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반도체 패권 전쟁과 애덤 스미스

UPI뉴스 / 2023-06-29 09:48:54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에 한국 기업 엮인 형국
블링컨 美국무 방중,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시사
한국, 미·중 양자택일 아닌 실질 이익이 중요
지속가능한 반도체 생태계? 애덤 스미스 다시 읽을 때
이번 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검찰이 이번 달 기소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한국인 반도체 전문가의 스토리를 특집기사로 다뤘다. 검찰은 기소된 혐의자가 200명의 한국인 엔지니어들과 함께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기술을 유출하여 중국에 메모리 칩 공장을 복제 건설하려고 한 유례없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혐의대로 한국의 핵심 반도체 공장이 복제 건설되어 유사한 품질의 제품이 중국에서 대량 생산될 경우 이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끼칠 것으로 보았다. 

법적 이슈와 함께 집중 조명된 대목은 세계 톱 수준인 한국 반도체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중책을 맡았던 핵심 인물이 반도체 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되기까지의 배경이다.
 
먼저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내부승진에서 40~50대 즈음 되어 밀려나면 도리 없이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한국적 기업문화가 중국 기업으로의 두뇌 유출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미·중 경제패권 구도가 형성되기 이전에도 있었던 현상이지만 한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에 위협요인이 될 소지가 있음을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미국의 기술과 전문성에 대한 중국의 접근은 최근 크게 제한받고 있었다. 금년 2월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등 첨단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산업스파이 적발 전담조직(Disruptive Technology Strike Force)을 신설했고 이에 맞서 중국도 오는 7월 1일 스파이방지법 발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와 같은 미·중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최근 들어 매우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던 터였다. 

그렇기에 한국의 간판급 반도체 기업에서 전문가로 큰 엔지니어가 기소된 이번 사건은 한국이 기이하게도 미·중 반도체 패권의 핵심 전쟁터가 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법적인 판단과 함께 기업문화적 요소와 글로벌 역학관계의 렌즈를 통해서도 이번 사건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이번 달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2018년 이래 미 국무장관의 첫 번째 중국 방문이다. 시진핑 주석과 친강 외교부장 등을 만나며 양국 긴장 관계 완화를 도모하고 경제 관점에서도 중국을 분리(de-coupling)하기보다는 위험 제거(de-risking)에 나선 행보로 비쳤다. 

그동안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과 이에 맞선 중국의 미국산 메모리 칩 구매 금지 조치 등과 같은 반도체 패권 전쟁이 격화되어 온 상황에서 미 국무장관의 이번 방문이 무역갈등 완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는 국면이다. 향후 글로벌 역학관계의 변화 속에서 반도체 패권 전쟁의 흐름을 읽어나가야 할 필요성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미·중 갈등과 패권 전쟁에 보다 유연한 자세로 대응하면서 반도체 수요의 비중이 가장 큰 미·중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닌 실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적 역량이 발휘되어야 함을 새삼 일깨워 준다. 우리 기업들에게 첨예한 이익이 걸려있는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 등의 후속 협의에도 두달 전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대로 긴밀히 임하고 소기의 디테일을 구현시켜야 한다.

금년 6월은 애덤 스미스가 탄생한지 300주년이 되는 달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며 자유시장주의를 주창했고 도덕감정론에서 정의의 룰과 질서를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룰이 전제되어야 함을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며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기에 작금의 혼란스러운 세계 반도체 시장에 제대로 된 원리가 작동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다. 애덤 스미스의 철학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자유로운 시장 경쟁과 함께 공정한 질서와 법의 지배가 긴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야심과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도 자유시장주의와 정의의 룰이 지켜져야 한다. 과학기술의 힘이 반도체를 이끄는 원동력이므로 연구개발(R&D)과 인적자원 양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도체 패권을 가르는 근본적인 요소는 과학기술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인적자원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기업문화와 투자가 존중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기업의 혁신 노력에 더하여 각국 정부의 국제정치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는 본격적인 반도체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 기저에는 늘 정의의 룰과 법의 지배가 함께 하여야만 인류의 삶과 문명을 밝혀주는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가 지속가능하다.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어야 할 때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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