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우리는 평생 서로를 기다릴 수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11-22 13:27:36
2024 한베문학평화포럼 합동시집 출간 하노이 포럼
두 나라 시인 각 20명씩 40인 시집 출간하고 만난 자리
하노이 국립 사회인문과학대학 한국학과 학생들도 방문
"평생 서로를 기다릴 수 있다는 표현은 명령이자 희망"

2024 한베문학평화연대 포럼이 지난 1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과 베트남 시인 40인의 시를 모은 시집 출간 기념회를 중심으로 치러졌다. 심포지엄은 한국과 베트남 시인 각 20인의 시를 양국어로 함께 실은 시집을 앞에 두고 한베 작가 교류의 의미와 작품들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하노이 베트남작가협회 출판사에서 한국과 베트남 양국 시인들이 만나 합동시집 출간 기념 포럼을 진행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번에 출간된 한베 합동시집 표제 '우리는 평생 서로 기다릴 수 있다'는 베트남 시인 르엉 응옥 안(59)의 작품 '전이'에서 따온 문구이다. 르엉 시인은 "세상의 고아들이 울부짖는 소리…/ 사람들은 평생 서로를 기다릴 수 있다-앞에서/ 사람들은 평생 서로를 따라갈 수 있네-뒤에서/ 사람들은 평생 함께 할 수도 있다-선천적 결핍처럼"이라고 썼다. 대표단의 인사말에 이어 양국 시인들은 하노이작가협회 출판사 홀에 마련된 공간에서 5명씩 나서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소감을 나누었다.

 

한베문학평화연대가 양국을 방문하며 교류를 이어온 가운데 이번 하노이 포럼에는 한국에서 문인 15명이 참석했다. 방현석 단장을 위시해 원로소설가 현기영, 시인 김태수·이은봉·김수열·손세실리아·장석남, 소설가 김이정·박혜영·김강·최지애, 평론가 고명철, 문화 기획자 이근욱, 사진작가 최경자 등이 참여했다.

 

이날 출간 기념 심포지엄은 베트남작가회 주석 응웬 꾸앙 티에우의 환영사로 막을 열었다. 응웬 주석은 "이 시집 제목 '우리는 평생 서로를 기다릴 수 있다'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어제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계속해서 만나라는 명령이자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 작품을 통해서 오히려 제 고향인 베트남을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면서 "다시 한 번 시집 제목처럼 우리는 평생 서로를 기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합동시집 출간 포럼에서 방현석 한국측 대표가 베트남작가회 주석 응웬 꾸앙 티에우(왼쪽) 환영사에 이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답사에 나선 소설가 방현석은 "베트남에 오면서 세 가지 숫자 120, 80, 30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120년 전 프랑스와 싸운 베트남 독립운동가 판보이쩌우의 '월남망국사'가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국에서 일찍이 '월류'가 형성됐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한국 지식인들 중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로 사용됐으며, 일본이 들어와서 가장 먼저 판금시킨 책이 바로 베트남 투쟁사를 다룬 이 책이었다"면서 "한국은 일찍이 베트남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큰 상상력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방현석은 이어 "내년이면 나란히 한국과 베트남이 1945년 식민지로부터 독립된 지 80년이 되는 해"이라며 "베트남은 먼저 분단을 해결하고 통일됐지만 한국은 아직 분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고 숫자 '80'에 의미를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30'이라는 숫자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30년 전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 모임'을 결성해 베트남을 찾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온 인연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는 "우리 젊은 작가들이 베트남을 '사랑하는'도 아니고, '연대하는'도 아닌, '이해하려는'이란 말을 붙이는 태도는 의미가 각별하다"면서 "사랑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연대도 일방적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어서, 베트남을 잘 이해해야겠다는 마음의 첫 출발이 바로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게 된 동기였다"고 술회했다. 올해 한국문학의 경사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서도 '채식주의자'가 제일 먼저 해외에서 번역 수용된 나라가 베트남이었음을 강조했다.
 

이어 모두 연설에 나선 한국 원로 소설가 현기영은 "물질적 에너지는 넘치지만 정신적 도덕적 문제는 많은 현실"이라면서 "과도한 시장주의와 소비 행락주의가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데 베트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라도 지켜야 할 인간의 대의와 정신적 가치들이 시장 상품처럼 인기가 있어야 선택받는 흐름을 디지털문화가 주도하고 있다"면서 "작가는 달콤하고 안일한 것만 추구하는 지배적 흐름에 저항하는 '자발적 망명자'의 태도를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하노이 포럼에 참여한 양국 문인들. 베트남 시인 비 하, 소설가 이반, 시인 르엉 응옥 안, 한국 시인 손세실리아 장석남 김태수(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조용호·최경자]
▲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왼쪽)과 베트남작가회 전 주석 후틴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 한베문학평화포럼 하노이 참석자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베트남 시인이자 평론가인 '부 꾸언 프엉'은 "시장을 지향하는 것도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서 "베트남에서도 민족과 정치를 많이 강조했지만 이제 세계 공동체를 그렇게 더 강조하면서 베트남 민족뿐 아니라 세계를 우리는 얘기하고 있다"고 받았다. 그는 "젊은 작가들은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세계 작가들이 서로 많이 배우면서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의 미래를 역설했다. 그는 합동시집 소개 글에 "한국의 젊은 시인들 시는 자연스럽고 참신하다"고 썼다.
 

"나는 시적 사유를 매력적으로 구현해내는 그들의 창작방식을 좋아한다. 마치 도화지에 목탄으로 신속하게 그린 그림 같기도 한데, 때로는 소금쟁이같기도 하며, 때로는 못 배웠지만 부지런한, 한국으로 시집간 가난한 베트남 여성의 초상화 같기도 하다. 시인의 시어에서 사려 깊고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베트남작가협회 전 주석 후틴 시인은 "알타이 산맥에 존경해 마지 않는 슬픈 얼굴이 그려지면/ 포도알이 영글기 시작하네, 새로운 건 없네/ 그대 위해 잔을 들어야겠네! 무엇을 축하할까/ 그대 고향에 내리는 많은 눈처럼, 나도 눈발이 되고 싶네"로 시작하는 '시인과 건배'로 이번 시집을 열었다. '딘 티 니으 투이'의 시편 '이봐, 가늘게 뜬 눈에 곱슬머리'는 지나온 날들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따스한 희망의 날을 바라는 부드러운 기도처럼 흐른다.
 

"어젯밤, 비에 젖은 날의 우울을 말리려 웃음들이 내 정원으로 돌아왔다. 이봐, 가늘게 뜬 눈에 곱슬머리. 불 옆에서 계속 절절한 노랫말을 들어봐. 거리의 지붕 위 슬픔의 방울들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한국에서 온 손세실리아 시인은 "꿈의 반 뼘을 상실한 이들이/ 발목 반 뼘 잘려나간 짝다리 탁자에 앉아/ 서로를 부축해 온 뼘을 이루는 기막힌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반 뼘쯤 모자란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다/ 생의 의지를 반 뼘쯤 놓아버린 누군가/ 행간으로 걸어 들어와 온 뼘이 되는"('반 뼘')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 하노이 국립 사회인문과학대학 한국학과 학생들과 한국 문인들이 만났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날 진행된 한베 문인 본격 교류 행사를 앞두고 한국에서 날아간 문인들은 전날(13일)에는 하노이 국립 사회인문과학대학을 방문해 그곳 한국학과 학생들과 만났다. 하 밍 타잉 한국학과 교수가 한국학과 커리큘럼을 소개하고 한국 작가 방현석 김이정 장석남 들이 자신의 문학을 소개했다. 학생들의 활발한 질문이 이어진 가운데 이즈음 베트남의 한국문학 수용 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
 

하 밍 타잉 교수에 따르면 1993년 한베 수교 직후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하노이 국립 사회인문과학대학 한국학과는 이즈음 베트남 대학 입학시험에서 만점 가까이 얻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영재들의 인기학과로 자리잡았다. 한국문학을 소재로 축제에 연극으로도 참여하고, 수업 시간에도 한국문학 강독과 함께 활발한 조별 토론 활동을 통해 대중문화 채널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한국을 문학을 통해 깊이 접근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베트남 시인 후틴이 건네는 축배.
 

"시인아, 그대는 꺼림직한 껍데기가 없으니/ 시의 본성으로 매일을 살 수 있겠네/ 그대를 위해 축배를 드네./ 사과꽃이 피었네."

 

KPI뉴스 / 하노이=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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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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