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배 가능성 국면···低국가부채형 통화·재정정책 공조 어려운 측면
재정 프레임워크, 조세제도, 재정 거버넌스 등 패러다임 개혁 필요
팬데믹 이후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이른바 '큰 정부의 시대(era of big government)'의 도래가 가시화한 가운데 급격히 증가한 정부 지출은 국가부채의 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화정책의 인플레이션 대응 과정에서 2010년대에 익숙했던 저금리 시대는 지나고 금리상승에 따라 국가부채 이자도 높아진 상황으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부채 증가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한때 인플레이션에 기대했던 것처럼 '일시적인 것'이라고 기대해도 될까.
때마침 미 버클리대 배리 아이켄그린과 IMF 세르칸 아르슬라날프는 연구논문(Living with High Public Debt)을 발표하고 누적되고 있는 국가부채가 예측 가능한 미래에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며 경제, 금융, 정치 등에 여러 과제를 던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앞으로 높은 국가부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국가부채와의 공존'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의 저성장과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는 재정 건전화로 향하는 여정을 더 길고도 어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이제 어떤 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것일까. 최선의 전략은 과연 무엇인가. 그대로 두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우선 근본적인 전략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그에 비례하여 조세수입도 늘어나게 할 수 있으면 바람직할 터인데 단기간 내에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미시적, 제도적, 정책적 접근방법 등 다각적인 전략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이 선도한 이후 많은 나라들을 지배한 정치적 사상은 적게 일하고 적게 세금을 걷는 작은 정부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후위기에 대응한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 고조된 지정학적 긴장 등 최근의 달라진 사회·정치·경제 여건은 정부의 역할 확대에 힘을 실어 주었다.
미국의 경우 현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개입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유례없는 수준으로 확대된 상태다. 정부 지출을 늘리고 정부가 민간의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재정 적극주의(fiscal activism)가 풍미하는 가운데 국가부채의 누적은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지출 편의를 봐주며 배려하는 재정지배(fiscal dominance)의 가능성마저 높이고 있다.
1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은 국가부채 상황의 경기부양 필요성은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이 나란히 협력하며 힘을 합쳐서 행동할 수 있는 여건을 허용했다면 지금의 재정지배 가능성 국면은 양 정책당국이 상반되는 입장에서 서로 맞붙게 하는 여건마저도 우려하게 한다.
그동안의 확대 재정정책이 상당한 원인을 제공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당분간 높게 유지하고자 하더라도 정부는 높은 국채이자 비용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까지도 선호할 수 있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집필한 국부론을 통해 정부는 세수를 초과하여 지출하는 '재정적자(deficits)'를 일으키고 이를 '국가부채(debt)'로 메꾸며 다시 '화폐 가치의 절하(debasement)'를 통해 국가부채를 상환하려 한다는 속성을 설파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재정지배 하에서 재정적자는 통화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될 개연성이 높다. 국가부채의 화폐화 선호에 중앙은행이 응해주지 않을 경우, 재정적자 정부가 통화정책에 제대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인상하거나 두 가지를 함께 함으로써 재정 건전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여건 전개와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국가부채 문제를 바라볼 때 어떤 방향의 전략이 필요할 것인가.
우선 재정정책(fiscal policy) 자체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저성장으로 조세수입을 단기간 내에 크게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출 예산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재정 프레임워크가 먼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중기에 걸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안정화 룰 등이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룰이 없을 경우 채권시장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경계심리로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 편향이 야기되고 국채의 매각 수요가 높아져 이자 비용이 상승하는 등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다.
재정정책의 신뢰 제고를 위한 재정준칙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중기적 관점의 물가안정목표제 운용이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높여 왔듯이 현대 재정정책에서도 룰에 기반을 두는 메커니즘은 의미가 크다.
다음으로 조세제도의 개혁을 고려해볼 만하다. 재정지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한동안 국방비 수요는 감소했다. NATO 31개 회원국 중 GDP 대비 2%의 국방비 지출 목표를 충족시킨 국가는 2021년 말까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서방과 중국 간의 긴장 고조 등으로 각국은 지금 군비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 또한 의료, 연금 등 재정지출 확대를 예고한다. OECD 국가들의 20-64세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3년 33%, 2027년 36%, 2050년 5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 찬 작품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시행에 따른 보조금 재정지출 수요도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높아만 가는 재정지출 수요에 비해 기존 세제에서 세금이 더 걷힐 여지는 크지 않다.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1965년 25%, 1988년 33%, 2021년 34%로 납세자들이 이미 충분한 수준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여기서 세율을 더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돌파구는 미시적 제도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17세기에 석탄세를 새로이 만들어 도입한 바 있다. 20세기에 만든 세제를 21세기 4차산업혁명 시대에 그대로 운용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봐야 한다. 20세기형 전통적 근로에 부과되어온 세제가 로봇, 인공지능 등이 투입되는 21세기형 최첨단 근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스템은 들여다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제도개혁을 통해 조세수입의 지평을 넓히거나 구조를 재편하는 전략이 모색될 수 있다.
재정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큰 정부의 재정정책 의존도가 커질수록 거시경제정책이 정치화될 개연성이 더욱 높아진다. 각국의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문역량은 부족한 반면 당파성은 과도하게 높은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삶과 운명을 모두 맡기는 것은 현대적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원리, 법의 지배(rule of law)에도 배치된다. 진화하고 있는 재정정책 환경과 문명사적 대전환기 패러다임에 상응하는 전문화된 분권화(expertized decentralization) 거버넌스의 설계를 그 출발선에서 고려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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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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