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극의 구조 시현 인물 통해
금괴 찾는 서사 빌려 좌고우면 않는 직진 입담으로 묘파
"국가·정치권력에 책임 미루면 버림받는 숙명 불가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미군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의 기관총 발사와 폭격으로 피난민 400여 명이 살해당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피난민들을 무차별 살상한, 오랫동안 감춰진 비극이었다. 유족의 끈질긴 진상 파악 노력으로 2004년 희생자 명예를 회복하는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됐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뒤늦게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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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초기 충북 노근리 피난민 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묵직한 장편을 펴낸 소설가 고광률. 그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소설가 고광률이 노근리 사건을 붙들고 600여 쪽에 이르는 두꺼운 장편 '붉은 그늘'(파람북)을 펴냈다. 고광률은 이 노작에서 노근리의 비극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문제적 캐릭터들을 만들어내 노근리 전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 형성 과정의 뿌리를 보여주는 도완구라는 인물과, 미군의 양면적 속성을 보여주는 6.25 참전 군인 하지스와 바커, 이들의 희생양 하봉자와 하지스의 아들 남득, 한반도를 강점하고 그로 인해 분단과 전쟁을 야기한 책임이 있는 일본국 고노 마쓰오 들을 통해 노근리 비극 전후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고광률의 직진성 하드보일드 입담이 이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돼 몰입감을 선사한다.
-왜 지금 노근리인가.
"노근리에서 400여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미군이 왜 죽였을까, 우발적 학살이 아니라 3박 4일 동안 피난민들을 쌍굴 안에 가둬놓은 채 작정하고 계속 총을 쏘아 죽였을까, 왜 그랬을까, 살펴보고 싶었다. 도쿄에서 치안 유지를 하던 미군이 제1진으로 와서, 제국의 군대가 북한군 쯤은 다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밀리고 엄청나게 자기들이 죽어나가니까 증오와 두려움과 공포, 복수심 같은 것들이 무고한 피난민들에게 씌워질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다. 피난민들을 적으로 볼 수 있고 사격할 수 있다는 근거를 한국의 고위관료들이 미군과 함께 결정한 문서도 확인됐다. 맥아더는 전쟁터에서 떨어진 일본에서 승인을 했다. 학살이 이 승인 절차 이후에만 벌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이미 학살은 시작됐었다. 전쟁이라는 것의 참혹함을,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대상은 애꿎은 백성들일 뿐 전쟁을 결정하는 이들은 안전한 공간에서 세 치 혀로 그 비극을 양산할 따름이다. 작금 불온하게 전쟁을 거론하는 이들은 물론, 모두가 함께 돌아보아야 할 비극이다."
—결국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결정권자가 아니라 갑남을녀가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새삼 뼈아프다.
"전쟁을 갑남을녀의 힘과 결정으로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대가는 이를 결정한 국가나 정치 권력이 아니라, 이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갑남을녀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침략국이건 피침국이건, 승전을 했건 패전을 했건 피해가 없을 수 없을 터인데, 아무튼 그 피해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이 소설은 노근리 사건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 전후 과정을 입체적으로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을 통해 들여다보는 게 큰 미덕이다. 도완구라는 인물은 한국의 기득권 부패 세력을 상징한다. 일제 때는 밀정이었다가 독립운동 자금을 횡령해 전쟁 국면에서 빼앗기고 다시 일어서서 부를 축적해온 캐릭터다. 그는 엉뚱하게도 독립운동가로 훈장까지 받고 산업역군으로 승승장구한다.

도완구가 종살이를 하는 하봉자를 억지로 빼앗아 피난 대열에 합류한다. 하봉자의 부모와 동생은 노근리에서 죽었고, 그녀는 피난길에 미군 하지스에게 강간을 당한다. 이 겁탈은 기묘하게도 하봉자의 목숨을 살려주는 은인의 행위였고, 봉자는 하지스가 모르는 그의 아들 남득을 낳아 홀로 키우다가 세월을 허송한다. 노근리 학살에 참여했던 하지스와 바커는 미군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캐릭터. 하지스는 일말의 양심으로 하봉자를 살렸지만 바커는 전쟁 국면에서도 문화재를 털고 금괴를 은닉하며 생명을 무참히 대하는 야만을 저지른다.
이 전쟁에 통역으로 참여한 일본인 고노 마쓰오는 소설 말미에서 대부분 실속을 차지하는 캐릭터로 드러나거니와, 한반도 전쟁에서 제 잇속을 제대로 챙긴 일본을 상징하는 작가의 흥미로운 설정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애초에 '봉자의 순정'으로 제목을 정했다가 바꾼 것인데, 봉자는 하지스에게 봉숭아물로 상징되는 순정을 간직했지만 결국 그 순정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본의 밀정으로 출발해 독립운동 훈장도 받고 이후 전형적인 자본가로 성장하는 도완구라는 인물을 설정한 배경은?
"도완구는 일제 청산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 기형의 자본주의 환경에서 부를 거머쥔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 인물이 우리나라 근현대사 정책을 보여준다. 부정적이긴 하지만 사실상 이런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얻는 것에 대한 제어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이룬 부와 권력이라는 것이 그 아들 대에 이르러 어떻게 황당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후대가 이루어 나갈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같이 생각해 보고 싶었다."
'하지스. 당신은 나의 은인이자 원수예요. 당신이 나를 살렸지만, 내 삶을 빼앗아 갔어요. 그래서 한때는 당신을 만난 것과 당신이 나를 살린 것을 원망 했어요.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삶이에요. 당신을 보면 여전히 생명의 은인이라는 소중한 기억보다 악몽 같은 과거가 떠올라 견딜 수가 없어요.'
-하지스와 바커라는 두 명의 미군 캐릭터도 흥미롭다. 봉자의 편지처럼 미군은 그녀에게 '은인이자 원수'인 셈이다.
"현재 분단 시점의 남한에서 미군은 우리를 지켜준 은인이지만, 봉자의 생을 허송하게 만든 하지스라는 개인은 원수이기도 하다. 바커가 죽일 뻔한 봉자를 하지스가 살려놓은 건데, 이 둘은 겉과 속을 이루는 미국의 양면인 셈이다. 봉자는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유부남 하지스의 거짓말로 인해 망가졌다. 전쟁 때 바커가 훔친 문화재로 하지스는 재산을 형성했고 대학 교수까지 된 건데,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제국의 본질을 이 인물들을 통해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스는 노근리 학살을 증언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대를 이어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는 손자 '딘'과 나누는 대화가 이즈음 노근리를 바라보는 시각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딘은 하지스에게 노근리 학살은"선한 목적을 완수하다가 벌어진 실수"이고 "정당한 명령에 따라 벌인 작전"이라고 항의한다. 하지스는 " 목적이 선했다고 해도 인륜을 벗어난 학살 행위였으며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지만, 학살을 실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항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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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광률은 "분단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 소설을 통해 작은 책무를 수행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할아버지의 증언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어리석고 국민과 군인정신에도 위배되는 짓이었다는 미군 손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도 많을 텐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서독으로 넘어가는 이들을 향해 총을 쏘라는 명령을 거부한 일화에서 보듯, 그리고 나치 장교들이 전범 재판에서 내세운 법률실증주의의 기계적 논리가 인정되지 않은 예에서도 보듯이 인륜을 거스른 명령은 단순히 법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소설에 풀어내고 싶었지만 많이 축약했다.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대령이 항명죄로 기소된 작금의 사태도 오버랩된다."
-나라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방기하는 '유민(遺民)'의 처지를 부각하고 있다.
"3부 제목을 '유민의 순정'으로 내세운 배경이다. 노근리는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400여명이 죽었는데 182명의 희생자만 확인됐고, 그나마 '인우보증'(隣友保證) 때문에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노근리 전후로 6.25전쟁에서 학살당한 이들이 많은데 노근리는 그 상징이다. 진상규명을 하려는 이들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미국 매체가 나서서 노근리를 들춰내니 마지못해 진상 규명을 미국에게 떠넘긴 태도는 희생자들을 '유민'으로 나라가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이 유민의 처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선의를 믿어서는 안 된다. 유민의 숙명을 극복하려면 정치권력을 그들에게 위임하는 사람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고광률은 "내 글의 뿌리는 분노에 있는데 아마도 분노 없는 세상이 되면 내 글도 끝나지 않을까 싶다"면서 "이상한 소설 미학이라고 한다면 내게 이상한 삶을 준 세상 탓으로 돌리고 싶다"고 썼다. 그는 이 분노를 보다 숙성시켜 곰살맞게 드러내는 숙제가 자신 앞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 장편을 위해 세조 연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단종 복위를 둘러싼 피의 학살을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했다. 분노라는 화염을 안고 비루한 세상을 직격하는 고광률의 말.
'분단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내가 이 소설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이야기꾼으로서 해야 할 작은 책무를 한 것이라면 좋겠다. 이런 무도無道한 상황에서 남북 어둠의 세력들이 또다른 전쟁을 주절대고 있다. 끔찍하지 않은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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