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틀에 가두려 들면 문화가 죽는 거야"
대전에 거주하며 해학미 넘치는 산문시의 세계를 펼쳐온 육근상(58) 시인이 새 시집 <우술필담 雨述筆談>(솔출판사, 9000원)을 펴냈다. 2013년 <절창>과 2015년 <만개>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우술필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범상치 않은 시집이다. 우선 제목부터 그렇다. 지식과 정보가 빛의 속도로 확산되고, 되먹임되는 시대에 ‘필담’이라니...
"일반인에게 '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왜 그런가.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시가 흔히 '시적 형태'라고 하는, 규범화된 틀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과도한 상징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말로 쓰인 시를 우리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글로 나누는 대화이라는 뜻인 필담이란 단어를 통해 시가 문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소통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예사롭지 않음은 제목에 그치지 않는다. 육근상은 동년배 시인들 가운데, 더 나아가 현역 시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토속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담아내는 시인이라 해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시가 그렇다.
"집안싸움 난 외가 가신 엄니 열하루 째라 얼큰해진 아부지 공부도 못허는 것 꿇어 앉혀 놓고 늬 엄니가 문제여 늬 오삼춘이 문제여 늬 이모덜이 문제여 문제여 방바닥 탁탁 두드리시다가 시부럴느므거 다 쌔려 부시야 ˚끄대 들어오지 오짠느므 집구석이 육이오 동란 끝난 지 온젠디 아직까지 난리여 난리가 밖으로 나가 살강 때려 부수고 장독 두드려 깨고 그래도 양이 안차는지 내 이느므거 다 태워뿌리야 들어올껴 소죽 쑤려 끌어다 놓은 솔가루에 성냥 그으려 하시 길래 아부지 아부지 그만허세유 지가 댕겨 오께유 가서 엄니 뫼시고 오께유 옥천 버스 타고 노란이 내려 부소무늬 들어가는디 홑겹에 쓰레빠 끌고 십리는 걸어 들어가는디 눈발 퍼붓고 발목까지 퍼붓고 시퍼래가지고 눈 쌓인 마당 들어서자 작은 이모 불 때다 말고 뛰어 나와 아이고 아야 엄니 찾으러 온겨 잉잉 오똑허먼 좋아 엄니 큰 이모 따러 서울 갔는디 오똑해야 옳여 오똑허니 궁뎅이 멫 쌈 두둘기 주고설랑은 밥 먹고 니얼 가그라 니얼 핵교 가야허는디요 집에 가봐야 헌당께요 지는 그만 갈텡께 더 기시다 니려 가세유 돌아와 고개 수그리고 있응께 늬 엄니는 이느므 새끼 늬 엄니는 오라질느므 새끼 가서 막걸리나 한 주준자 받어와 이느므 새끼 봉창이 손 집어 늫고 막걸리 받아오다 청중날맹이 앉어 주준자 꼭다리 물고 멫 모금 삼켰더니 달짝지근헝게 쩍쩍 달러붙는디 한참 꼬라져 있는디 아부지 찾아와 도끼눈 뜨고 이느므 새끼 후라덜느므 새끼 업어 이느므 새끼 그래 늬 엄니는 뭐랴 왜 안온댜 업혀 가는디 갸갸갸 짖어 대는 까마귀 사정 아부지는 아셨는가 물러"
(청중날맹이’ 전문)
충청도가 배출한 걸출한 소설가 고 이문구(1441~2003) 선생의 <관촌수필>을 시로 옮긴다면 아마 위 시와 비슷한 느낌이 날 것이다. <만다라>의 김성동 작가가 장편소설 <국수>를 통해 130년전 충청도 내포지역의 아름다운 토속어를 되살려냈다면, 시인 육근상은 <우술필담>을 통해 현재 금강 유역에서 실제로 쓰이는 지역방언을 천연덕스럽게, 혹은 의뭉스럽게 풀어놓는다.
'우술' 혹은 '비슬'은 금강 물줄기를 따라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호서에서 영서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 나라의 흥망성세가 결정된 곳이고, 근·현대에도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육근상은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 인근에 살고 있다. 토착민으로서의 깊고 진한 정서와 풍정이 시의 소재가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임우기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시인이란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삶과 전통에서 자기 시의 근원을 찾는 자연적이고 토착적인 존재이다. 육근상의 많은 시들이 충청도 지역의 사투리를 기본으로 한 특유의 개인 방언으로 쓰인 것은 그러므로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깨금, 나싱개, 날맹이, 모냥, 베름빡, 볼테기, 봉다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충청도 입말(口語)들이 거의 모든 시에 서너 개씩 들어 있는 것도 향토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준다.
"허울 뿐인 해외문학 이론에 경도돼 표준어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다. 표준어주의라는 게 무엇인가. 살아있는 우리말 또는 특색 있는 고유어를 죽어 있는 틀에 가두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말을 가두려는 시도를 하는 순간 죽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다."
육근상의 시에서 지역방언과 문체는 시의 토속성을 높이는 도구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시적 화자(話者)를 포함한 <우술 필담>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중심부 인물들이 아니라, 순리를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천성이 순한 주변부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쇠락해가는 것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과 목소리는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시인의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아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시는 조금만 더부룩해도
끄억 끄억 나 좀 따 줘바요
바짝 붙어 앉아 치대는 거였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명의처럼
아니 뭘 먹었길래 소화도 못 시키고 헛구역질이랴
어깨부터 두드려 쓸어내리며 손 주무르다
엄지손가락 실감아 바늘로 콕 찌르면
검붉게 흐르는 핏물 바라보다
쳇지 쳇지 거봐 체한 거 맞지
그려 그려 쳇구먼 쳇어 장단 맞추어
덩달아 끄억거려 보듬어 주면
흡족해 하다 잠들고
새벽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어나
도시락 싸고 와이셔츠 다리고
머리감고 출근 준비로 바쁜 거였습니다
사랑은 쳇기 같은 것이어서
어깨 두드려주고 팔 쓰다듬고
손 주물러줘야 개운해지나 봅니다
('개운한 사랑' 전문)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사인(한국문학번역원장)은 육근상의 첫 시집 <절창>에 실은 해설에서 "그의 시는 반죽이 차져 맨목으로는 넘기기가 수월치 않다. 야문 손으로 오래 만진 까닭이다"라고 평했다. <만개>를 거쳐 <우술필담>에 이르는 동안 그의 시어들은 더 단단해지고. 맛은 더 그윽해졌다.
지난 9일 충청권을 대표하는 원로시인이자 국어학자인 조재훈 선생의 문학선집 발간기념회장에서 만난 육근상은 이렇게 말했다.
"시는 내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까지 오직 시만 생각한다. 아침에는 오늘 뭘 쓸까 생각하고, 저녁에는 내일 뭘쓸까를 생각한다. 시가 없으면 나도 없다."
이 엄청난 얘기를 그는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뿐 아니라 삶 역시 범상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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