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 3억·중소기업 취업은 '평범한 삶'
평범을 '실패'로 보니 청년층 절망 야기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후배와 만나 이야기하던 중 '중산층의 기준'이 화제가 됐다. 후배는 "가구의 순자산이 최소 10억 원 이상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소득 기준에 대해선 "요즘은 억대 연봉자도 삶이 빡빡하다"며 연 소득 1억 원 이상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내가 "너무 높은 것 같다"고 지적하자 후배는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른 2030 젊은층 여럿을 만나 물어보자 비슷한 답안을 내놨다. 그나마 '가장 낮은 중산층 기준'이 연 소득 8000만 원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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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
기가 막혔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금융감독원이 함께 조사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서 순자산 10억 원 이상인 가구는 10.3%에 불과했다. 순자산이 3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는 57.4%에 달했다.
통계를 볼 때 순자산 10억 원 이상이면 상위층에 해당한다. 순자산 3억 원 이상만 돼도 중간 이상은 가니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조사에서 중위소득은 연 3454만 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중산층의 기준은 중위소득 50% 이상~150% 미만이므로 연 1727만~5181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중산층에 해당한다.
소득 상위 20%의 경계선인 연 5397만 원, 소득 상위 10%의 경계선은 연 8880만 원이다. 억대 연봉자는 상위 10% 안쪽에 들어가는 상위층이다.
이런 인식이 젊은층만의 문제는 아니란 걸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총 11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중산층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45.6%가 자신을 하위층이라고 응답했다.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3.7%였다.
상식적으로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하위층일 순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상위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잘못된 인식이 퍼진 걸까. 대기업에 취업해 서울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면 '성공한 삶'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평범한 삶'이라고 인식하며 여기에 이르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여긴다.
사회 인식이 현실과 다르니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 20~30억 원짜리 집을 못 산다는 이유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며 결혼·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한국의 지난해 혼인건수는 19만3657건으로 3년 연속 20만 건을 밑돌았다. 1997년(38만8960건)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기업에 못갈 것 같으면 아예 구직 활동까지 포기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청년층(15∼29세)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44만3000명으로 7월 기준 역대 최대였다. 이 중 75.6%는 아예 구직 의사가 없다고 했다. 주된 이유는 "원하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처럼 왜곡된 인식은 다수의 평범한 청년들을 절망시킨다. 현실에 걸맞지 않는 성공과 평범의 기준을 뜯어고치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실패로 보는 시선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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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재성 경제산업 에디터. |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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