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신민으로 일본 육사를 졸업한 김경천이 시민으로
거듭나 연해주로 망명, 무장 독립투쟁 벌이다 스러져간
생애를 그의 시대 사람들 애환과 함께 생생하게 기록
"이념은 공존하는 것, 이익과 권력에 직결되니까 충돌"
'연해주에는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젊은 한인들의 영혼이 묻혀 있다. 그들은 러시아 내전에 휩쓸려 볼셰비키 혁명군 편에서 싸웠다. 레닌이 죽은 후 러시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연해주로 망명한 도쿄 기병연대 조선인 장교의 꿈은 시베리아 수용소군도에서 끝났다. 이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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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과학과 문학 사이를 오가는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가 세 번째 장편소설을 펴내고 기자들과 만났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사회학자로 이름이 높은 송호근(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 원장) 교수가 세번째 장편 '연해주'(나남)를 펴냈다. 모두에 짤막하게 축약한 붙임말처럼,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경천(1888~1942)의 생애를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과 더불어 그려낸다.
김경천은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돼 190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1년 일본 육사 23기로 기병과 졸업, 소위로 임관됐다. 그 기간 동안 대한제국 육군군기창장이었던 아버지와 대한제국 육군공병부령이었던 형은 시대의 격류 속에서 일본 극우파와 조선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김경천은 병가를 구실로 귀국, 1919년 탑골 만세운동을 접하면서 더이상 제국의 신민이 아닌 시민으로 나아가는 분기점에 선다. 거듭 태어난 그는 그해 6월 후배 지석규(지청천)와 함께 연해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일본군 사주를 받아 연해주 한인 부락을 약탈해 온 마적단을 괴멸시켜 '백마 탄 김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다.
러시아 백군과 합세한 일본군 연합부대와 싸움을 이어나갔고 고려혁명군 동부사령관으로 추대되었으나 소비에트 정부가 무장해제 명령을 내리면서 독립 항쟁의 기운은 꺾여나갔다. 이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명령으로 연해주는 초토화됐고, 김경천은 반역 혐의로 소비에트 당국에 체포돼 복역한 뒤 카자흐스탄에서 가족과 합류해 집단농장에서 일하다 다시 간첩죄로 체포돼 수용소에서 건설 노역을 하다 생을 마쳤다.
고종의 '신민'에서 '시민'으로 거듭나 연해주로 망명해 김경천이 걸어간 여정은 그대로 송호근 교수가 사회과학 차원에서 집필한 '시민의 탄생' 의 속살인 셈이다. 그가 그동안 잘 조명되지 않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과정과 애환을 김경천을 뼈대로 깊이 들여다본 소설을 내놓고 기자들과 만났다.
"사회과학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망(眺望)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밑에서 움직이는 전체 지형을 다 파악하고 그 속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집어넣는 건데, 사실 그때 사회과학이 포착한 인간은 추상적 인간입니다. 인간을 추상화시켜 놓지 않으면 사회과학이 살아날 수가 없죠. 개개인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다시 끄집어내는 걸 가장 잘하는 건 문학입니다. 문학이 그런 의미에서 사회과학의 바탕이 돼야 하는 건 사실이에요."
송교수는 "40여년 동안 사회과학을 하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현장 속으로 자꾸 들어가게 되는 것은 사회과학의 메마름, 냉정하게 표현하면 객관성인데, 그 안에 안주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면서 "시대의 얘기가 구체적으로 사람들 삶에서 현현되기 때문인데 그래서 문학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사회과학으로 올라가는, 조망하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일들이 그동안의 습관이었다"고 말했다.

볼셰비키가 독립운동을 제어하며 독립군 내부에서도 분파가 만들어져 갈등하던 와중에 김경천이 그 공간에 몸을 던졌고, 그나마 분열이 덜했던 간도에서 활약하다가 연해주로 들어간 뒤로는 사회주의와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했다고 송 교수는 말한다. 김경천이 러시아 백군과 연합한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장면들이 소설 앞에 배치돼 있거니와, 이는 '닥터 지바고'의 장면과 연계되는 역사적 공간이어서 가슴이 설렜노라고 덧붙였다.
김경천이 연해주에서 재회한 일본 유학시절의 조선인 여성 '경옥'은 '닥터 지바고'의 '라라'를 연상케 하는 애틋한 인물이다. 송 교수가 지어낸 허구의 캐릭터이지만 실제 그의 일기에 등장하는 여성을 뼈대로 만든 인물이어서 전체 생애사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는다. 17만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풍경을 묘사한 소설의 마지막 장 '달빛 유언'을 두고, 소설가 김훈은 흡인력 강한 '절정'이라고 상찬했다. 이 장에서는 연해주에서 추방당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각 지역의 구체적인 입말을 동원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경천이 갔던 연해주 경로를 답사한 적이 있는데 기차에서 본 초원의 은빛 달빛이 인상적이었어요. 멀리 숲이 아스라이 보이고 기차는 밤새 달리는데 그가 이 길을 가면서 무슨 고민을 했을지 감정 이입이 되더군요. 그 고민이 이 소설에 녹아 있습니다. 광복 79주년인데, 중국 내륙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들이 있어요. 실제로 그 이전 단계에서 간도와 연해주에 묻혀 있는 얘기들에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는 사례로 육군사관학교 홍범도(1868~1943) 흉상 이전 논란을 거론했다. 판단을 하기에 앞서 과거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에서 이 사람이 무슨 선택을 했을까, 불가피하게 그쪽으로 몰려간 것은 아닐까,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를 해야 100년 뒤 후세대가 품위를 지킬 수 있다"면서 "무조건 지금 잣대로 볼셰비키 사회주의자라고 얘기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거는 요즘 국회에서 하는 것처럼 선머슴들이 하는" 행태라면서 "역사를 망가뜨리지 않고 이해하려면 그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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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근 교수는 "위에서 조망하는 사회과학은 인간의 생생한 삶을 담아내는 문학을 바탕에 깔아야 한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지금 사회 정치적으로 진행돼가는 모습들이 이념 충돌인데, 사실 이념은 충돌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겁니다. 어느 순간 이익이나 권력과 직결되니까 충돌로 나타나는 거죠.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겪고 있는 것은 결국 사상의 빈곤 아니겠어요? 자유주의가 있으면 사회주의가 있죠. 자유 시장이 정말 좋은 거라고 하는 걸 느끼기 위해서는 통제된 시장을 알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다면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그게 사상의 자유로운 공간인데, 권력과 이익 투쟁에 직결되다 보니까 난리가 나는 거죠. 우선적으로 그러지 말아야 될 정치권이 완전히 낙인을 찍어서 국민들을 갈라치기 하니까, 우리가 지금 역사라고 하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요."
송 교수는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 3부작을 사회과학 차원에서 펴냈거니와, 이 과정을 뒷받침하는 작업을 이번 소설을 펴내면서 완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소설 '강화도'는 구한말 강화도조약의 실무를 맡았던 인물 신헌(1810~1888)을 통해 인민의 존재를 각인했고, 북쪽 고향으로 올라갔다가 남쪽에서 매장된 작가 김사량(1914~1950)을 다룬 장편 '다시 빛 속으로'는 '국민의 탄생', 이번 소설은 '시민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다는 설명이다. 고종 황제의 '제권(帝權)'에서 3·1운동으로 상징되는 '민권(民權)'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살아낸 김경천과 그의 시대가 세밀하게 녹아든 소설이기 때문이다.
한일합방으로 고종이 주권을 포기했다는 것은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禪位)이니 우리 동지는 당연히 대통을 상속할 의무가 있다"는 대한제국 무관 신규식의 포효에, 소설 속 광서(김경천의 개명 이전 이름)는 아찔했다. 고종이 여전히 군주로 남아 있는 광서에게 제권은 끝났고 민권이 시작됐다는 선언은 광서의 가치관을 일시에 뒤집어 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는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을 읽고 또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고종의 붕어가 뜻하는 바를 비로소 새롭게 이해한다. "전제군주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뜻"이고 "고아가 아니라 신생아, 신생명, 산시대가 출발한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송 교수는 그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접한 100년 전 유길준(1856~1914)의 자취에서 충격을 받고 이후 내내 그의 삶을 가슴에 품어왔다고 했다. 그가 40여년 동안 담아온 유길준에 대한 생각을 평전 형태로 집필 중인 배경이다. 김훈의 표현처럼 '신민에서 시민으로 진화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증언'한 송호근은 '연해주에는 국민이 되고 싶었던 조선인들의 한이 운무처럼 서렸다'고 작가의 말을 맺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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