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명목으로 식비·교통비 등 지급…해외 의료봉사도 지원
"리베이트용 현금 마련 위해 사원 봉급 '뻥튀기'·'유령 직원' 활용" A제약사 영업사원 최 모(44·남) 씨는 지난주 일요일 D피부과 원장과 함께 골프를 쳤다. 골프 비용은 일단 각자 계산했지만, 나중에 최 씨가 원장에게 해당 비용 이상의 현금 봉투를 건넸다.
최 씨는 D피부과 원장을 자주 접대한다. 골프 외에 고급 음식점이나 룸살롱에 함께 가기도 한다. 그 때마다 표면적으로는 각자 계산하지만, 최 씨가 따로 현금 봉투를 내민다.
최 씨는 D피부과 원장 외에 다른 의사들을 접대할 때도 똑같은 방식을 쓴다. 해당 현금은 회사에서 준다. A제약사는 최 씨를 비롯해 여러 직원들에게 본래 받아야 할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그 초과 지급된 돈을 최 씨 등이 인출해 담당 팀장에게 가져간다. 이런 식으로 돈을 모아 뇌물용 현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C제약사 영업사원 박 모(36·남) 씨는 최근 상사의 명령으로 친인척과 지인들 다수에게 자신의 회사에 취업할 것을 권했다.
실제로는 일을 하지도 않고, 돈을 받지도 않는 '유령 직원'이었다. 박 씨가 모집한 유령 직원들의 계좌로 C제약사에서 봉급은 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급여가 입금되자마자 현금으로 인출해 박 씨에게 가져간다. 박 씨는 그 돈을 상사에게 준다.
이렇게 마련된 현금으로 상품권을 사 박 씨가 담당하는 의사·약사들에게 리베이트로 주는 것이다. 박 씨는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약사들은 현금보다 상품권을 선호한다"며 "주로 백화점 상품권이나 여행 상품권을 준다"고 말했다.
김 모(35·남) 씨는 B제약사 영업사원이다. 최근 회사에서 주최하는 학술대회 운영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대학병원 의사와 간호사 등에게는 모두 식비, 교통비, 숙박비 등을 지급했다. 대학병원이 보낸 명단보다 실제 참석자는 적었지만, 명단에 나온 숫자대로 비용을 지급했다. 제약업계 관행이었기에 김 씨도, 회사도 의심을 표하지 않았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 돈을 받았다.
올해 5월에는 E대학병원 교수와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봉사를 갔다. 항공료, 숙박비 등 모든 비용은 최 씨가 소속된 B제약사가 부담했는데, 방식이 복잡했다.
김 씨는 자신의 비용만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해당 교수의 비용은 개인카드로 결제했다. 아울러 교수의 비용만큼 현금을 마련해 따로 교수에게 지급했다. 해당 교수는 의료봉사에서 자신의 돈을 쓰지 않은 것은 물론 따로 현금까지 받은 것이다. 김 씨의 개인카드 비용과 교수에게 준 현금은 모두 B제약사가 직원 봉급 '뻥튀기'를 통해 마련한 돈으로 김 씨에게 줬다.
2010년 5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면서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뿐 아니라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약사들도 처벌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 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약업계에서 리베이트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 씨는 "처방전은 의사가 작성한다. 즉, 어떤 약을 쓸지 의사가 정하기에 그 권한은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은 주로 복제약을 취급해 성능 차이가 별로 나지 않기에 리베이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국에서도 약사들이 시판되는 약 중 어떤 약을 환자에게 권할지가 중요해 신경써야 한다"고 했다.
리베이트를 직접 줄 때는 상품권이 주로 활용된다. 백화점 상품권이나 여행 상품권을 사서 의사·약사들에게 주는 것이다.
박 씨는 "주로 개원의나 개원 약사들이 대상"이라고 말했다. 개원한 의사나 약사는 자신의 병원이나 약국에서 무슨 약을 쓸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에 집중적으로 리베이트를 주며 관리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선물을 보내거나 식사, 술, 골프 등의 접대도 자주 이뤄진다. 접대는 법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일단 각자 계산하지만, 나중에 접대받는 의사·약사에게 따로 현금을 준다.
최 씨는 "규모가 제법 되는, 준중형병원 원장이나 대형 약국 사장은 다수의 제약사에게 리베이트를 받기에 그 액수가 꽤 크다"며 "매달 1000만 원 이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씨는 "규모가 작은 개인병원이나 소형 약국 약사도 월 수백만 원 가량의 리베이트를 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은 내부 규정이 엄격해 의사들에게 상품권을 주거나 골프 접대를 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합법적인 형식의 리베이트는 있다.
의료법상 제품설명회나 학술대회에서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을 지급하는 건 합법이다. 이를 활용해 다양한 경로로 대학병원의 의사·간호사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대학병원 의사가 시골, 외딴섬 등 의료취약지역이나 해외로 의료봉사를 갈 때 제약사 영업사원이 수행하면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도 한다.
김 씨는 "의사·간호사들이 먹을 점심 도시락을 사서 나르는 제약사 영업사원도 봤다"고 했다. 그는 또 "대학병원 근처의 식당에 제약사 영업사원 명의로 돈을 걸어둔 뒤 의사·간호사들이 그곳에서 회식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14곳의 제약사가 불법 리베이트로 행정처분을 받았다. 적발된 '리베이트 의약품' 개수는 총 852개였다. 이들 제약사에게는 총 27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김 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 리베이트 사례는 적발된 것의 수백 배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의사들이 처방전을 쓰는 권한을 쥐고 있는 한, 제약업계에서 리베이트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쓰게 웃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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