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비자발적 상생'이 상생인가

안재성 기자 / 2023-12-11 17:36:14
돈은 금융사가 내고 생색은 정부가
선거철이면 반복되는, '보기 흉한 모습'

고대 로마에는 개선 장군이 도로, 수도, 회당(시민 모임 장소), 목욕장 등 공공 시설물을 지어 국가에 기부하는 전통이 있었다.

 

각종 공공 시설물은 시민들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시민들은 수도를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잘 닦인 도로를 오가며 상행위를 하거나 여행을 즐겼다.

 

자기 돈을 써서 기부하는 거지만, 개선 장군들도 충분한 이익을 누렸다. 우선 해당 공공 시설물에 만든 사람의 이름을 넣어 표기하므로 명예가 높아진다. 또 개선 장군들은 로마의 상류층인데, 인프라가 잘 구축돼 국가의 경제력이 충실해질수록 상류층이 가장 큰 혜택을 누린다. 그야말로 '상생'이다.

 

▲ 정부의 압박에 의해 금융사들이 비자발적으로 상생금융을 준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국내에서 '상생금융'이 화두다. 은행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이자 캐시백을 제공하는 등 총 2조 원 가량의 상생금융을 준비하고 있다. 보험사, 카드사 등도 상생금융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를 상생이라 할 수 있을까. 국내의 상생금융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혹은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게 아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과 정부·금융당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왔을 뿐이다.

 

돈을 써 좋은 일을 하면서도 금융사 이름 표기 등 선행의 흔적을 남길 방도도 딱히 없다. 상생금융 수혜자들은 정부 강권 때문이란 걸 알아서 인지 금융사가 아니라 정부를 바라본다. 돈은 금융사가 내고 생색은 정부가 내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내년이 국회의원 총선거니 정부가 금융사 돈으로 표를 사는 것"이란 비판까지 제기된다.

 

이런 광경이 낯설지도 않다. 안심전환대출 출시, 대출 만기연장 및 원리금 상환유예 혜택 제공 등 형식만 바뀌어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다. 모든 정권들은 선거가 가까워지면 금융사를 압박해 돈을 내놓게 하는 행위를 거듭했다.

 

상생이란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가 또 다른 이를 돕는 일이 이어져 우리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며, 결국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비자발적 상생', 강요된 베풀기는 상생이라 보기 어렵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보기 흉한', 시장경제에도 역행하는 모습을 봐야 할까. 이제는 바뀌어야할 때다.

 

금융사가 스스로 나서고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로 유도하는, '본래' 취지에 걸맞는 상생금융이 이뤄지길 바란다.

 

▲ 안재성 경제산업 에디터.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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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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