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탄소중립' 선언했지만, 기업들은 "아직"…왜?

주현웅 / 2021-06-01 16:02:45
RE100 가입 저조한 한국 기업, 재생에너지 비싸고 생태계 조성도 미흡
자칫 수출길 가로막힐 수도…저탄소 투자 세액공제 등 정부 지원 요구
지난달말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를 바라본 국내 기업들의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급 인사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및 탄소중립 실현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어려운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해외보다 비싼 재생에너지 가격 때문에 재무부담도 크고,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도 여럿인 탓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탄소중립 가속화를 위한 정부 지원 확대를 바라는 눈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뉴시스]

'RE100' 가입 망설이는 한국 기업

국내 기업의 탄소중립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면은 RE100 가입 현황이다. 미국의 애플과 구글 및 유럽의 BMW와 이케아,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기업 상당수가 일찍이 RE100에 가입했지만 한국 기업은 찾기 힘들다. 공기업인 수자원공사와 재생에너지 기업인 한화큐셀, 그리고 SK그룹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등 손에 꼽히는 정도다.

RE100은 기업이 늦어도 오는 2050년까지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이 발족했다. 올해 4월까지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세계에서 총 302개사에 달한다. 업계에 따르면 그 이후로도 RE100 가입은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지만 한국 기업의 가입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기업별로 봐도 완성차 기업에서 BMW와 테슬라 및 GM 등이 RE100에 가입했지만 경쟁사인 현대차는 무소식이다. 반도체에서도 애플과 인텔 및 TSMC 등 경쟁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와중에 삼성전자는 이를 망설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와 다르게 유럽과 미국, 중국의 해외 사업장에서는 전력을 100%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상태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비용이 해외보다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전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역시 문제"라며 "사실 해외는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대규모 사업장을 가동할 만한 양을 공급받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 전북 새만금에 조성된 수상태양광발전단지. [뉴시스]

재생에너지 확대는 재무부담…정부지원 요구

실제로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곧 재무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는 세계적으로 비싸고, 전기는 훨씬 저렴해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재생에너지의 균등화발전비용(전력생산에 필요한 비용·LCOE)은 ㎿h당 태양광 106달러, 육상풍력 105달러다. 세계 평균은 그의 절반 수준인 태양광 50달러, 육상풍력 44달러다.

전기요금은 정반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전기요금은 가정용이 ㎾h당 8.02펜스(약 116원), 산업용이 ㎾h당 7.43펜스(약 107원)로 나타났다. OECD 26개국 평균은 각각 16.45펜스(약 240원), 8.56펜스(약 120원)다. 탄소배출을 일으키는 전기는 세계 평균보다 최대 2배 저렴하나,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세계 평균의 2배 값이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의 총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2050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공급체계 구축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 중 약 80%를 차지하려면 335GW의 설비용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활용 가능한 재생에너지 입지 잠재량은 최대 207GW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도 목표와 현실 간의 괴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P4G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이 국제사회 탄소중립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보고서는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전력수급계획에 명시된 목표치는 오는 2034년까지 석탄(29.9%), LNG(23.3%)로 탄소배출 에너지가 50% 이상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면 국내의 수출길도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수출기업에 대한 탄소중립 요구도 거세지고 있어서다. 예컨대 지난 2018년 삼성SDI는 BMW에 부품을 납품하려다 RE100 가입을 요구받았다. 결국 삼성SDI는 국내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재생에너지 사용이 가능한 해외공장으로 옮겼다. 삼성SDI는 현재도 RE100 가입을 못했다.

그나마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기업들의 숨통을 트일 요소로 꼽힌다. 이 개정안에 따라 재생에너지 전력공급자도 직접 PPA(전력구매계약)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은 한국전력을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했던 탓에 독점 논란이 있었다. 이 개정안은 재생에너지 판매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가격 인하 및 원활한 공급을 기대하게 한다.

다만 이 역시 재생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담보하지는 못하는 만큼, 기업에서는 탄소저감 연구개발(R&D) 정부지원 및 관련 투자 세액공제 등을 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경제를 이끄는 기업 대부분은 제조기업인데, 이는 IT와 금융 등을 주로 영위하는 유럽과 미국 등의 국가보다 전력 사용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출범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데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그는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속에서 재무부담이 특히 더해진 게 국내 기업의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탄소중립위원회가 자칫 기업들에 대한 무리한 규제를 양산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재계의 의견도 다수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공식 출범했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유은혜 사회부총리 등 정부위원 18명과 기업계·학계·시민단체 등에서 위촉된 민간위원 77명 등 모두 97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KPI뉴스 / 주현웅 기자 chesco1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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