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카페 방문객에게 건네온 절기마다 쓴 편지 글 모음
그동안 써 온 작품들 이면 드러내는 선물 같은 이야기들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지, 언젠가는 당신이 말해줄 것"
소설가 최진영이 등단 18년 만에 첫 산문집 '어떤 비밀'(난다)을 펴냈다. 24절기를 소제목으로 삼아 띄운 24개의 편지글 형식이다. 3년 전 제주로 내려가 그의 배우자가 운영하는 카페 방문객들에게 건네 온 편지 글을 한데 모았다.
| ▲첫 산문집을 펴낸 소설가 최진영. 그는 "산문은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게 만든 글쓰기"라고 말한다. [난다 제공, ⓒ김승범] |
-우리에게 사랑은 영원, 영원은 무한이니까 카페 이름은 '무한의 서'입니다. 그는 매일 생두를 볶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그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서 나는 편지를 씁니다. …삶을 사랑으로 차곡차곡 채우고 싶어요.
'작가의 말'처럼 이 산문집에 모인 글들도 시종 뜨거운 사랑의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청명'(淸明)에 "나는 미움을 미뤘습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요/ 언젠가는 미루는 수고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온다면/ 마지막 편지를 쓰겠습니다"라고 쓴다. 그는 "우리가 이생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길 바란다"면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마음뿐"이라고 덧붙인다.
사랑을 중심 키워드로 삼되 성장기와 내밀한 생각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그가 부지런히 생산해온 장편과 소설집의 배경을 친절하게 드러내는 역할도 수행한다. 산문집 제목이 '어떤 비밀'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지난해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단편 '홈 스위트 홈'에 나오는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는 문장을 두고는 "진짜 소중한 기억은, 나를 살게 하는 기억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고 부연한다. 그가 서울 중구 프란치스 코교육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첫 산문집인데, 소설 쓰기와는 어떻게 다르던가.
"18년 동안 글을 쓰면서 작정하고 에세이를 쓴 것은 이번 처음이었는데 소설 쓰기가 나에게 정말 잘 맞는 옷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로 소통하는 장르라서 오히려 소설 속에서 저는 더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산문은 전면에 저의 이야기와 생각을 내세우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더 주저하면서 감추고 싶고 문장 하나마다 소설 쓸 때와는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또 하나, 소설은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즐거움이 있는데 에세이는 제가 다 아는 이야기라서 별로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원고를 읽어주신 분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해서, 내 이야기가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글쓰기였다."

-각 절기마다 담은 마음의 빛깔이 다른가?
"2023년 경칩(驚蟄)부터 2024년 우수(雨水)까지 절기 편지를 1년 간 썼으니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로 나눌 수 있을 텐데, 다 애틋하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어서 그 계절에는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여름의 입하(立夏)와 겨울의 대설(大雪) 편지를 추천한다. 절기 편지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카페에 오시는 분들께 마음을 전하고 싶다."'입하'의 편지는 '귀순이,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바치는 글이다. 최진영의 엄마 귀순 씨는 '열네 살 때부터 직물공장에서 주야간 교대로' 일했다. 밤새 일한 엄마는 환한 낮에는 커튼을 다고 잠들어, 오래 깨지 않으면 어린 딸은 엄마가 아픈 걸까봐 무서워 일부러 큰소리를 내서 엄마를 깨우기도 했다. 그는 "나의 중심에는 폭발하기 직전의 용암 같은 사랑이 있다"고 쓴다. '대설'에는 '나의 가장 오래된 단 한 사람' 이야기가 눈처럼 내린다.
-절기에 쓰는 편지는 어떤 의미인가.
"하루하루 다른 하늘 날씨, 비가 오면 비가 오는 게 신기하고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게 아름답다. 같은 날씨와 같은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제가 꼭 제주에 살아서는 아닌 것 같고, 서울에 살 때도 천안에 살 때도 대전에 살 때도 언제나 창밖으로 보이는 그런 풍경과 바람의 느낌과 온도, 그런 것들이 저를 깨어 있게 만들었다. 그 감각이 저에게 너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절기 편지까지 이른 것 같다."
-편지라는 소통 수단에 대한 생각은?
"편지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게시판이나 카페에 여러 사람 보라고 쓰는 공식적인 글이 아니라, 편지라는 것은 오직 너에게만 전하는 나의 마음이다. 메일로 보내면 보낸 메일함에 나의 메일이 남아 있지만 편지라는 것은 오직 너에게만 보내는 마음을 밀봉해서 그냥 상대방에게 주는 거다. 그 마음은 나에게 없고 그 사람에게 가버린다. 그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서 읽고 버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소통 방식이 저에게는 너무 애틋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 나를 전하려는 마음 들이 그 편지지와 편지 봉투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정말 소중한 것 같다. 메일을 쓰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제가 소설을 쓰는 마음과도 비슷하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도 편지를 주고받고 읽는 행위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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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영은 "이번 산문집은 제 소설을 따라 읽어준 독자들에게 드리는 선물과도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15년 펴낸 장편 '구의 증명'이 8년이 지난 지난해 불쑥 베스트셀러에 올라 쉬 내려오지 않은, 15만 부 넘게 팔려나간 '역주행 사태'는 출판계는 물론 작가 본인도 쉬 해명하지 못한다. 애도와 사랑의 행위로 연인 '구'의 죽은 몸을 '담'이 먹는 지독한 사랑의 서사이다. 죽은 '구'의 이런 서술.
-애무하듯 입술과 혀로 내 얼굴을 핥다가 조금씩 뜯어먹으며 담은 울었다. 울면서 구야, 구야, 내 이름을 불렀다. 부르며 말했다. 너는 나를 왜 이토록 괴롭게 하니. 너는 나를 왜 이토록 고통스럽게 해. 내가 살아 있을 때, 담은 내게 너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 적 없었다.
최진영은 '우수'의 편지에 쓴다. "십여 년 전 어느 겨울, (이십년 전 이맘 때 만난) 소년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 됩니다. 서른을 넘긴 나는 조금 더 어른에 가깝고 춥고 무서워서 우리는 문득 연인이 됩니다. 그는 방황하듯 나를 사랑하고 나는 저항하듯 그를 사랑하고 '구의 증명'을 쓰다가 고개를 들면 내 앞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어요. …작은 성당에서 우리는 부부가 됩니다. 불행과 비극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오늘도 그는 카페에서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립니다. 나는 내 방에 앉아 글을 씁니다."
-'구의 증명'이 뒤늦게 뜨거운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산문에 등장하는 저 '소년'은 그 소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가.
"소설이 좋으니까 그렇겠지라는 마음은 있는데, 모든 좋은 소설이 그렇게 뒤늦게 관심을 받는 건 아니라서 썩 훌륭한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그 이유를 모르고 싶다. 그 이유를 알면 또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을까.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결국 사람들이 사랑을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 이야기가 지겹고 뻔하고, 할 만큼 했고 볼만큼 봤다고 생각하는 한편에는 그래도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구의 증명'을 썼는데 사랑이라는 걸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해도 될까, 라는 의문을 품고 그 소설을 시작했고 소설을 끝내면서는 다시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됐던 것 같다."
제주살이를 마치고 올해 말에는 파주로 올라와서 다시 카페를 연다는 최진영은 "이 산문집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 제 소설을 따라 읽어주신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마음과도 같다"면서 "편지를 받는 마음으로 그렇게 천천히 1년 동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4절기에 담은 마음은 결국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다"면서 "사랑에는 미움, 오해, 착각, 질투, 서운함, 억울함, 치사함, 외로움, 고통 같은 모든 감정이 들어가 있어서 편지를 쓰는 내내 사랑은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았다"고 이었다. 마지막 편지를 맺는 말.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알 수 없어서 바라본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당신이 말해줄 것만 같아서.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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