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행정부 누가 맡든 정책 근본적 변화 불가피 예고
40여년 행정 적극주의가 신중주의로 전환하는 국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확정하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던 지난달 20일 텍사스에서는 차기 미 행정부의 규제정책 흐름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는 연방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독립 행정기관(independent administrative agency)인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가 근로자의 직장 이동을 쉽게 하여 고용시장을 더 자유로운 형태로 재편하기 위해 만든 룰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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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모습 [픽사베이] |
FTC는 금년 4월 고용시장의 '비경쟁 계약(non-compete agreements)'을 금지하는 룰을 제정했다. 근로자가 현 직장을 떠난 후 특정 기간 또는 특정 지역에서 경쟁사에서 일하거나 경쟁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자유를 제약하는 계약을 금지한 것이다. FTC는 미국 근로자의 20%인 약 3000만 명이 비경쟁 계약의 제약을 받고 있다고 추산했다.
법원은 이 룰이 비합리적으로 광범위하여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우며 FTC가 이 룰을 제정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특정한 해로운 비경쟁 계약을 타깃으로 하지 않고 사실상 모든 비경쟁 계약을 FTC가 금지한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용과 경제에 그처럼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권한과 재량을 의회가 FTC에 부여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FTC는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6월 제5연방항소법원은 독립 행정기관인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사모펀드 투명성 강화를 위한 새로운 규제안이 SEC의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SEC의 규제안은 분기별로 펀드 성과, 보수, 수수료 및 비용에 관한 보고서를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일부 투자자에 대한 특혜성 거래조건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SEC는 7월중 재심리 기한을 넘겨 판결을 수용했고 연방대법원이 행정권 재량에 회의적이어서 상소는 마뜩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행정부의 규제정책 흐름을 바꿀 판례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6월 연방대법원은 증권사기(securities fraud)에 대해 수정헌법 7조가 보장하는 민사소송의 배심재판(jury trial)에 회부하지 않고 SEC가 자체 행정심판(in-house adjudication) 절차를 거쳐 부과한 민사벌금(civil penalties)이 SEC의 법적 권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결했다. 특히 6월 연방대법원은 기념비적이라 할 '로퍼 브라이트(Loper Bright Enterprises v. Raimondo)' 판례를 통해 지난 40년간 지속되며 행정부의 법률 해석과 룰 제정 권한을 존중해온 행정법의 핵심 원리인 '쉐브론(Chevron)' 판례를 파기(overrule)했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행정권에 무조건적으로 존중을 부여하지는 않고 행정권을 감시할 수 있는 전통적인 역할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결정이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 강화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로퍼 브라이트' 판례다.
행정부가 지난 40년간 누려오던 권한에 제동이 걸리는 일련의 최근 흐름을 읽게 된다. 이번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차기 행정부의 규제정책 흐름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함을 예고하는 흐름이다. 효율 위주의 행정권 행사에 균형 있는 규율과 법의 지배를 요구하며 행정법 지형의 일대 변환을 가져오는 시점에 와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행정부가 그간 향유해온 적극주의에 대해 사법과 입법의 통제 여지를 넓히며 행정부의 조화적, 균형적 역할 제고 필요성을 환기시킴과 아울러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행정, 사법, 입법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라는 법철학적 성찰의 모멘텀을 던지는 시대적 의미(contemporary significance)가 있다고 본다.
인류 상호작용을 형성하는 게임의 룰인 제도는 일단 형성되면 상당 기간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볼 때(historical institutionalism) 지난 40년을 지배해온 룰의 변화가 지금 시작되고 있음은 다시 새로운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 무엇일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미 대선을 앞두고 민주, 공화 양당이 요란한 전당대회와 선거 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도 정책과 긴밀한 제도변화는 담쟁이덩굴처럼 담을 오르며 그들이 맡을 차기 행정부의 정책 흐름을 앞서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차기 행정부는 과거와 다른 제도변화에 직면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행정 적극주의가 신중주의로 전환하는 국면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기후위기, 인구위기, 불평등 위기, 지정학적 위기, 민주주의 위기 등 대전환기에 직면하는 도전 과제를 다루고자 하는 행정기관은 그들의 행동과 정책이 의회에서 명시적으로 승인되었고 상세한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으로 정당화됨을 보여주는 입증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행정법의 최근 흐름은 향후 각 행정기관이 정통적 핵심 기능(orthodox core functions)에 집중하고 새로운 룰을 만드는 데 신중을 기하도록 하는 제도적 여건이 강화됨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행정부의 자유재량과 전문성을 폭넓게 구가해온 시대는 지난 40여년의 자유주의 흐름과도 시기적으로 변화의 맥락을 함께 하는 측면이 있다. 헤겔의 변증법이 말하는 정·반·합의 역사발전 과정은 행정부를 바라보는 일련의 제도변화 흐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면 행정부의 과제는 부단한 역량 제고에 있다고 본다.
플레이어인 행정부의 높은 역량이야말로 제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시 새로운 제도변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성과 증진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글로벌 제도변화 흐름과 영향에 결코 무관하지 않은 한국의 행정부는 어떤 통찰력을 얻을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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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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