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과 세월호, 엄마와 친구와 작가의 죽음까지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꺼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작업
"이제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다정'을 열어주었으면"
하명희 세 번째 소설집 '밤 그네'(교유서가)는 고향 서울을 떠나면서 펴낸 작품집이다. 세상과 개인의 유대와 길항을 냉철한 시선으로 보되 온기를 담아 전하는 단편 8편이 수록됐다. 작은 이야기로 축소된 이즈음 소설판에서 드물게 사회적인 현안과 낮은 곳의 사람들을 조명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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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동안 살았던 '고향' 서울을 떠나면서 세 번째 소설집을 펴낸 하명희. [교유서가 제공] |
표제작 '밤 그네'는 이태원 참사에서 돌아오지 못한 딸과 남편을 둔 여자의 이야기다. 부녀가 밤의 놀이터 그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내려다보곤 했던 여성은, 남편과 딸이 돌아오지 못한 일년 내내 칩거하며 붕괴된 상태에서 살다가,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마음을 추스르고 달려가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여자는 "'나도 갈게'와 '내가 갈게'는 조사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말하는 데 1년이나 걸렸구나"라고 탄식한다.
'엄마는 지금 너에게 가고 있어. 그곳에는 밤 그네를 타며 너와 네 아빠가 기대고 웃고 울었듯이,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고 있대. 나약한 엄마가 도망가려 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1년 동안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는구나. …너를 만나러, 너를 끝까지 지켜주고 있었던 네 아빠를 만나러 내가 갈게. 그곳으로 갈게.'
'다정의 순간'에는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의인의 아픔이 있다. 그는 배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이들을 구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영상을 보고서야 자신이 그리 미친듯이 아이들을 살리려고 뛰어다녔다는 사실을 알 뿐,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다. 심각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는 퇴촌의 작은 도서관에서 열리는 북토크에서 그날 이후의 삶에 대해 어렵게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한 번 입을 열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이야기들이 서로 경쟁하듯 터져 나온다.
그곳에 가면서 언니의 오래된 상처를 듣게 된 나는 그이의 증언이 고맙고 소중하다. 언니도 그이도 이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중학생 딸이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을 맡아 연주하는데, 그 악기는 다른 악기들과 어울릴 때 자신의 존재증명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이도 이제 세상에 나서서 트라우마를 눌러가며 증언을 제대로 할 때 호른으로 충분한 음색을 내며 조화롭게 세상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 번이나 자해를 했다는 그이는 상처로 똘똘 뭉친 사람처럼 정면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이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낸 작가의 북토크 자리였다. 만화작가는 "요즘은 다정, 다정함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이 작업을 하며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책에서 했으니 이제는 우리 안에 있는 그 다정을 열어주셨으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우리 안에 가두어 둔 '다정'을 일깨운다.
가장 가까운 이태원 참사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사회적 현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우리 안의 '다정'을 꺼내달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터이다. '다정의 순간'의 언니가 북토크 현장에 이르러서야 중학생 시절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대목은 냉소적인 채 자신 안으로 숨어드는 이즈음 세태에 설득력 높은 처방전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문제란 게 결국엔 내가 껴안으면 내 문제인 건데, 무서우니까 세계와 나를 분리한 게 아닐까.'
"이 얘기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세상의 폭력과 맞서지 못한 사람들의 각성, 인식 같은 것이죠. 예전을 돌이켜보면 그때 했어야 되는데 못한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냉소가 되게 싫었어요. 저도 그런 기간이 있었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서 얻어낸 각성입니다. 그것도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가 아니라 누군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까지 증언하는 걸 보면서 그 사람을 통해서 느끼게 된 거죠."
지난 5월 50년 동안 살던 서울 땅을 떠나 태안반도 '시목' 마을로 이사 간 하명희는 전화기 너머에서 "이상하게 '다정'을 꺼내면 좀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면서 "안에 있는 '다정'을 그냥 꺼내줬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하명희에게 '세상의 문제'와 '내 문제'는 넘나들며 출렁인다. 서로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비구니 이모와 어머니의 사연을 축으로 어머니 장례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작년에 내린 눈'은 지극히 개별적인 그녀의 문제이면서도, 노모와 중환자실을 같이 썼던 남자의 젊은 아내와 나누는 작은 위로에서 보이듯 죽음이라는 공통 운명 앞에 선 인간들의 아픔으로 확장하는 차원에서는 '내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숙'자를 공통으로 썼던 학창시절 절친 진숙이, 선숙이, 미숙이, 키다리 연숙이 들로 묶인 '사숙' 멤버들이 그들 중 하나를 생전 장례식을 치르며 떠나보내는 이야기는 개별적인 죽음을 넘어서는 또하나의 확장판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와 교류했던 노작가의 빈소가 무대다. 이 빈소에는 작가의 소설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조문하며 방명록에 선생과의 추억을 이어쓰기 하는 롤링페이퍼를 연출한다. 곡마단의 차력사, 자전거 도둑을 쫓던 순경, 갈 곳 없었던 할머니와 손녀, 버스 기사, 민들레 다방 여자, 새벽 꽃시장에서 갓낫아기 업고 묘목 손질하던 여자…. 소설 속 사람들이 소설가의 장례식에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는 빈소의 진풍경을 두고 하명희는 '그것은 누구나 각자의 페이지가 있고, 각자의 문장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의 합창'이라고 썼다.
"소설 속 선생님은 자신은 못생긴 사진도 다 보여주는데 사람들은 예쁜 사진만 골라서 보여주더라고 썼어요. 못생긴 것도 그냥 정직하게 다 보여주는 게 소설이라는 거죠. 정직하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끌어낼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 같아요. 허구의 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요. 제 문학의 자리는 그걸 좀 더 정직하게 퍼내는 것이죠."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나선 하명희는 1991년 분신정국을 전후한 고등학생들의 저항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려낸 '나무에게서 온 편지'('슬픈 구름'으로 제목을 바꿔 올해 '강' 출판사에서 복간)로 2014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고, 고공 크레인 여성 기사가 주인공인 단편집 '불편한 온도'로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과 백신애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천착해온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실제로 존재한 것들이거나 대부분 자전적인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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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명희는 "이번 소설집이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됐으면 좋겟다"고 말한다. [교유서가 제공] |
위에 언급한 단편들 외에도 부마항쟁 당시 최연소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마산행', 뇌졸중으로 쓰러진 가족 이야기를 줄기로 함께 흔들리는 다정함을 들여다보는 '그 여름 저녁 강이 우리에게 준 것', 공간이 위로의 중심으로 다가오는 '오래된 서점에서' 들이 이번 소설집의 목록이다.
" 서울을 떠나 낯선 곳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서울살이를 정리하는 홀가분한 느낌입니다. 지난 소설집에서 한강 밤섬을 둘러싼 서울 변두리 삶을 다룬 중편 '그림자들의 강'을 쓰고 나서 고향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아, 서울이 내 고향이었구나, 그래서 자꾸 이런 걸 쓰고 있었구나 싶었죠. 이제 제가 쓴 소설을 통해서 발견한 고향 이야기를 여기서 한 번 마무리한다는 생각 때문에 홀가분한 거죠."
하명희는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둘러싼 이야기를 벌써 취재 중이고,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 이야기도 장편으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부당하고 삭막한 현실을 들추면서도 그것들을 풀어가는 하명희의 문장에는 '온기'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아프고 괴롭고 힘든 사람들이 약자여서 그들 편을 들어주는 용기 있는 작가라는 의미이면 좋겠다"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악인을 그리지 못하는 한계를 지칭하는 단어 같아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소설가와 시인으로 시대를 횡단한 송기원(1947~2024)의 부음을 접한 날, 하명희는 책장에서 꺼내든 그의 시 한 구절이 새삼스럽게 큰 푯대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시의 자리에 소설을 넣어 보루로 삼아도 좋겠다고.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더 이상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 _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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