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통제만 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다"
주무 이상민 행안장관은 책임회피성 발언만 미국인들은 핼러윈에 '진심'이었다. 조용하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차고를 핼러윈 테마방으로 꾸미는 이들이 적잖았다. 차고 전체를 개성있게 꾸미고 자기가 입을 코스튬도 맞추는 식이다. '유령의 집'으로 차고를 꾸미던 40대 주민은 "한달 동안 작업했다. 1만 달러 들었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도미토리(기숙사)였다. 아홉살 아들, 다섯살 딸의 손을 잡고 여대 기숙사를 찾았다. 벨을 누르면 각종 코스튬 차림의 학생들이 타국의 꼬마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백설공주에서 마귀할멈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 방의 주인은 어떤 캐릭터일까, 각종 분장의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기숙사를 한바퀴 돌고 나오니 아이들 손엔 사탕과 초콜릿이 한가득이었다.
그날 저녁 현관 벨이 거푸 울렸다. 문을 열면 '처키'나 '유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동네 꼬마 손님들이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미소 띤 얼굴로 사탕, 초콜릿을 쥐여줬다.
2006년 가을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핼러윈 추억이다. 핼러윈이 뭔지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웃끼리 마음을 나누는 서양의 오랜 풍습 정도로만 기억할 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핼러윈(Halloween)은 만성절(모든 성인의 축일) 전날인 10월 31일 행해지는 축제라고 한다. 고대 켈트족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이들은 괴상한 복장을 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는다고 한다.
그 훈훈한 핼러윈이 한국 이태원에서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다.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후진국형 참사다. 광장도 아닌 곳에 10만 인파가 몰린다는데 안전대책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참사 현장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폭 3.2~5m, 길이 50m의 비탈진 골목에 인파가 양방향으로 몰려들면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이다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 좁은 곳에서 156명이 숨졌다. 그때 정부는 어디에 있었던가. 수시간전부터 위중하다는 신고가 쇄도했다는데, 경찰은 무얼 한 건가. 전문가들은 "일방통행으로 통제만 했더라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터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잇단 책임 회피 발언으로 국민 가슴에 불을 질렀다. 꽃다운 청춘들이 서울 한복판서 무더기로 스러진 판국에 국민안전 주무장관이 할 소리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안전에 대해 국가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8월 폭우피해 당시)이라고 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시민들을 지켜줄 국가는 없었다. 폭풍은 지나갔고, 망자는 돌아올 수 없다. 부질없는 회한이 가슴을 저민다. 채 피지 못하고 비명(非命·제명대로 살지 못한 죽음)에 간 이들의 명복을 빈다.
K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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