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생일 앞두고 장편 출간하면서 소설 절필 선언
혈액암과 싸우며 기억, 사랑, 죽음 성찰하는 '교수대 유머'
"삶은 결국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난 이야기로 축소될 것"
'떠남은 대개 도착에 이른다. (…) 역, 버스 터미널, 공항에서 우리는 출발과 도착 알림판을 본다. 우리는 가고, 우리는 도착하고, 우리는 귀환에 나서고, 다시 집에 다다른다. (…) 하지만 그런 궤도는 더 크고 더 모순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우리 삶에서는 도착이 먼저 오고 떠남은 마지막에 온다. 도착으로 이어지지 않는 떠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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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액암과 싸우는 줄리언 반스가 마지막 소설이라고 선언한 장편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암도 소멸될 것이기에, 싸움은 무승부로 귀결될 것이라고 짐짓 태연히 말한다. [다산책방 제공] |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돌아올 것을 전제로 떠나는 여행과는 다르다. 영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1946~)가 80세 생일을 앞두고 올 초 출간한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정영목 옮김, 다산책방)는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이 아니라, 먼저 도착한 뒤 다음 기착지를 모른 채 떠나는 생을 성찰하는 장편이다. 반스 자신이 이 작품이 소설로서는 마지막이라고 선언한, 독자들과 나누는 작별 인사이기도 하다.
원제 'Departure(s)'는 '떠남' 혹은 '작별'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의 거대한 떠남이 아니라 수많은 작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맥락인데, 이 '도착 없는 떠남'의 테마는 소설의 서사 구조와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화자는 대학 시절 친구였던 '스티븐'과 '진'을 40년 만에 재회시킨다. 젊은 날 헤어졌던 그들은 노년에 다시 사랑을 재점화하려 하지만, 그들이 꿈꾸던 '행복한 결말'이라는 항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은 1부(청년기)와 2부(노년기)로 나뉘며, 그 사이 40년의 시간은 통째로 비어 있다. 반스는 이를 두고 '가운데 큰 구멍이 있는 이야기'라고 칭한다. 우리의 인생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초기 장면들은 생생하지만, 중간은 공백으로 남고, 결국 흐릿한 현재가 점령한다. 도착지(결말)를 향해 차곡차곡 쌓이는 서사가 아니라, 중간이 숭덩 잘려나간 채 떠밀려가는 것이 삶의 실체라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공간은 생생한 초기 장면들, 그다음에는 긴 공백, 그다음에는 반복되는 나날, 그리고 반복되는 혼란이 구름처럼 흐릿하게 지나가고 있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무가치한 현재가 점령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다시 말해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이야기로 축소될 것이다.'
어디로도 도착하지 않는다면, 떠나는 과정에서 남는 것은 바로 '기억'이다. 반스는 이번 작품에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프루스트적 기억, '불수의적 자전적 기억(IAM,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기억(IAM)이 모여 정체성(I AM)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 정체성조차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게 흩어진다. 소설 속에서 반스가 돌보는 늙은 개 '지미'는 자신이 개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간다. 그는 지미를 보며 기억이 사라진 후의 삶, 정체성이 소멸한 뒤의 '떠남'을 서글프게 응시한다.
소설 속 '줄리언'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깨뜨린다. 결정적인 계기는 진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나는 아무도 내게 한 적이 없는 질문, 그리고 나 자신도 한 적이 없는 질문의 답인 것 같아.' 소설가라면 이런 캐릭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진은 말한다. '행복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자신을 부수고 태우는 감정적 연소를 원하는 진과, 신뢰로 끝까지 항해하는 사랑을 염원한 스티븐의 어긋남은 쓸쓸하다.

혈액암을 '관리'하는 현실의 줄리언 반스처럼, 소설 속 화자 역시 암과 싸우고 있다. 반스는 비장한 투병기를 쓰는 대신, '교수대 유머'를 구사한다. 자동차 부품을 훔쳐가는 도둑에게 친구가 들었다는 욕설을 자신의 암에 빗대는 대목이 통렬하다.
'나는 병과 노쇠를 생각할 때 가끔 이 사건을 떠올린다. 그냥 우주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당신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씨발 어서 안으로 꺼져, 알았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죽음은 대단한 비극이나 징벌이 아니라, 그저 우주가 자기 할 일을 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언설이다. 뇌종양을 발견한 지 37일 만에 숨진 그의 아내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같은 말을 했다. 우주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스 자신도 그 우주의 작용에 맞서 싸움을 벌이는 중인데, 아마도 자신이 죽으면 암도 소멸될 것이기에 무승부로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반스는 마지막 장에서 독자를 어느 소도시의 카페 테라스로 초대한다. 그는 그곳에서 독자와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저 '관찰'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작가는 아니었으며, 독자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거나 어떻게 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소설가는 더 큰 지혜를 가진 자리에서 독자를 내려다보며 말하면 안 된다고 역설한다.
'나는 어딘지 모르는 어느 나라의 어딘지 모르는 어느 소도시의 한 카페 실외석에 앉아 있는 작가와 독자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 오랜 세월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기쁘게 여겼기를 바란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반스는 최근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이제는 내가 가진 모든 곡을 다 연주했다는 느낌"이라며 "더 이상 출판이 보장된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쓰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은 것은 다 말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모든 글쓰기를 그만두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평생 기자로 일했으니 앞으로도 저널리즘 활동이나 서평 같은 건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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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언 반스는 "이제는 내가 가진 모든 곡을 다 연주했다는 느낌"이라며 "더 이상 출판이 보장된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쓰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WanderingTrad/Wikimedia Commons |
줄리언 반스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형식'이다. 소설, 논픽션, 회고록, 에세이 등의 장르가 혼합된 형식을 이르는 표현이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의 전기 형식을 따라가며 추리적 요소도 가미한 '플로베르의 앵무새'부터 본격 시도한 이 형식은 이번 마지막 소설에도 적용된다.
반스는 "이런 방식에 대해 늘 관대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한다는 것도 안다"면서 "실제로 소설 속 줄리언 반스라는 인물은 40년 만에 만난 과거 연인 중 한 명에게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는 공격을 받는다"고 NPR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당신이 내 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그녀에게 응수했다"고 덧붙였다. 반스는 나아가 "자서전의 진실과 허구의 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면서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허구든 논픽션이든, 자서전이든 미술사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뒤 자살 충동에 시달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추구해온 '기억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는 "자살한다면 그것은 아내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아내에 대한 소중한 추억들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반스는 그 기억조차 시간이 지나면 짧은 환영(幻影)일 뿐이라고, 마지막 소설에 썼다. 죽음에 선택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
'이것이 분명히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 나 자신이 고른 시간에 마지막 책을 끝내고 입을 다무는 것에는 적어도 한 가지 유용한 결과가 있다. 뭔가를 쓰던 중간에 중단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죽음에 선택권을 넘겨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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