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물론 마음까지 문학으로 치유하는 '무릎 의사'
전 세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깨달음의 시편
"괴로움을 면해주고 기쁨을 주는 부처의 길 염원"
'시 쓰는 사람만 시인이 아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사람은 다 시인이다.'
문학이 장신구로 전락하고, 실제 삶은 표방하는 가치와 겉도는 경우가 많다. 비록 문학의 명패는 내세우지 않아도 문학의 본질을 일상에서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이야말로 김초혜 시인의 저 말처럼 순도 높은 문학인일 터이다. 새해 '문학공간'의 첫 인물로 이른바 등단 문인이 아닌, 문학을 '살아가는' 이를 찾아간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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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 연구실에 설치한 작품 '불이'(不二·박상희) 아래 선 김태균 원장. 그는 '부처와 예수의 길이 다르지 않고 근원은 하나'라는 의미를 곱씹으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무릎 의사' 김태균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판교에 '티케이정형외과'를 꾸려 환자의 관절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보살피는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 특별한 여정의 중요한 도구가 바로 문학이다. 몸의 고통이 치료된다고 해도 마음이 고통받으면 힘든 삶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환자는 물론 병원 직원들에게까지 그가 선별하고 쓴 시와 산문을 전달해왔다. 그렇게 모은 시와 산문을 이해선 작가의 사진과 함께 책으로도 펴낸 바 있다.
그가 최근에는 지난해 등단 60주년을 맞은 김초혜 시인의 대표작을 엄선한 영문시집 'The Home of the Heart'('마음의 집'·해냄)를 아들(윤식)과 함께 공역 출간했다. 그가 진솔한 마음을 수도하듯 담아내는 최고의 시인으로 꼽는 김초혜의 시들을 해외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바람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김 원장이 문학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각별하게 지내는 의학박사 세스 레오폴드(국제슬관절학회 학술지 'CORR' 편집장)는 "전 세계 시 애호가들이 이 시집을 통해 귀한 선물을 받게 되었다"면서 "그는 불교 수행자이자 동시에 자신만의 시 세계를 지닌 아름다운 시인"이라고 상찬했다.
-바쁜 의사의 일상에 문학을 녹여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글을 읽고 쓰는 일이 환자를 돌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 안에서 제가 하는 일과 삶에 대해서 근원적 믿음이나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저에게는 취미가 아니라 제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계기가 있는가.
"중학교 때 처음 전기가 들어오던 충청도 시골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서 독서반 생활을 했고 중학교 때는 하숙집 누나가 남기고 간 문학전집을 접하면서 읽는 삶을 알게 됐다.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어서 사는 게 무섭고 괴롭기도 해서 허무함을 달래려고 끊임없이 읽었던 것 같다. 저에게는 문학이 일종의 치유제였던 셈이다. 8년 전 서울대병원을 나오면서 제가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불안한 저를 다잡아야 했다. 저는 물론이고 많은 직원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었다. 볼티모어 항구의 요새가 밤새 영국의 포격을 견뎌냈고, 새벽에 성조기가 여전히 펄럭이는 모습을 본 한 시인이 그 감동을 시로 남겨서 그것이 미국 애국가가 되었다. 포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깃발, 그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특별히 김초혜 시인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시는 지독하게 솔직하다. 수행자의 깨달음의 경지라고 할까. 삶에서 느끼는 것을 그대로 담는데도 시적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두세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조차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고 의미가 풍부하다. 시인으로서 자존을 지키는 삶, 어른으로서 자부심을 지키는 태도를 중심에 담고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늘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영화를 좋아하는데, 고를 때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우선 재미 있어야 하고, 둘째는 영화를 보고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교육적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세 번째 기준은 그것이 예술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들만 아는 언어로 문학을 하는 이상한 시들도 많다. 지나치게 괴로워하고 과장하면서 왜곡하는 그런 시들과는 현격하게 다르다."

"제가 부편집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술지 편집장 세스 교수가 문학을 무척 좋아한다. 존스 홉킨스 지도교수를 비롯해 제가 아는 해외 지인들과 김초혜 선생님의 시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가장 큰 동기였다. 최근에는 AI가 업그레이드 돼서 풍성하고 효율적인 번역이 가능해졌다. AI와 대화를 나누면서 수정을 거쳤다."
-번역했을 때 시의 느낌이 많이 훼손되지 않나.
"동양 사람들은 통합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쪽인데, 영어 구조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시를 영어로 번역해서 읽으면 우리 말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김초혜 시는 이성과 감성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해 놓으면 이성 쪽이 강조된 느낌이다. 그런 느낌으로 다시 우리 말로 된 시를 읽으면 한 차원 더 깊어진 사유에 이를 수 있다. 상보적인 관계인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있다 _ 김초혜, '내생' 전문
-'내생'을 특별히 꼽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노을이 지고 어둑해지면 슬퍼지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대학 교수가 돼서도 저녁 시간이면 힘들고 쓸쓸했다. 어머니와 장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시면서, 늙고 병을 앓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전문가와 시스템으로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런 역할에 걸맞은 세상에 필요한 병원을 세우겠다고 서울대병원을 나왔다. 수술 100점, 재활 100점, 인생 100점. 이것이 제 목표다. 그래서 환자들이 퇴원할 무렵 10~20명 쯤 모시고 '졸업여행'을 한다. 재활 운동 강의와 함께 명상을 하고 김초혜 시집을 넣은 선물을 드리는 행사이다. 늙어가면서 명품을 사거나 여행을 하는 것으로 허무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갈증을 심화시킬 따름이다.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혜를 깨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내세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내생'이라는 시는 다음 생에 대한 아주 분명한 진실을 담고 있다. 내 생은, 내가 살다 간 가치는, 남아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그러니 나의 삶을 지금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몸의 고통은 물론 마음까지 보살피는 의사이자, 시인의 감성으로 언어를 들여다보는 일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굳이 찾자면 고통을 면해주는 일이고, 그것이 부처님이 가신 길이다. 괴로움을 면해주고 기쁨을 주는 발고여락(拔苦與樂)은 모든 존재가 지향하는 일이다. 삶은 근원적으로 기쁨이기도 하지만 괴로운 것, 모든 존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몸의 괴로움은 의사로서 치료를 하는 것이고, 문학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마음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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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균 원장은 "몸의 고통이 치료된다고 마음까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문학은 취미가 아니라 꼭 필요한 도구"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그는 수술 들어갈 때마다 방석을 준비해서 삼배(三拜)를 한다. 아침 8시부터 수술과 환자 상담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듭하는데, 외래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감정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그는 수술에 앞서 중심을 잡기 위해 일배, 환자를 향해 그가 부처임을 잊지 않기 위해 일배, 그리고 이 수술을 통해 한 가지라도 더 배울 수 있기 위해 절을 한다고 했다. 소설가 조정래는 그가 펴낸 시선집을 두고 "또 하나의 소득은 성의(聖醫)의 발견일 것"이라고 썼고, 이창재 교수(중앙대 영화과, 영화 '목숨' 감독)는 "그의 연구실 이름이 불이(不二)인 것처럼 그와 환자는 둘이 아니고, 그의 의료와 구도(求道)가 둘이 아니고, 부처님과 예수님이 둘이 아니다"고 썼다.
아들 김윤식은 해설 부분을 맡아 번역했고, 본문에는 젊은 감각으로 아버지의 번역에 생각을 보탰다. 김태균 원장은 "한 사람의 내면이 세월과 성찰로 다듬어낸 수행의 자취가 되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면서 "이번 시집으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가 번역하면서 새롭게 느꼈다는 시편.
'단풍은/ 한 번만이라도/ 꽃이 되고 싶어/ 빨갛게 물든 것인가/ 돌도 꽃이 되고 싶으면/ 부처로 쓰임 하는가/ 나도 꽃이고 싶어/ 한세상과 사랑을 했을까'_ 김초혜, '단풍' 전문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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