 그만큼의 국채 수요가 새로 생기는 구조는 몇 가지 중요한 시장 효과를 낳는다. 먼저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의 완화다. 채권 수요가 늘면 금리는 낮아지게 된다. 최근 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늘어날 때마다 단기 국채 금리가 예상보다 낮게 형성되는 현상도 포착되고 있다. 다음으로 재정 부담의 완화다. 국채 금리가 낮아지면 정부의 차입 비용이 줄어들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재정지배 압력이 완화되게 된다. 아울러 국채 시장의 새로운 유동성 공급원 등장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이 새로이 상시적 국채 매입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시장에서 은행 머니마켓펀드(MMF)보다 강한 단기 국채 매수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장 메커니즘으로 볼 때 스테이블코인이 재정지배를 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은 명확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상당 기간 낮은 인플레이션과 견실한 경제성장을 구가한 이른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에 세계가 경험한 바 있는 통화지배(monetary dominance)의 황금시대를 복원할 수 있을까. 당시 주요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을 기하는 강력한 독립성을 확보했고 정부도 재정규율을 어느 정도 유지했다. 중앙은행은 재정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고 금리를 결정하며 경기와 인플레이션을 조절할 수 있었다. 정치와 재정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역할을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떠맡도록 요구받지 않았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재정지배를 완화한다면 중앙은행이 다시 통화지배의 시대를 열 수 있는가. 주류 금융(mainstream finance)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스테이블코인이 역설적으로 중앙은행의 황금기였던 통화지배 시대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인가.

이는 우리 시대에 전개되는 유례없는 통화체제, 디지털 대전환, 국채 시장 구조 변화 등의 복합적 교차점에서 제기되는 흥미로운 논제가 아닐 수 없다. 긍정적 가능성과 구조적 제약의 측면이라는 양면성이 내재해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스테이블코인이 재정지배를 완화하고 통화지배를 복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조적으로 국채 수요를 늘려 국채 금리가 낮아지거나 상승 압력이 감소하며 정부의 부채조달 비용이 줄어듦으로써 재정 부담이 완화된다. 이 흐름은 재정지배의 핵심 원인을 해결해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재정지배가 완화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자율성이 확대된다. 재정지배 체제에서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명확하다. 정책금리를 올리면 국채 금리 상승 부담이 커져 재정이 감당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채 수요가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채널을 통해 늘어나고 안정화된다면 정책금리 변동에 따른 국채 시장 충격이 완화되고 발행되는 국채에 대한 금융시장의 흡수 능력은 확대되며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결정 부담도 덜게 된다. 즉 중앙은행은 다시 물가안정 등 본연의 정책 목표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공간을 얻게 된다. 이는 바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상당 기간 이어진 통화지배 체제의 핵심 여건에 해당한다.

한편 구조적 이유로 인해 통화지배로의 복원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은 재정지배를 완화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으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국채 수요 증가는 재정지배의 일부 완화를 가져올 뿐 정부의 재정규율을 되살리는 것은 아니다. 통화지배가 유지되려면 국채 수요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정정책의 규율과 정책의 정치적 중립성 등이 뒷받침되어야 할 당위가 있다. 스테이블코인 자체는 국채 수요를 늘려주지만 정부의 재정규율을 강화해 주지는 않는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은 국채 시장에 새로운 변동성 요인이 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가격의 급격한 변동, 대규모 환매, 뱅크런 등 발생이 국채 매도의 급증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에 의한 국채 수요 증가가 오히려 유동성 리스크 등의 원천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이 확대될 가능성과 함께 유동성 충격에 의한 국채 시장 교란 등으로 재정지배 완화가 아닌 금융위기 요인이 야기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코 '공짜 점심'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이 열게 될 아직 가지 않은 미래는 다음 두 가지 갈림길 사이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재정지배를 완화하고 중앙은행의 황금기를 다시 열어줄 촉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스템 위험의 원천이 될 것인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며 정책결정자들이 어떠한 성찰과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의 통화금융체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 통화지배의 시대를 복원할지를 가늠하는 우선적 핵심 관건은 제도설계에 관한 성찰과 선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지배의 복원을 위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이며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바로 제도설계다. 올바른 제도설계로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이루는 경우 중앙은행은 통화지배의 시대를 구가할 수 있는 여건을 맞게 된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주류 금융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고안된 디지털 자산이 중앙은행의 통화지배 황금기를 복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적 역할은 중앙은행의 통화지배력을 약화한다기보다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적합하게 설계하도록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최종 대부자를 넘어 최종 신뢰 설계자(trust designer of last resort)로서 긴요한 역할을 하며 금융의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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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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