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설계에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작동케 하는 공감의 룰' 긴요
중앙은행, 대전환기 최종 신뢰설계자로서의 정책 패러다임과 철학 갖춰야
스테이블코인은 하이에크가 구상한 자유주의 철학에 기반한 통화의 현대적 구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의한 탈국가적 민간 통화 경쟁(denationalization of money)을 구상했다. 그 경쟁이 통화의 품질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정부의 통화 독점은 왜곡을 초래하며 민간 통화 경쟁이 최적의 통화를 선택하도록 한다고 했다.
스테이블코인은 하이에크가 구상한 이러한 민간 통화 경쟁을 표면적으로는 계승하는 측면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발행하고 사용자는 이를 선택하며 발행 주체 간 경쟁이 있다. 그러나 실체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준비자산 기반 재무적 신뢰, 알고리즘 기반 기술적 신뢰, 규제 기반 제도적 신뢰 등 복합적 신뢰 구조를 상정한다. 이는 단순한 민간 통화가 아니라 재무, 기술, 제도가 결합된 복합 통화체계라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하이에크적 통화 경쟁론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하이에크 통화 경쟁론의 한계는 역설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구현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스테이블코인이 흔들리면 전체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동시에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하이에크의 경쟁 통화론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스테이블코인의 지속 가능성이 하이에크 모델만으로 확보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준비자산 관리의 투명성, 알고리즘의 공정성, 발행 주체의 신뢰성은 경쟁을 넘어선 사회 규범의 영역에 속하며 이는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케 하는 공감(sympathy)의 룰'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자유시장 모델이나 기술로 바라보기보다는 경제사상, 윤리, 제도가 교차하는 통화질서의 새로운 장으로 인식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과 사회와 경제의 기본 문제에 대하여 총체적인 성찰을 하고자 노력한 사회경제철학자였다. 애덤 스미스의 철학은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년)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년)에서 말한 '공감의 룰'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쟁 메커니즘이 아니라 도덕적, 사회적 규범의 기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간사회를 질서 있게 만드는 숨은 원리가 인간에게 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성찰로부터 그 원리가 인간의 본성(human nature) 속에 내재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공감이란 자신을 타인의 입장과 동일하게 놓고 타인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상상에서의 역지사지(imaginery change of situation) 능력을 전제로 한다. 상호 공감하는 즐거움(pleasure of mutual sympathy)은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이기에 인간은 공감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적 특색은 그가 단순한 자유방임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두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사회의 공공선이 결과로 나온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천체가 각자 자유로이 운행하면서도 하나의 정연한 질서를 이루는 원리, 즉 인력(引力)의 법칙이 있듯이 개인이 각자 자유로이 행동하면서도 사회에 하나의 정연한 질서를 가능케 하는 원리, 법칙이 특히 인간의 심성에 내재하여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이 작동하는 질서는 스테이블코인 논의와도 중요한 연결점이 형성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적 알고리즘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고 복합적 신뢰 구조에 기반한 규범적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통화의 탈국가화, 즉 국가가 통화 발행을 독점하지 않고 민간이 경쟁적으로 통화를 발행할 때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통화질서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21세기 스테이블코인 기술은 이러한 하이에크의 모델을 기술적으로 실험하는 역사적 첫 사례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하이에크는 대규모 스테이블코인 뱅크런이나 시스템 위험(systemic risk)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시장이 완전하게 투명하고 정보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이 없으며 위기 시 정부의 개입이 없더라도 통화가 시장경쟁만으로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전제했다. 오늘날의 금융 현실에서 성립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은 하이에크의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하이에크를 넘어서는 제도설계를 요구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출발은 하이에크적이지만 그 실현에는 애덤 스미스적 요소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이에크는 기술적으로 출발하였으나 제도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애덤 스미스적 윤리가 없으면 스테이블코인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은 애덤 스미스와 하이에크의 경합이 아니라 통합이 필요한 영역이다. 스테이블코인은 하이에크를 실험하지만 결국 애덤 스미스를 소환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적 구조로는 하이에크를 실험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윤리, 규범, 공감 기반의 질서를 필요로 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성격이 당초의 민간 경쟁 통화에서 점차 공공 결제 인프라로 변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현실 속 정책적, 경제적 용도는 점점 하이에크적 구상으로부터 멀어지며 애덤 스미스적 철학과 제도주의적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하이에크를 넘어 애덤 스미스를 소환하는 제도적 진화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애덤 스미스의 규범, 제도에 기반한 시장 질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은 오늘날 기술과 금융의 혁신이 '설계된 자유(designed freedom)'를 지향해야 함을 시사한다.
스테이블코인이 하이에크적 민간 경쟁 모델이라도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최근 밝힌 바와 같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systemically important)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주류 금융(mainstream finance) 수준의 정책과 위기대응체계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하이에크의 국가 통제 최소주의보다는 애덤 스미스적 공공 규범, 제도적 질서에 가까운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함을 말해준다.
중앙은행 정책 프레임워크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제도설계를 고려하며 접근하여야 하는 대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의 이익 추구가 공공선과 양립 가능하도록 하는 포괄적이며 정교한 제도설계와 거버넌스와 인센티브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기능과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며 확장시키고 있다. 나아가 새롭게 설계하도록 만들고 있다.
미래의 중앙은행은 금리 및 통화 조정기관만이 아니라 대전환의 시대 디지털 자산, 기후 위기, 인공지능(AI) 기반 금융경제안정 및 번영의 설계자로도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중앙은행이 최종 신뢰 형성자(trust builder of last resort)를 넘어 최종 신뢰 설계자(trust designer of last resort)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스테이블코인이 하이에크를 넘어 애덤 스미스를 다시 소환하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중앙은행에도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과 철학, 그리고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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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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