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서도 '과연 될까' 의구심 컸지만…MS와 분쟁종료
2014년 3월께 美 '인터디지털' 한국인 셋 중 2명 영입 "한 해 마이크로소프트(MS)에 지불하는 특허료가 현찰로만 1조 원이 넘습니다. 이걸 절반으로 줄여 주세요."
2014년 3월께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연간 MS 특허료를 5000억 원 수준으로 낮추라'는 특명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콕 집어 MS만을 언급하긴 했지만,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스마트폰 판매량에도 로열티 명목으로 퀄컴·구글·애플 등에 해마다 지급하는 수조 원대 특허료는 늘 삼성전자를 괴롭히는 골칫거리였다.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기술 특허 공룡'들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고 사장은 임원 회의를 소집해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회사 내부에서도 '과연 될까' 의구심이 컸던 상황. 하지만 이 자리에서 신승혁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기술전략팀 전무는 "쉽지 않지만 한번 해 보겠다"고 답했다.
신 전무 답변에 반색한 고 사장은 당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28층 사무실을 썼는데 바로 아래층인 27층에 위치한 무선사업부 기술전략팀 '특허개발그룹'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신 전무가 그룹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했다. MS의 약 220개에 달하는 랩(연구실)이 보유한 특허 전부를 분석한 삼성전자는 1년 동안 '공격 특허'를 개발하는 한편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특허 협상 대응책을 마련했다.
공격 특허란 권리 범위가 넓게 형성돼 상대방의 침해행위 등에 대해 적극적인 권리행사가 가능한 특허를 일컫는다. 경쟁업체 사이에서 본인만의 독보적인 기술로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의도로 특허를 출원한다. 특허 청구 범위가 넓을수록 웬만해서는 공개된 기술을 바탕으로 특허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기술을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수조원대 MS·퀄컴·구글·애플 특허료…삼성전자 '골칫거리'
삼성전자는 2011년 9월 MS와 특허 교차 사용(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활용하는 MS 특허 기술에 로열티를 지급해왔다. 그러나 2013년 MS가 노키아 휴대폰사업부를 인수해 휴대폰 제조사로 변신하자 계약 위반을 이유로 특허료 지불을 중단했다. 이후 밀린 특허료 원금은 줬으나 지급이 늦어져 발생한 이자 분은 주지 않았다.
MS는 삼성전자가 이자 분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4년 8월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삼성전자가 MS를 상대로 국제상공회의소 국제중재재판소 홍콩재판소에 중재 신청을 내면서 특허 전쟁이 불 붙었다.
2015년 2월 삼성전자 측은 "MS와 특허료 분쟁과 관련해 합의하고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며 특허 분쟁 종료를 발표했다. 특허 소송이 본격화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신속한 종결로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삼성전자가 사건 개시 다섯 달 전부터 미리 치밀하게 준비해온 공격 특허 앞에 MS도 물러섰다는 전언이다. 삼성이 MS 특허를 침해한 만큼 MS 또한 삼성 특허를 침해한 부분이 적지 않아 특허 분쟁이 장기화하고 추가 소송으로 이어지면, MS가 삼성 측에 물어줘야 할 금액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가 4일 UPI뉴스에 소개한 일화다. 이 관계자는 "일찌감치 국제 특허 중요성을 간파하고 철저히 준비한 것이 오늘날 '글로벌 1등 기업' 삼성전자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MS와 특허전을 승리로 이끈 신 전무는 삼성전자가 선진 특허 관리 기법·노하우 및 시스템을 접목시키기 위해 미국 특허 전문 연구소 '인터디지털'에서 영입한 인재다. 당시 삼성전자는 인터디지털의 한국인 연구원 3명 가운데 신 전무를 포함한 두 명을 스카우트했다. 나머지 한 명은 연기자 차인표 씨의 '학력고사 전국 4등' 천재 형으로 유명한 차인혁 박사다. 차 박사 역시 삼성SDS 상무와 SK텔레콤 전무를 거쳐 현재 CJ그룹 CDO(Chief Digital Transfomation Officer·부사장)로 근무 중이다.
'공격 특허'로 역공…국제특허 중요성 눈뜬 삼성
이 일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국제 표준특허 개발 및 출원·등록에 집중하게 된다. 실제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우리나라가 3대 국제표준화기구(ISO·IEC·ITU)에 신고한 선언 표준특허 건수는 3344건(23.5%)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519건으로 세계 5위에 머물던 2016년과 비교하면 6.4배나 급증했다.
여기엔 삼성전자가 절대 동력으로 작용했다. 기관별로 보면 삼성전자는 2799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 표준특허 전체의 84%가 삼성전자 한 곳에서 나온 셈이다. 작년 하반기 삼성전자는 ISO·IEC JTC1에 영상 코덱(VVC·Versatile Video Coding, EVC·Essential Video Coding) 특허 2500여 건을 집중적으로 선언했다.
미국 특허정보 전문기관 IFI 클레임스가 발표한 '2020년 미국 특허 취득 톱 50' 랭킹에서 삼성전자는 총 6415건의 특허를 취득, 전 세계 기업 중 지난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특허를 획득했다. 2006년부터 15년 연속 2위 달성이다. 첫 번째는 IBM으로 9130건을 확보해 28년 연속 미(美) 특허 취득 1등을 지키고 있다.
유럽 특허청(EPO)이 발간한 '2020년 EPO 특허 지수'에선 삼성은 3276개의 특허를 출원해 전년도인 2019년 1위를 기록했던 화웨이를 제치고 전 세계 기업별 순위 1위를 재탈환했다.
반도체와 함께 삼성전자의 양대 먹거리 축인 IT·모바일(IM) 부문은 올해 1분기 매출 29조2100억 원, 영업이익 4조3900억 원을 각각 시현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26조 원) 대비 12% 늘었고 직전 분기인 작년 4분기(22조3400억 원)와 견주면 31% 증가했다. 이 추세를 남은 3개 분기 내내 이어간다면 연매출 10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KPI뉴스 / 박일경 기자 ek.par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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