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당국에 의존 말고 자기자본 확충 등 은행 스스로 노력해야
금융안정 기여 플레이어 역할하면 납세자 부담없이 시스템 지켜
위기 막는 경영진 보수체계, 지배구조 등 유인체계 마련돼야 금리 상승 영향으로 지난 1년 미국 은행들의 자산가치는 급감했다. 시장가치 기준으로 2조 달러 줄었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전미경제연구소(NBER,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가 4800여 미국 은행들의 대차대조표를 분석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모기지 증권 시장가치가 10% 이상, 장기국채 시장가치가 25% 이상 떨어졌고 전체적으로 자산규모가 10% 줄었다. 시장가치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2315개 은행이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미국 은행들의 자금조달원은 자기자본 10%, 예금보험예금 63%, 비보험예금 23%였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금리 등 금융여건 변화에 대한 미국 은행들의 경영 취약성과 예금에 크게 의존하는 자금조달구조를 보여준다. 금번 미국 은행 위기가 규제당국의 통찰력 부족 탓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은행 경영의 취약성에 기인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오늘날의 복합적인 은행시스템에서 규제당국이 모든 금융안정 문제를 완벽하게 예상하고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건 무리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인 은행 경영자야말로 문제를 일차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금리 변동에 취약한 자산구성, 단기부채와 장기자산간 기간 불일치, 위태로운 상업용 부동산 대출 등 현재 미국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요인들은 상당 부분 은행 경영진의 의사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은행 존립 기반은 신뢰다. 신뢰가 흔들리면서 모든 예금자들이 동시에 예금 인출을 원하면 어떤 은행도 생존하기 어렵다. 40년 역사의 실리콘밸리은행이 무너지는 데 40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금번 은행 위기는 미국 은행시스템에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은행산업에 깊숙한 부식이 있다는 통렬한 지적이 있고 개별 은행들의 취약한 리스크 관리 실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고객이 맡긴 돈과 고객에게 제공한 돈을 비춰주는 거울 이미지(mirror image)와 같은 대차대조표 관리에서부터 기본이 흔들렸다.
은행 경영의 기본인 자산부채종합관리(ALM, Asset Liability Management)에서 기간 불일치 문제가 제로금리에서 5%대로 금리가 오르는 동안 계속되었다. 오랜 저금리 시대에 젖어있던 안이한 경영 행태가 은행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예금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비보험예금을 포함하여 돈을 맡긴 고객의 심리와 행동은 은행 경영에서 고려해야할 핵심 요소다. 고객이 항상 은행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은행 경영을 손쉽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예금은 안전하고 펀드는 위험하며, 국채는 안전하고 대출은 위험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던 것 또한 잘못이었다.
사실상 암묵적 정부 보증에 의해 자금조달비용의 보조금을 받는 것과 다름없는 예금에 과다 의존한 것은 은행 경영의 모럴 해저드마저 보여주는 단면이다.
금번 은행 위기 이후 예금보호한도(25만 달러)를 초과하는 총 7조 달러의 비보험예금 전액을 보호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리스크를 도외시하고 예금자를 고금리로 유치하려는 무분별한 은행 경영을 조장함으로써 금융안정을 저해하고 시장규율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은행 경영의 전반적인 실패 속에서도 금융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시장 플레이어의 움직임도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해 미국 최대 은행으로 올라선 JP모건이 금번 은행 위기에도 백기사로 나선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스마트한 은행가로 극찬했다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에게 맨 먼저 전화했고 JP모건은 위기에 처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인수했다. 동 인수는 JP모건에 일정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면서도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 파산 때와 같은 예금전액보호 결정을 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수지맞는 애국심(profitable patriotism)'이라는 평가와 민주, 공화 양당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금번 인수를 은행시스템을 위한 좋은 성과라고 표현했다.
은행의 공과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향후 은행 경영은 어떻게 혁신되어야 할 것인가. 먼저 낮은 비중에 머물고 있는 은행들의 자기자본을 두텁게 확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은행보다 작은 규모의 은행들이 미국 전체 은행 자산의 3분의 1을 점유한 가운데 비보험예금 보유가 상당하며 은행 예금 17조 달러를 커버해야 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험기금은 900억 달러에 그친다.
이에 비추어볼 때 논의 중인 예금보호한도 상향 조정은 은행 위기를 막는 충분조건이 되기 어렵다. 은행 스스로 예금 위주 자금조달과 정부 보호에 의존하려는 타성에서 벗어나 자체 자본 확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JP모건의 예처럼 금융안정에 기여하는 플레이어로서의 은행 역할 또한 긴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위기시 안전하게 은행시스템을 지키는 경로의 하나는 납세자 부담 없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은행간 합병이 될 수 있음을 글로벌 금융위기와 금번 은행 위기는 보여준다.
아울러 은행 경영의 혁신을 통해 은행이 스스로 위기를 막을 수 있으려면 이에 합당한 유인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경영진 보수체계와 지배구조 재설계 등에서 제도변화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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