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 지닌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조홍균 논설위원 / 2024-03-11 11:17:28
마셜의 이상적 인재상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 韓의료·교육에 교훈
'따뜻한 마음' 인재양성 미흡 교육 자화상 아닌지 사회구성원 성찰 계기
전문가그룹 오류 경계···인류복리 증진 소명 둔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아쉬워

'따뜻한 마음'(warm heart)과 '냉철한 이성'(cool head)'. 영국 정치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1885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에 취임하면서 제시한 이상적인 인재상이다. 여기서 마셜이 힘주어 말한 따뜻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또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마음(cool heart)의 차이는 무엇일까. 

 

따뜻한 마음은 더 나은 세상(a better world)을 만들고 인류 복리(human welfare)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차가운 마음은 주로 본인,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마음이다. 

 

마셜이 지향한 이상형 인재는 머리도 마음도 모두 차가운 인재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를 지닌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재는 균형 있고 바른 생각과 합리적 접근방법을 통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타인과 사회, 인류 공동체에도 이익을 주는 사람이다.

 

최근 일부 전공의 집단행동 등이 초래하고 있는 의료 비상사태를 보며 마셜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인재상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의사들이 익히 알고 있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업(醫業)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셜이 강조한 따뜻한 마음과도 매우 부합하는 선서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이익만이 아닌 인류 봉사에 헌신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료인으로서의 자세와 따뜻한 마음을 다짐하는 서약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사가 적은 나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오스트리아 5.48, 노르웨이 5.16, 독일 4.53, 스웨덴 4.32, 호주 4.02, 프랑스 3.36, 영국 3.18, 캐나다 2.8, 미국 2.67, 일본 2.6, 한국 2.56, 멕시코 2.51, 튀르키예 2.18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학적 위기로 인해 한국은 많은 도전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고령화 등 요인으로 인해 향후 의료와 치료의 수요(medicalization)가 전반적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는 의사 양성에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 있다. 그렇지만 일부 전공의, 의료계 일각 등으로부터 강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반대가 히포크라테스 선서 등에도 크게 반하는 극한적 방식을 통해서 집단적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점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위협적인 집단행동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민의 보건과 안전한 삶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의료대란마저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이러한 행동의 정당성이나 적법성 여부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보더라도 마셜이 교육자로서 경계하고자 했던 머리도 마음도 모두 차가운 인재를 보는 듯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의료와 교육은 한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공공재(public goods)에 가깝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태는 한국의 의료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의 총체적 문제를 함께 비춰주는 거울 이미지(mirror image)처럼 느껴지면서 착잡한 마음이 교차하게 된다. 인식의 변화는 결정적으로 교육의 영향을 받는다.

 

시험 점수 위주의 입시교육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을 선발한다는 의과대학에 가기까지의 교육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의대에 들어가서도 인간의 본연적 가치와 행복을 드높이는 데 헌신하고자 하는 의료인 양성의 열정으로 과연 교육이 수행되고 이루어졌는지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문을 품고 돌아보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험과 직업 선택에서의 머리는 차가울지 모르겠지만 마음은 따뜻하지 못한 인재를 양성해 왔던 것이 그동안 우리 교육의 자화상은 혹여 아니었는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겸허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2005년 어느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내가 이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뇌에 디폴트로 새겨져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의 이러한 본연적 성향을 과다확신 오류(hubris bias, overconfidence bias)라고 표현한다. 과다확신 오류는 이른바 전문가 집단일수록 더욱 커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을 보유한 미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B737 맥스가 두 차례 연속해서 대형 추락 사고를 겪었던 것은 그들의 전문성과 과거의 강력한 안전기록에 대한 과다확신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과다확신 오류에 더해 집단사고 오류(group-thinking bias) 또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응집력이 높은 그룹일수록 강하게 드러나는 집단사고에 의한 행동을 체크할 수 있는 포인트로 '반대자 낙인찍기', '컨센서스에서 벗어난 의견의 자체검열' 등을 제시했는데 이는 일부 전공의 집단행동 등 일각의 의료계 움직임뿐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한창 전개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일부 행태에도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

 

그래서 과다확신 오류와 집단사고 오류는 특히 전문가그룹 등이 지녀야 할 냉철한 이성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하겠다. 이에 더하여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는 데 미흡했던 교육의 오류가 복합적으로 작금의 의료 사태를 초래한 요인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셜이 제시한 인재상인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이 더욱 절실한 교훈으로 우리 현실에 다가온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인류 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업을 추구하며 전문직으로서의 소명에 가치를 두는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을 지닌 히포크라테스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절실히 필요하다.

 

▲ 조홍균 논설위원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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