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미국 디폴트는 결코 없다지만 과다 국채 발행은 어쩔 건가

UPI뉴스 / 2023-06-01 16:29:02
이번에도 발생하지 않은 미국 디폴트
수정헌법 14조 발동 자제···입법적 해결
부채한도 문제에선 자유로워졌다지만
과다 국채발행 문제까지 해소되진 않아
미국의 디폴트는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 부채 한도 협상을 놓고 수개월 간 치열한 각축을 벌여왔던 여야가 디폴트 시점이 임박한 지난 주말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된 법안은 하원 운영위원회를 찬성 7, 반대 6으로 가까스로 통과한 뒤 5월 31일 하원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314, 반대 117로 의결되었다. 하원보다 합의 법안에 대한 반대파가 적고 민주당 의석이 많은 상원에서 의결이 이뤄지면 곧 입법 절차가 마무리된다. 

그동안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은 미국 수정헌법 14조(Fourteenth Amendment to the US Constitution)를 발동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공화당을 압박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공화당 의원들도 이에 맞서며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양측은 현재 약 31조4000억 달러로 설정되어 있는 부채한도 적용을 2025년 1월 1일까지 유예하되 2024~2025 회계년도 예산지출을 일부 제한적으로 운영토록 하는 타협안에 합의했다.

미국의 부채한도가 첨예한 이슈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부채한도 협상 때마다 정치적 갈등이 일었고 수정헌법 14조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곤 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디폴트된 적은 없었다. 수정헌법 14조가 발동된 적도 없었다. 남북전쟁 이후 남부 주들의 전쟁부채 상환 거부를 우려하여 1868년 만든 수정헌법 14조 4항은 '미국 정부 부채의 정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The validity of the public debt of the United States shall not be questioned)'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부채의 정당성과 유효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그 부채에 인위적인 상한선을 정하는 것은 수정헌법 14조에 저촉된다는 논리가 나올 법하게 된다. 이번 부채 한도 협상 과정에서도 논리 공방이 치열했다.

수정헌법 14조를 둘러싼 해석과 관련하여 로렌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의회가 1917년 이후 100년 넘게 설정해온 부채한도에 얽매이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 채무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명령할 수 있으며 이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기보다는 의무임을 강조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은 부채한도는 위헌 소지가 있고 이로 인해 미국 정부의 채무 이행 의무가 방해받는다면 그 한도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마이클 맥코넬 전 연방판사는 수정헌법 14조의 문맥을 억지로 갖다 붙여 대통령의 권한을 부풀리는 것은 위험한 난센스라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수정헌법 14조로 디폴트 문제를 돌파하려면 헌법적 논쟁이 불가피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정헌법 14조가 실제 발동되고 최종적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의 헌법적 판단을 받아봐야 결론이 나는 사안인 것이다. 그래서 수정헌법 14조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존재인데, 아직 뚜껑이 열린 적은 없다. 수정헌법 14조가 실제 발동된 적이 없다. 

이번 부채한도 협상에서 디폴트의 공을 사법부로 넘기지 않고 대신에 합의 법안을 만들었고 이번 주는 바로 그 법안을 처리하는 입법부의 시간이 되고 있다.

사법부 판단에 맡기든 입법부 결정에 맡기든 앞으로도 언제든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미국 디폴트 이슈의 본질은 경제적 문제다. 수정헌법 14조가 실제 발동되어 연방대법원이 이를 수용할 경우에도 법적으로 부채한도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으나 과다 국채 발행 등이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입법부 결정으로 2025년 1월 1일까지 부채한도를 당분간 늘릴 수는 있겠으나 미국 국채 발행 확대가 가져오는 파급 영향 등에서 비롯되는 재정준칙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결코 디폴트되지 않는다'(The United States never defaults). 필자가 미국 로스쿨에서 수강했던 파산법 수업시간에 담당 교수였던 배리 셔머 연방파산법원 판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수정헌법 14조보다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재정 패권(fiscal supremacy)을 과시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자신감으로 비쳤다.

미국은 디폴트되지 않을 것임을 이번에도 스스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재정준칙의 문제, 국제금융시장 등 글로벌 파급영향은 다른 차원의 과제로 남는다. 

통화정책 등 측면의 고려는 어떠해야 할까. 지금 한미 양국의 통화정책 기조는 '신중한 긴축'(cautious tightening)으로 읽힌다. 물가상승률이 둔화하고는 있지만 물가목표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전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이다. 

팬데믹, 글로벌 봉쇄, 디지털 전환, 공급망 재편 등 패러다임 대전환기와 위기 정책대응과 경제 재개 등 복합적 환경을 지나는 중이다. 그동안의 금리인상 경로와 효과를 감안하면서도 앞으로의 정책 여건을 살피고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부채한도 합의 이후 미국의 재정정책과 금융시장 상황 등이 인플레이션 억제 등 한미 양국의 통화정책 여건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 적절한 재정·통화정책과 함께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긴요한 제도와 제도운영 면의 구조개혁 추진 노력도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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