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보조금 전쟁과 승자의 기회

UPI뉴스 / 2023-07-26 15:35:28
'큰정부 선봉대' 미 인플레감축법·반도체법, 2천여억 달러 투자 창출 
교차하는 시각의 주요국 보조금 전쟁···韓, 승자되는 기회로 활용해야
기업·정부, 소통하며 전략판단···강대국 이해관계 속 실리적 접근 필요
작은 정부 옹호자였던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가장 무시무시한 아홉 개의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나는 정부에서 왔고 돕기 위해 여기 있다)라고 했다. 큰 정부의 역설적인 속성과 역할을 표현하려 했던 말이라 하겠다. 레이건 대통령이 정부의 대규모 경제 개입을 배격하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외친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산업의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할 목적으로 정부가 보조금(subsidy)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추진하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가 표방했던 작은 정부가 아닌 큰 정부로 가는 행보다.
 
큰 정부로 가는 길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과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이 선봉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법률들은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등 신규 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 등 여러 방식으로 보조금을 지원한다. 보조금은 정부가 경제주체들에게 등가의 보상을 받지 않고 자원을 이전하는 행위이며 세제 혜택, 무상공여, 유리한 조건의 금융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미 연방정부의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이어 실제 투자가 집행되는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첨예한 이익이 걸려있는 주정부들도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25개 주가 넘는 투자 후보지역을 놓고 고심하던 노르웨이 배터리 회사 프라이어의 26억 달러 규모 투자를 조지아주가 3억5800만 달러에 달하는 각종 인센티브 등 보조금을 제시하여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조지아주는 현대차의 첫 번째 미국 전기차 공장에도 자동차부문 사상 최대인 18억 달러의 보조금을 제시했다. 뉴욕주는 환경친화적 반도체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오클라호마주는 6억9800만 달러의 보조금 프로그램을 만든 지 4주 만에 일본 배터리 회사 파나소닉의 투자를 경쟁 후보지역인 캔자스주를 누르고 유치했다.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이 합세하여 보조금을 동원하면서 펼치는 경쟁적인 투자 유치 열기가 작열하는 7월의 태양처럼 뜨겁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법이 제정된 이후 금년 7월 현재까지 미 전역의 신규 투자 유치 실적이 2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창출될 일자리는 8만5000여 개로 추정된다. 삼성, SK, LG, 현대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도 이 투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보조금을 앞세운 미국의 적극적 산업정책에 대응하여 유럽도 움직이고 있다. EU의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응하기 위한 유럽의 친환경 산업전략이다. 이 전략은 미국의 보조금 공세로 EU 회원국이 차별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그동안 엄격히 통제해온 국별 보조금 지원 제한을 완화했다. 또 회원국의 보조금 지원 확대 과정에서 우려되는 EU 통합 근간인 단일시장 와해를 방지하기 위해 EU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동 전략의 일환으로 EU는 금년 3월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emporary Crisis and Transition Framework)'를 채택하여 탄소중립 산업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보조금 지원을 허용했다. 이에 힘입어 5월 독일은 미국에 투자를 고려 중이던 스웨덴의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에 보조금 지원을 약속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반도체 제조사 인텔은 보조금을 당초 약속한 68억 유로에서 99억 유로로 올려줄 것을 독일 정부에 투자 조건으로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미국-유럽 간 보조금 전쟁 속에서 기업들이 보조금 쇼핑에까지 나서고 있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에 비해 유럽의 보조금이 규모나 신속성 면에서 뒤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의 보조금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보조금은 가격과 생산원가의 괴리 원인이 되어 시장을 왜곡하고 지대 추구를 조장함으로써 기업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도 비판받는다. 그래서 국가안보나 시장실패 방지, 코로나19 백신 제조 등과 같은 공공정책 목적에 주로 지원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선도하는 보조금 전쟁은 지난 수십년간 IMF 등 브레튼우즈 체제를 중심으로 보조금 축소를 설파해온 미국의 과거 행보와도 상충된다. 또 미국과 유럽이 경쟁적으로 동원하는 대규모 보조금을 통한 산업정책은 소규모 경제 국가들의 재정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도 미국 반도체법 등에 영향받아 금년 5월부터 이른바 'K-칩스법(K-Chips Act)'을 시행하면서 반도체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더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즉 한국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확대할 인센티브를 강화한 것이다. 

국제경제 패러다임의 복합적 변혁기일수록 기업과 정부의 긴밀한 소통과 전략적 상황판단이 긴요하다. 교차하는 시각과 논란 속에서도 작금에 전개되고 있는 보조금 전쟁에는 많은 승자가 나타날 수 있다. 그 승자가 되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보조금 전쟁의 기저에는 여전히 과학기술 경쟁이 핵심적 이슈로 자리한다. 그런 점에서 첨단산업에 비교우위를 지닌 한국 기업들이 주요국의 투자 유치 경쟁을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연구개발(R&D)과 제조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인적자원 양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강대국의 첨예한 이해관계 사이에서도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실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업의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산업정책 관련 외교역량을 더 확충하고 특히 민간이 커버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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