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아메리칸 파이'와 트럼프 관세 폭탄

박철응 기자 / 2024-11-08 16:42:00
알맹이 없는 사과, 실속 없는 외교...닮은 꼴
바이든과 차원 다른 '위대한 미국' 압박...대응 전략 절실
동맹만 내세우는 안일한 인식...'불변'의 위기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7일 기자회견은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적 통설을 뒷받침하는 듯 했다. '따지고 보면 잘못한 건 없지만 시끄러우니 사과는 한다'는 태도가 그랬다. 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라 바깥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메가톤급 변화가 들이닥쳤다. 

 

트럼프 당선인의 슬로건인 '위대한 미국'은 곧 힘을 내세워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역대급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한국은 대표적 타깃으로 여겨진다. 산업계는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기업의 대응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방파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뒤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이 대목에 '아메리칸 파이'가 떠오르는 건 고약하다. 지난해 4월 미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불러 화제를 모은 노래다. 친밀한 한미 양국 정상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가 미 정부의 보조금 제외와 규제 독소조항 등으로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우려되던 때였다. 우리 기업을 위한 구체적 협의나 개선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지만 말고 아메리칸 파이를 좀 나눠 가질 수 있게 하라"는 등의 비판이 뒤따랐다. 윤 대통령은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나라 밖에선 국익을 위한 설득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외양에 치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자동 지급기)'에 빗대며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의 9배까지 올릴 것이라 공언했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대상과 협상을 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른바 '관세맨'을 자임한다.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려 한다. 한국이 예외가 되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색해지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추가 관세 정책 실행 시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152억~304억 달러(약 21조~42조 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간접 효과까지 감안하면 한국의 수출은 최대 448억 달러(약 62조 원)까지 감소할 것이란 잿빛 전망이다. 아예 한미 FTA를 미국 측에 유리하도록 개정하려 할 공산도 크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막대한 규모의 투자 계획을 실행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는 가뜩이나 누란의 위기에 놓인 터라 더욱 그렇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를 면밀히 복기해 대응 전략을 짜고 대미 투자 이행을 성실히 돕는 것이 미국 적자를 줄이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란 설득 논리를 정교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정된 한국 기업들의 지위가 일관성 있게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 정책을 한국의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외교 관계로는 최상의 수준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고 그것이 한국과 미국"이라며 "10~20%의 보편관세를 하게 되면 어느 나라나 똑같기 때문에 미국 기업과의 경쟁력은 떨어지는 것이고 어쨌든 큰 그것(영향)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정부 때와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피해와 국민 경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안일하고 두루뭉술하다. 물론 대통령이 전략을 모두 내보일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납득할만한 구체적 방향성은 보여줘야 믿고 따를 수 있다. 대통령의 '불변'이 그 어느 때보다 염려스럽다. 국민들의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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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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