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건 수행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신념, '화엄 정신' 담아
"끈질기고 냉엄한 태도는 나를 닮은 듯, 나와 달리 타협 모르는 딸"
"아버지 작품 일부러 보지 않고 리얼리즘 넘어선 신화·환상 담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책들이 일주일 사이에 10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는 사실은 놀랍다. 충분히 책 잔치를 벌일 만한 역사적인 일이기에 사심없이 박수를 칠 만하다. 다른 책들이 묻힐까봐 걱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불가피할 터이다. 다만 이를 계기로 책, 혹은 문학작품에 더 가까워지는 풍토가 조성 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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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별들 중 하나인 소설가 한승원. 그는 "글을 쓰면서 사는 삶도 도 닦듯 사는 일"이라면서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담긴 화엄정신과 맥이 통한다"고 말한다. [한승원 제공] |
한강을 낳고 문학적 환경을 조성해준 아버지, 소설가 한승원의 책들도 함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1980년대 한승원의 베스트셀러이자 그가 걸어온 문학 정신을 상징하는 장편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품절 상태였는데, 한강 바람을 타고 표지까지 바꾸어 '문이당'에서 복간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1월 상영 예정 됐던 4K 복원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앞당겨 공개하기도 했다. 한승원의 다른 작품들도 새로 인쇄하는 중이다.
전남 장흥 해산토굴에서 기자들에게 시달리던 한강(54)의 아버지 한승원(85)이 잠시 숨을 돌리던 날,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딸에게 물려준 문학 유전자는 무엇이고, 그가 이해하는 한강의 작품세계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1985년 출간돼 큰 호응을 얻었던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깨달음에 매달리는 '진성'과 중생을 돌보는 참 보살행에 방점을 찍은 '청화', 두 비구니 스님을 내세워 화엄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1989)로 만들었고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청화 스님의 속명은 순녀. 그녀는 일찍이 실패를 자인하고 떠나간 스님 아버지를 두었고, 여고시절 짝사랑했던 선생님에게 결과적으로 상처를 입힌 사연을 지닌 여성인 그가 불문을 찾아든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살하려는 남자를 구해준 뒤, 스토커처럼 따라붙는 그로 인해 결국 산문에서 쫓겨나 그와 더불어 탄광촌에서 새로운 삶을 기약하지만 그는 막장 사고로 죽고 마는데, 이후 만나는 남자들도 같은 운명이다. 떠돌다 다시 은사 스님에게 돌아오는 과정이 깨달음을 위해 만행하는 진성 스님 사연과 함께 소설의 축을 이룬다.
-오래전 작품이 표지까지 바뀌어 다시 살아나는 소감은?
"그 소설은 출간 당시 15만 부 가까이 팔렸다.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를 많이 먹여살려주었다. '불교평론'이라는 잡지가 창간됐을 때 연재했다. 원고료와 인세에다 영화 원작료까지 받아 애들 하고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한승원 작품세계에 어떤 상징성을 지니는 작품인가.
"화엄경의 요체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이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과 삶을 함께 한다는, 참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전인데, 그 화엄 정신을 소설로 써낸 셈이다. 내가 살아가는 게 결국 그런 삶을 희망하고 그렇게 살려고 애쓴 거 아닐까. 글 쓰면서 산다는 삶도 도 닦듯이 살아가는 거다. 소설에도 종교에서의 구원과는 또 다른 구원이 있다."

아버지 한승원의 "글을 쓰면서 산다는 건 도 닦듯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태도는 딸의 수상 소감에도 그대로 스며 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 발표 후 처음 공개석상에 나와 17일 포니정혁신상 시상식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한다'면서 한 말.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고요하게 도를 닦는 '순녀'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는 남자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폭력적인 스토커인데 구원의 대상으로 포용된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가부장이나 형부의 강간 같은 폭력들을 대하는 시선과는 사뭇 다르다.
"불교적으로 봤을 때 자신을 희생하면서 상대를 구제해주는 그런 역할이다. 지금 세대 눈으로 보면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그러겠지만, 기독교에서 예수를 구해주는 마리아 같은 여성들이 있다. 석가모니에게도 그런 여인들이 있었고 원효에게도 요석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내 삶도 아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말하자면 자비라는 것인데, 현대 여성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사람이 순녀라는 캐릭터다."
-한강의 소설에서 아버지의 문학 유전자가 발견되는 대목이 있는가.
"디스크로 허리가 아파서 앉아서 타자기를 쓸 수 없게 됐을 때 화가들이 쓰는 이젤을 의자 뒤편에 걸어놓고 갱지에다 연필로 초고를 써서 다시 타자기로 치는, 그렇게 누워서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40대 후반에 일본 출판사와 계약한 소설을 그렇게 출간했는데, 작가가 얼마나 힘들게 작업하는지 보고 자란 강이에게도 그런 끈질긴 면이 있다. 주제 하나를 설정하면 철저하게 자료를 구하고, 나는 타협을 좀 잘 하는 편인데 그 아이는 타협이라는 게 없다. 냉엄하다. 나에게도 냉엄한 그런 게 있는데 그런 면만 쏙 빼다가 닮은 것 같다."
한강이 '채식주의자' 초판본 작가의 말에 언급한 대목도 누워서 소설 쓰던 아버지의 고투를 연상케 한다. 손가락 관절들이 아파서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고 눈 맑은 여학생이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해주었다는데, 그나마 손으로 쓸 수 있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고 했다. 백지 한 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지쳐버렸다.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렇게 2년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광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식솔들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 집필에만 전념하던 1980년대, 큰 돈이 보장된 재벌의 자서전 대필 유혹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들었다.
"원고료는 물론이고 인세까지 합하면 연재 같은 거 안 해도 충분히 식구들을 먹여 살릴 만한 조건이었다. 제의를 받은 이튿날 아침에 대학생이던 아이들과 함께 가족회의를 했더니 찬성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 우리 강이가 강하게 반대하며 '아버지 2억 5천 받고 25억 손해볼 수도 있다'고 하더라. 솔직하게 나는 하고 싶기도 했는데, 아이들 말을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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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아버지 한승원은 "어린시절부터 꿈꾸듯 홀로 공상을 하던 성정이 오늘의 강이를 만든 것 같다"고 말한다. [뉴시스] |
-5·18 사진집으로 한강의 유년시절 트라우마를 제공한 아버지 입장에서 '소년이 온다'를 처음 접했을 때 어땠는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많은 작가들이 광주 5.18을 조명했는데 우리 세대 작가들은 대부분 고발문학으로 접근했다. 강이의 '소년이 온다'에서는 그 비극이 고발이라기보다 트라우마에 찌든 사람들과 동화되는 이야기다. 고발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 높은 시각으로 5.18을 형상화 한 거다. 우리 문학사를 보면 발자크의 리얼리즘, 사실주의가 거의 지배하고 있다.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고발문학, 그 다음 세대인 강이의 소설은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리얼리즘이 대부분이다. 강이는 내 작품을 거의 안 읽는다. 고등학생 때는 읽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본인이 소설을 쓰려고 하면서는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한 거다."
-딸이 어린시절 없어져서 아버지가 찾았더니 어둑한 방에 홀로 있다가 "공상을 하면 왜 안돼요?"라고 묻더라는 에피소드가 인상 깊다. 한강 소설에 이런 질문 화법들이 종종 보인다. '채식주의자'에서도 '영혜'는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언니에게 묻는다.
"나는 토요일 일요일 없이 살았다. 어느 일요일 오후까지 글을 쓰다가 밖으로 나와보니 아들 둘만 있고 딸 모습이 안 보여서, 강아 강아 부르면서 어디 갔나 찾으러 다녔다. 나중에 보니 제 방 어두컴컴한 데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으면서 '왜 공상하면 안 돼요?'라고 묻더라.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꿈꾸듯이 그렇게 혼자 많은 생각을 하는 정서가 오늘날 강이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 한승원은 한국문학의 중요한 작가인데, 따님 덕을 보는 것처럼 오해도 받을 것 같다.
"오해가 아니라 당연히 그러하다. 내 소설은 초기부터 굉장히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면이 있었다. 어느 평자는 리얼리즘에 신화나 환상이 기웃거리는 건 리얼리즘의 죽음이라고도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소설 보면 이제 리얼리즘은 넘어선 것 같다. 강이가 나에게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청출어람이다."
한승원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외에도 '사람의 길' '보리 닷되' '달개비꽃 엄마'도 추가로 인쇄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내 책들이 더 팔리면 좋겠지만 책을 읽지 않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광주시장이 딸 이름이 들어가는 부녀 문학관을 제안했을 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차라리 '소년이 온다'라는 이름으로 북카페를 내서 책 한 권이라도 더 읽히게 하라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장흥 군수가 찾아와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기자회견이 돼버렸는데, 그 일로 아버지 한승원은 "그 아이에게 꾸중을 많이 들었다"면서 "애비 노릇도 힘들다"며 웃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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