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 칼럼] 홍범도 논란에 어른거리는 친일 그림자

류순열 기자 / 2023-09-20 15:49:20

한국 현대사는 모순의 역사다. 해방이 되고도 일제강점기의 갈등과 모순은 해소되지 않았다. 침략자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민족반역자들은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단죄되기는커녕 권력 중심부로 돌아와 다시 권력을 잡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친일하면 삼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입증돼버린, 역설의 나라로 전락했다. 목숨 바쳐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지사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작금 '갑툭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도 결국 이런 왜곡된 흐름에서 삐져나온 파열음이다. 역사청산이 말끔하게, 명쾌하게 되었더라면 해방 80년이 다 된 지금 이런 어처구니없는 논란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생이다. 대한제국이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38세, 전설적인 봉오동, 청산리 전투(1920)를 치를 때가 53세였다. 76세(1943년)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조국은 여전히 일제 식민지였다.

 

윤석열 정권은 홍범도의 사상을 문제 삼는다. 소련 공산당 입당(1927)이 문제라는 건데, 나라를 잃은 그 시절 공산주의는 독립운동의 방략이었다. 소련과 미국이 손잡고 일제와 싸우던 시대이기도 하다. 홍범도 말고도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소련공산당에, 중국공산당에, 심지어 일본공산당에도 입당했다. 이유는 단 하나.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울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조국 해방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 2017년 논문 '홍범도의 러시아 적군활동과 자유시사변' 저술)이다.

이런 시대 상황을 거세하고 마치 홍범도란 사람이 대한민국 정체성에 반하는 인물인냥 매도하는 것은 무지하고 비열한 색깔론일 뿐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조차 '100여 년 전 공산주의 이념을 가졌다고 해서 곧바로 대한민국의 적이 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있지도 않았고 홍범도는 정부가 수립되기 전 사망했다. 당연히 대한민국을 적대한 사실도 없다.'라면서 개탄(8월31일자 사설 '지금 홍범도 흉상 갖고 논란 벌일 때는 아니지 않은가')했겠나.

 

이런 푸대접과 모욕, 홍 장군이 처음이 아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독립지사들은 찬밥 신세였다. 의열단 출신 김승곤 전 광복회장은 생전(2006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고국 돌아와보니 친일파가 활개쳐 독립운동했다는 말도 못꺼냈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 병상에서 힘겹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랬다. 해방된 조국에서 항일독립운동가들은 우리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반민족친일세력이 다시 부와 권력을 쥐는 흐름이 이어졌다. 필자는 2006년 '1~3공화국 파워엘리트 해방전 이력 대해부'를 통해 이런 흐름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한국언론재단 재정지원을 받아 민족문제연구소와 손잡고 벌인 기획이었다.

 

해방후 20년간 나라기틀을 다진 1~3공화국의 입법·사법·행정,군·경 파워엘리트 435명(연인원)의 이력을 전수 조사했다. 해방전후 기록물 십여종과 관련 서적들을 뒤졌다. 옛 만주국이 자리했던 중국 창춘(長春), 옌지(延吉), 룽징(龍井), 안투(安圖)를 돌며 그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두 달에 걸쳐 취재와 분석을 이어갔다.

 

그 결과 1∼3공화국 파워엘리트 435명(직함 기준) 가운데 45.1%인 196명이 일제 집행 또는 협력기관에 몸담았던 이력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에 비해 일제에 저항 경력이 있는 이들은 10명 중 1.2명에 불과했다.

 

시간이 갈수록 항일 인사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흐름도 확인할 수 있었다. 1공화국에선 20%는 되던 항일인사 비율이 3공화국에서 3.4%로 줄어들었다.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 등 일제 식민지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만주군맥 10인의 해방전 행적과 해방후 서로 도우며 권력을 잡아가는 흐름도 구체적 증언과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왜곡된 기록들, 즉 '가짜뉴스', 그것도 역사를 왜곡하는 심각한 '가짜뉴스'도 다수 찾아냈다. 정일권 등은 1987년 펴낸 '만주국군지'에서 자신들을 "일제탄압하에서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한 사람들"로 소개했다. 날조된 이력은 일찍이 '광복군'(1967년), '창군전사'(1980년), '육사졸업생'(1984년) 등을 통해 수정되지 않고 확대·재생산되었음을 확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군본부가 펴낸 창군전사에 여전히 비밀광복군으로 기록돼 도서관에 비치된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했다.

 

취재부터 보도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과 권력을 쥔 친일파 후예들이 미화·은폐·왜곡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친일파들은 해방 후에도 개과천선은커녕 반민특위를 무너뜨리고, 독재와 부패 끝에 5·16과 (10월)유신을 불러들인 자들 아니던가. 친일역사 청산은 힘센 기득권과의 전쟁이었다.

 

특히 '박정희 신화'는 큰 걸림돌이었다. 일체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고한 프레임이었다. "과거를 캐려는 거 보니 빨갱이"라는 색깔론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박정희는 그 자체로 역사다. 산업화의 공이 크지만 일제에 협력한 과도 엄연하다. 과가 있다고 공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듯 공이 있다고 과를 모두 덮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과는 과대로 비판받고, 공은 공대로 평가받아야 후세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다. 그래야 역사가 전진한다.

 

친일역사는 청산되어야 한다. 그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채 또 다시 국난을 맞는다면 어느 누가 주저없이 대의를 품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것인가. 이 시대의 안중근, 윤봉길, 이육사는 망설이고, 숱한 기회주의자들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의 길을 갈 것이다.

 

모두 치욕의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결과다. 과연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일'(알베르 카뮈)이었다. 아무리 늦더라도 끝내 치욕의 역사를 명명백백하게 정리해야 하는 이유다.

 

친일문제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은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했다. 임 선생의 말씀처럼 "민족의 제단 앞에서 허물 있는 자는 허물을 벗어 도약의 제수로 바쳐야" 한다.

 

그래야 후세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긍심을 갖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류순열 편집인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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