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덤 속으로 묻어버린 듯한 부친, 빛 속으로 복원
남북 관계 격랑 속 고통 겪는 이들의 비극 환기시키는
소설 여전히 유효한 상황…"반갑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
갑자기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적대적인 관계로 돌변하는,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남북관계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패턴이다. 1972년 이른바 7·4남북공동성명이 그러했고, 이후 이어진 적대와 갈등 국면은 잘 알려진 대로이다. 가장 가까운 과거에는 2018년 이른바 판문점 도보다리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상징되는 열탕이 있었고, 지금은 적대적인 두 국가로 살면서 통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는 흐름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남과 북 정권 담당자들과 주변 패권 국가들의 이해타산이 만들어낸 결과일 테지만, 그 틀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은 어찌할까.
| ▲부친이 쓰다 만 자서전을 40여년 만에 소설로 완성한 김이정. 그는 절판됐던 이 소설을 다시 복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이섭'은 50년 전 평양이 열리는 갑작스러운 국면에 몽매간에도 그리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희망을 품었지만, 이내 그를 감시하고 구속하는 사회안전법이 발효되는 삼엄한 국면으로 바뀌면서 뇌출혈로 독한 한 생을 마감했다. 이섭은 6.25전쟁 국면에서 북으로 올라갔다가 그를 따라 가족들이 올라온 줄도 모르고 다시 남으로 가족을 찾아 내려왔다가 그들과 생이별을 했다. 이후 남쪽에서 다른 여인과 다시 아이들을 낳았다.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소설가 김이정인데, 그가 아버지 이야기를 장편 '유령의 시간'(2015)으로 펴냈고 대산문학상(2016)까지 받았다. 세상이 통일에 무감해지듯 화제가 됐던 이 소설도 절판 상태가 됐고, 이를 안타까워한 작가와 새로운 출판사(교유서가)가 합세해 이번에 개정판을 다시 내놓았다. 지난해 고향 안동으로 부친의 묘소를 이장하고 북으로 간 이복 형제들의 이름까지 비석에 새겨넣은 뒤, 올해 부친의 기일에 맞춰 펴낸 개정판을 제사상에 올렸다.
-40년 동안 준비한 역작이 절판 상태에 있는 동안 많이 답답했겠다.
"아버지를 다시 무덤 속에 가둔 느낌이었다. 이 소설이 팔리든 안 팔리든 어쨌든 좀 살아있기를 바랐는데, 너무 빨리 품절이 되고 절판 되니까 안타깝고 힘들었다. 그래서 빛 속으로 다시 살리기를 바랐던 건데 3년 넘게 품절 상태로 있었다."
-개정판은 손을 많이 보았는가.
"문장을 조금 고치고 디테일들만 다시 살리는 정도로 만졌지만 기본 서사가 달라진 건 없다. 디테일, 예를 들면 경북 내륙지방을 구체적으로 안동이라고 표기를 한다든가, 이렇게 명확하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 것들을 살렸고 마지막 장면도 몇 문장 보강한 정도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찬찬히 고쳤으면 좋았을 뻔 했는데 아버지 기일에 서둘러 맞추다보니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남북작가대회 성원으로 북한을 방문해 평양 고려호텔에서 그의 이복 형제들이 살고 있을 맞은편 아파트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대목이다. 소설 속 화자 '지형'은 개정판에서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내를 발견한다. 개정판에 추가된 세 문장. '지형은 맞은편 아파트를 바라본다. 베란다에 나무 창틀을 한 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위층엔 러닝셔츠만 입은 한 사내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초판과 동일하다. '지형은 편지를 든 채 갑자기 맞은편 아파트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피해자의 상처에 집중해서 그렸던 것 같은데, 사실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그런 줄기가 분명하긴 하지만 개정판 교정을 끝내놓고 보니 이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단지 상처 입은 사람이 아니라 그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 이런 것들을 좀 더 드러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고, 사람들이 그 부분을 잘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을 쓸 때 다짐한 '미화하지 말자'는 원칙은 실현됐다고 보는가.
"초점은 아버지를 영웅시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자는 의미였다. 그 당시 사회주의자라는 건 혁명을 꿈꿨던 사람인데, 이 소설에서 내가 너무 작게 그린 건 아닐까, 꿈꿨던 이상 사회가 있을 텐데 너무 일상에 매몰된 사람으로 그려낸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건 내 몫은 아닌 것 같다. 한때 혁명을 꿈꿨지만 남한 사회에서 완전히 유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일상에서 드러나기를 바랐다."
-'이섭'이 장인과 나누는 대화 중 '어떤 사상이든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대목은 작가의 생각으로도 읽힌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절대적인 것들이 무너지고 훼손되면서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사회주의는 이미 무너졌고, 북한의 사회주의가 보이는 모습만 봐도 절대성을 가지기에는 많이 모자라고 잘못 진행돼 온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이 갖고 있는 어떤 동기나 핵심, 이런 것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 이런 것들이 아닐까. 어쨌든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된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상이 그렇듯 그 역시도 완벽하지 않다는 회의가 있는 거다."
-소설 속에서 이섭은 자신의 신념은 옳았다고 소리친다.
"아버지가 옳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사실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실제 장면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있던 이상과 꿈, 이런 것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던 증거 같기도 한데, 나중에 회한이 됐겠지만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 새삼스럽게 통일을 두고 엇갈린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당장 통일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먼저 평화가 정착된 다음에 왕래라도 하고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50년 전에는 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더 불가능한 상태로 막혀 있으니까 답답하기만 하고 대체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상하려고 이러나 싶기도 하다. 작년에 만주 지역에 갔다가 압록강변에서 신의주를 오랫동안 바라볼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기가 막혔다. 압록강을 따라서 단둥까지 왔는데 강을 건널 수 없고 완전히 단절된 곳을 보면서 저기에 이복 오빠를 비롯한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나왔다. 대체 이제는 죽기 전에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구체적인 개인들의 서사를 통해서 통일 내지는 남북의 교류 필요성을 되새긴다는 차원에서 '유령의 시간'은 여전히 유효하다.
"2018년 판문점 도보 다리에서 남북 정상이 만날 때 나는 내 소설의 역할은 이제 여기까지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 소설을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 북에 있는 형제들과 친척들 소식을 들은 이후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소설의 유효기간이 자꾸 이렇게 연장되는 게 화가 난다. '유령의 시간'이 역사의 뒷페이지로 묻히더라도 새로운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못 쓰게 돼버린 이 상황이 안타깝다."
| ▲김이정은 "아버지를 집어삼킨 사상이란 것도 결국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아버지는 생이별한 아내를 호적에서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작가의 모친인 소설 속 '미자'와 4남매를 낳고 살다가 뒤늦게 혼인신고를 했지만, 작가를 포함한 3남매의 호적상 모친은 이북에서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의 전처로 등재돼 있는 상황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이정은 '친생자부존재증명' 소송을 통해 엄마를 엄마의 자리로 복원시키려고 했지만, 이마저 복잡한 사법절차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이정은 "이전에는 내 개인의 문제들에 많이 집중해서 썼지만 지금은 이 사회와 역사 속 개인들에 대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 소설을 다 쓰고 나니, 단순히 내 아버지 이야기뿐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사람들, 확장하면 전쟁이나 사회적 격변을 겪은 사회 속 한 인간의 이야기들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소설에서도 언급한, 독립운동을 한 종조부 동전(東田) 김응섭(金應燮·1877~1957)의 자서전과 여행기를 붙들고 새로운 장편을 구상 중인 배경이기도 하다. '지구의 단층운동보다 더 지독하게 어긋나버린 아버지의 운명'에 바치는 딸의 헌사.
'그는 내게 인간은 사랑하고 신뢰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가르친 사람이었다. 그를 통째로 집어삼킨 사상이란 것도 결국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는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마다, 자신에 대한 회의가 몰려올 때마다 나는 그를 떠올렸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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