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2-14 15:42:37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 장편 '그해 봄의 불확실성'
팬데믹 기간 뉴욕 배경으로 시대와 문학의 길 성찰
글쓰기 본질은 본능적으로 상실을 메꾸려는 애도 행위
"역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직 국민 정신 건강 위협"

시그리드 누네즈(Sigrid Nunez・1951~) 장편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민승남 옮김・열린책들)은 친근하고 다감한 지적인 수다 같은 소설이다. 카페에서 여성들 몇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옆에서 듣는 듯하다. 

 

▲ 지적인 수다와 위트, 다감한 문체가 특징인 전미도서상 수상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 [열린책들 제공]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지내는 나이 든 소설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팬데믹 봉쇄령이 내려진 어느 날, 그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초록빛 깃털을 가진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인물, 유레카를 원래 돌보던 대학생 '베치'가 갑자기 그의 집으로 찾아오면서, 원치 않은 동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한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둘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계기로 점차 가까워진다.

유령의 도시처럼 변한 뉴욕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거리에서 낯선 이에게 '기침 테러'를 당하면서 소설가는 극도로 위축돼 칩거하는데, 뜻밖에도 분노조절을 잘 못하는 베치가 은근히 위로의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두 사람은 앵무새와 더불어 서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소설은 특별한 결말은 보여주지 않은 채 각자 공간으로 흩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이 주요 서사를 중심으로, 이 소설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전작들처럼 다양한 독서 경험과 문학적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작가 자신인 듯한 화자의 학교 동창이 갑자기 죽자 여성 친구들이 장례식에 모여 동창회를 하듯 고인을 회고하며 다양한 화제를 나눈다. 이 화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중간중간 에세이처럼 자유롭게 작가의 문학과 창작에 대한 생각들이 펼쳐진다.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마치 글쓰기 수업을 듣는 듯한 형식이 흥미롭다.

누네즈는 도입부에 쌍둥이 관련 연구 사례를 제시한다. 쌍둥이 한쪽이 사망한 경우 생존한 쌍둥이 다수가 평생 상실감과 고통, 허전함, 죄책감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성인기에 접어든 후에야 사산된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는 사례를 제시한다. 그는 '아무리 즐거운 순간에도 마음속에 암류처럼 흐르던 슬픔에 대해, 늘 고통을 주던 공허감에 대해 마침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쌍둥이도 아닌데 어째서 그 남자의 사연이 나의 심금을 울린 걸까? 어째서 그 이야기가 하나의 계시처럼 느껴진 걸까? 무언가 빠져 있어. 무언가를 잃어버렸어. 나는 이런 생각이 내가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누네즈의 고백처럼 모든 글쓰기의 본질은 애도의 행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상실된 듯한 느낌을 상쇄하려는 몸짓이 글쓰기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짓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과도 같아서, 그 흔들리는 존재를 붙들고 연민을 투사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런 고백으로 시작한 작가의 소설 속 에세이 형식 사념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간다. 이즈음 문학에서 대세를 이루는 여성들의 득세와 남성들의 위축, 혹은 희미해지는 존재감에 대한 수다도 흥미롭다. 위험한 남자들이야 예로부터 문학의 중심이지만 지금처럼 남자들을 거의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멍청하며 폭력적인 존재로 가차없이 집중 조명한 시대는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엔 남자들이 여성 혐오주의자이면서도 훌륭하고 심지어 용감하기까지 할 수도 있었지. 최악의 바람둥이도 많은 미덕을 갖출 수 있었고, 거기엔 도덕적 자질들까지 포함되었어. 그런데 이제 그런 인물은 설득력을 잃은 것 같아. 여자들만 남자를 나쁘게 그리는 것도 아냐. 내가 읽은 대부분의 남성 작가들 원고에서도 그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지. …그리고 이제 남성 작가들은 여성 인물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매진하고 있어.'

어쩌다 과거의 영웅적인 남성상은 사라지고 현대문학 속 남성 캐릭터들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반면에 여성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이상화되면서 현실감과 복잡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남자들이 없었다면 폭력 세상은 조금 나아졌을까. 아무래도 폭력이 줄면 전쟁 도발, 유혈 사태, 범죄도 줄어들 테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남자들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이 설득력 있다. 그래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할 테고, 여전히 하나의 집단이 나머지 모두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독일 출신 어머니와 중국-파나마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절친 문학 교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미국 문단 현실을 신랄하게 묘파한 장편 '친구'로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최근 국내에 개봉해 화제를 모았던 '룸 넥스트 도어'의 원작('어떻게 지내요')을 집필하기도 했다. 다감하면서 위트 넘치는 문체로 풍부한 문학 지식을 소설에 녹여내는 방식이 돋보이는 누네즈는 이 소설에서도 슬럼프에 빠진 문학 지망생이나 작가들에게 자극을 주는 예화와 팁들을 제공한다.

그는 한 문학단체가 팬데믹 기간에 줌 토크를 열며 브레히트를 인용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전통적인 소설은 우리 시대에 주요 장르로서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썼다.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도 독창성이 부족해 보일 것'이고, '허구의 이야기는 점차 핵심에서 벗어난 인상을 줄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갈수록 노골적인 위선이 판치고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역사와 성찰을 담은 문학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앵무새와 젊은 대학생과 더불어 팬데믹 기간을 보내던 작중 소설가는 아파트 인근 거리를 산책하다가 자전거를 탄 남성으로부터 '기침 테러'를 당한다. 남자는 '아줌마, 겁도 없어?"라며 얼굴에 뒤집어 쓴 바라클라바를 홱 끌어내리더니 작가의 얼굴에 대고 기침을 했다. 그녀는 울면서 뒤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이 암울한 시대 분위기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배경으로 이어진다.

 


▲ 시그리드 누네즈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글을 쓰는 것 같다고 말한다. [열린책들 제공] 

 

트럼프 당선은 SF작가 윌리엄 깁슨의 집필 작업을 중단시켰다. 근미래에 펼쳐질 일들을 예견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윌리엄 깁슨은 미국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심리 치료사에게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트럼프 스트레스 증후군(Trump Anxiety Disorder, TAD)'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2020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2024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된 '사건'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셈이다.

선거가 끝난 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한 흑인 기자는 자신의 엄마가 이제 백인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다며 트럼프의 승리를 몹시 기뻐했다고 전했다. 한 중국계 미국인 남성은 민주당이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신경을 안 써줘서 트럼프를 찍었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그 여자가 떨어지기만 하면 된다는 젊은 좌파 형제들도 있었다. 한 밀레니엄 세대 청년은 자기가 아는 밀레니얼 세대는 전부 트럼프를 싫어하지만 트럼프가 되면 정치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아서 그가 힐러리를 이기기를 바랐다고 내게 말했다. 그 사람들 모두가 분명 자신이 멀쩡한 제정신이라고 믿을 터였다.

지난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 대입해도 전혀 낯설지 않은 대목이다. 누네즈는 "트럼프는 다시 이길 것이고, 만일 이기지 못한다면 권력을 취해 평생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역사상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직이 국민들의 정신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평가된다"고 부기했다. 누네즈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미국 남부 문학의 대표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본다.

'모든 것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슬픔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속성이 존재'(제임스 손더스)하며,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것'(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이라는 작가들의 말을 서두에 제사(題詞)로 제시한 인용문들도 누네즈의 '희망'을 압축한다. 마지막으로 인용한 마고 제퍼슨의 말. '사랑이나 연민을 구하지 않고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는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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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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