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미비로 美서 1천억 제재금

강혜영 / 2020-05-25 10:48:37
뉴욕지점 2010년부터 시스템 개선·인력 보강 요구에 미온적 대응
한 무역회사의 대이란 제재 위반 거래 5개월 지나 발견
IBK기업은행이 뉴욕지점의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은 혐의로 미 당국에 1000억 원 규모의 제재금을 물게 됐다.
 

▲ 미국 뉴욕 남부지검 홈페이지 캡처

25일 미국 뉴욕 남부지검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지난달 20일 미국 사법당국과 뉴욕주 금융청에 총 8600만 달러(약 1049억 원)의 제재금을 지불하고 향후 불법 행위를 중단하며 개선 조치를 이행할 것에 합의했다. 미 정부는 기업은행이 합의사항을 준수한다는 것을 가정하에 기업은행 뉴욕지점에 대한 기소를 2년간 유예했다.

기업은행은 미국 은행보안규정(Bank Secrecy Act)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기업은행과 뉴욕 남부지검 간 합의서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2011~2014년 뉴욕지점에 적절한 자금세탁 방지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Willfully) 이행하지 않아 해당 법을 위반했다.

이 같은 자금세탁 방지 프로그램 운영 실패로 인해 기업은행은 한 무역업체가 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1조 원가량을 빼내 여러 국가에 분산 송금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합의서는 기업은행이 뉴욕지점 내 준법 감시인의 지속적인 요청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자금세탁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필수적인 자원과 인력,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기업은행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지점 내 거래 내역을 수동으로 검토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외부 규제 기관들과 지점 내 준법 감시인은 2010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준법 감시인은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기업은행 뉴욕지점장과 준법감시위원회에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청했다. "현 프로그램은 수동이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오류를 내기 쉬워 은행 규제 위반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과 2011년 당시 기업은행 뉴욕지점에 준법 감시팀 직원은 준법 감시인 1명이었다. 이에 준법 감시인은 인력을 보강할 것도 공식적으로 요청했으나 뉴욕지점은 경영진은 영어를 못 하고 준법 감시 경험이 없는 인턴 배치를 제안했다. 제안이 거절되자 결국 영어가 능통하지 않고 준법 감시 관련 경험이 없는 정보기술(IT)팀 직원이 IT를 주 업무로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준법 감시 업무를 보조하는 형식을 제시했다.

이같은 시스템 미비로 기업은행은 무역업체 A사가 2011년 2~7월 약 50차례 걸쳐 기업은행 서울 모 지점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대금 결제 계좌에서 총 1조 원가량을 인출해 뉴욕지점을 거쳐 5~6개국에 있는 계좌로 옮긴 사실을 적시에 발견하지 못했다. 뉴욕지점은 첫 위장거래 시점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11년 7월 해당 사실을 인지했다.

합의서는 "뉴욕지점의 적절하지 않은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 때문에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위반한 일련의 거래를 적시에 적발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해당 사건 발견 직후인 2011년 7월 준법 감시인이 기업은행 본사에 '현재 자금세탁방지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BSA가 요구하는 검토 수준보다 8개월 뒤처져 있다'는 내용의 메모를 보냈지만 기업은행 측은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고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는 데까지 18개월의 시간이 더 소요됐다. 풀 타임 준법 감시인 인력 보강도 2014년 10월에서야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란 제재 이전에는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운영이 수기로도 가능했으나 제재 이후 자동화가 권고됐다"면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 체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한 업체가 이제재를 위반하는 사건이 발생해 이를 적시에 발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권고한 시스템 및 인력을 모두 갖춘 상태"라며 "1000억 원이라는 다소 큰 규모의 제재금은 지난 7년간 충당금을 쌓아놨기 때문에 올해 실적과는 관련이 없다"고 부연했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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