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미달업체 대거 진입…투자문턱도 낮아져
판매사 감시·견제 실종…금융 감독에도 구멍 1조7000억 원 규모의 라임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진 지 몇달 지나지 않아 5000억 원 규모의 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터졌다. 디스커버리 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독일 헤리티지 펀드, 호주 부동산 펀드, 팝펀딩 등 주요펀드의 환매중단 또는 부실논란이 잇따르면서 사모펀드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시장 진입이 쉬워져 운용사가 난립한데다 투자 문턱이 낮아져 개인들의 사모펀드 투자가 크게 늘었다. 그런데 판매사의 견제와 금융당국의 감독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부실펀드로 인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은 "금융위원회의 무분별한 규제완화 3종 세트가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오창화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자본요건을 10억으로 낮추면서 책임감 없는 기업들이 (사모펀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자본요건이 40억이라 해도 사기·횡령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연이어 터지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모펀드는 돈을 잃어도 괜찮은 고액 자산가들이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잘게 쪼개서 서민들에게 공모펀드처럼 팔다 보니 문제가 커졌다"며 "감시·감독 강화도 중요하지만, 사모펀드가 사모답게 운용될 수 있도록 규제를 복원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핵심은 해당 펀드들이 당초 밝힌 운용계획과는 달리 전혀 엉뚱한 곳에 투자를 했다는 데 있다. 옵티머스 측은 공공기관 채권 등 안전자산에 95% 이상을 투자하겠다며 고객을 불러모았지만, 실제로는 자금 대부분을 비상장 업체 사모사채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라임자산운용 역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가진 상품)에 주로 투자하던 라임 펀드들이 위험상황에 놓이자 다른 펀드 자금을 끌어와 메우거나 채권 보유 한도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회사 명의로 구입하는 등의 수법으로 고객들을 속였다.
디스커버리 펀드의 경우 펀드가 투자한 해외 운용사 DLI가 수익률 조작 등을 벌인 혐의로 미국에서 자산 동결 처리되면서 자금이 묶였다. 피해자들은 판매사인 IBK기업은행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다'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규제완화의 역설…사모펀드 활성화 vs 펀드 부실초래
전문가들은 환매중단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모펀드 규제가 대폭 완화된 점을 꼽는다.
2015년 금융당국은 자산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최소자본요건을 기존 4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낮췄다. 지난해에는 이 요건이 10억 원까지 줄었다. 적격투자자 요건은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완화됐다. 펀드 사전 심사제도 폐지됐다.
사모펀드는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대신 책임 역시도 투자자 본인이 지는 구조다. 그런데도 1억 원만 있으면 누구나 펀드 투자가 가능해 진 것이다.
최소자본요건이 완화되고 등록제가 되면서 자산운용사의 수도 급증했다. 2015년 3월 말 87개이던 자산운용사는 2020년 3월 말 현재 300개 사로 5년 만에 245%가 증가했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은 2016년 설립됐고, 라임자산운용은 2012년에 설립됐지만 전문사모집합투자업으로 등록한 것은 2015년 12월이다.
사모펀드의 자산규모도 급증했다. 2015년 3월 말 187조 원이던 사모펀드 운용자산은 2020년 3월 말 현재 418조 원으로 124% 늘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는 시간과 자금이 충분한 자산가들이 투자하기 때문에 펀드매니저의 잘못을 직접 감시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운용상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것"이라며 "사모펀드의 근본적 취지는 복잡한 공적 규제를 면제해주는 대신 자신 있는 사람만 들어가라는 것인데, 지금은 1억만 있으면 다 뛰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판매사 감시·견제 실종…금융당국 감독에도 구멍
사모펀드 판매사는 자산운용사의 투자설명자료를 충분히 검증하고, 판매 이후에는 투자설명자료대로 운용이 이뤄지는 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시와 견제는 뒷전으로 둔 채 판매에만 열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 고지 의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사모펀드로 인한 피해를 입은 투자자의 상당수는 '판매사가 펀드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임 펀드 판매사들은 지난해 2월 라임 펀드의 위험성을 인지했지만, 판매사에 따라 4월에서 7월까지도 펀드를 팔았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현 시스템 하에서 자료 검증과 운용 검증을 다 하기에는 인력이나 역량 차원에서 무리가 있다"고 항변했다.
금융당국은 펀드를 구입하는 시민들이 소규모 자산운용사의 이름보다는 판매사인 대형 은행·증권사의 이름을 통해 펀드 상품에 대한 신뢰를 얻으며, 판매 수수료까지 받는 만큼 감시·견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운용 주체는 자산운용사지만, 직접적으로 투자자를 만나는 것은 판매사"라며 "내가 파는 상품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투자자 대신 점검하는 것이 판매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역시도 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4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합동으로 사모펀드 관련 제도개선 방안을 확정 발표한 이후에 추가적으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모펀드에 대한 집중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의심스러운 부분도 발견했지만, 현장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KPI뉴스 / 양동훈 기자 yd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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