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제고, 거버넌스 균형, 통찰력…3단계 과제 고려해야
최고 인재들이 참여한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조직개혁 논의마저 철학의 한계, 통찰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주어진 60일의 시간에 쫓기며 개혁 방향에 관해 국민을 설득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확신이 쉽지 않을 듯한 모습이다. 당초 대선 공약과 캠페인 발언을 손쉽게 추수(追隨)하면 되리라는 생각 또는 집권 초기에 있을 법한 과다확신 등으로 국정기획위원회 자체의 치열한 성찰 과정이 다소 충분치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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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주(왼쪽 세 번째)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출범 현판 제막식에서 참석자들과 제막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국정기획위원회 김용범 부위원장, 이 위원장, 진성준 부위원장, 방기선 부위원장. [뉴시스] |
정부조직개혁 논의와 관련한 목표 독립성(goal independence)과 거버넌스, 그리고 조직구성원의 역량(competence)에 관한 통찰력이 필요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1803년 Marbury v. Madison 판례에서 비롯된 개념인 목표 독립성은 정부조직이 어느 한 목표에만 기속(羈束)되지 않으며 목표에 있어서의 폭넓은 재량권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단순한 법률 해석기관에 머물지 않고 의회의 입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법률의 존재 자체를 부인(veto)하는 힘을 갖고 있는 미국 최고법원이 그 예다. 최대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상충될 수 있는 이원적 책무(dual mandate)를 부여받고 있어 양 목표 사이에서 행동하는 폭넓은 재량권을 보유한 미국 중앙은행 또한 그 예다. 이와 같은 목표 독립성을 중심으로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본다.
시나리오 1은 목표 독립성이 높고 거버넌스가 집권화(centralization, 대통령 등 중앙정치권력이 거버넌스 결정)된 모델이다. 전형적인 미국 모델이다.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변화의 파고가 높은 지금과 같은 대전환기에 효율성을 발휘하며 사회적, 경제적 성과 제고에 기여하는 모델로 볼 수 있다. 이 모델은 조직구성원의 높은 역량을 전제로 한다. 역량이 뒷받침되었을 때 대전환의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역량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러 의미가 있겠으나 케인스의 스승인 정치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에 취임하면서 제시한 이상적인 인재상인 냉철한 이성(cool head)과 따뜻한 마음(warm heart)을 떠올려 본다. 마셜이 말한 따뜻한 마음이란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 사회 복리(social welfare)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역량이 부족할 경우, 특히 마셜이 중시한 따뜻한 마음이 부족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나리오 2의 경우로 상정할 수 있다. 역량이 일부 부족할 경우 목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오류(bias)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하여 거버넌스의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모색해볼 수 있다. 역량 부족뿐 아니라 정치 거버넌스의 취약성 등을 감안한다면 전문화된 독립적 분권화(expertized independent decentralization)라는 균형을 추구하는 거버넌스 모색이 가능하다.
정부조직개혁에서 고려해야 할 목표 독립성, 거버넌스, 역량의 3요소 중 국정기획위원회는 목표 독립성을 떨어뜨리는 개혁에 몰두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량을 제고하는 데 최우선적 노력을 기울이고 역량 제고가 충분치 않을 경우 거버넌스 분권화라는 다음 단계 접근방법을 논의해 볼 수 있으며 목표 독립성을 낮추는 것은 최후의 방안으로 신중히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검찰 개혁, 금융감독 개혁, 재정정책 프레임워크 개혁 등 논의에서도 목표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데 초점이 가 있다. 개혁의 순서가 거꾸로인 것이다.
신정부 출범 초반에는 정부조직의 역량 제고에 중점을 두는 개혁이 급선무이자 1단계 과제라 하겠다. 1~2년 역량 제고에 힘쓴 다음에도 성과가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2단계 과제로 거버넌스의 분권화, 특히 전문화된 독립적 분권화 개혁 방안을 강구해볼 수 있다. 다수결주의자 독단(majoritarian dogma)에도 엘리트주의자 기술주의(elitist technocracy)에도 빠지지 않는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에 부합하는 균형 있는 거버넌스다.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처음부터 바로 목표 독립성을 뒤흔드는 개혁은 정부조직의 축적된 지적 자산과 경험(institutional memory)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일거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과다확신과 집단사고 오류에 사로잡혀 성급하게 사법, 금융, 재정 등 개혁 실행에 들어간다면 그 부메랑은 국가 전체 성과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시나리오 3은 필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경우로서 정부조직개혁에도 타산지석의 예가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은행에서 은행감독원을 전격 분리함으로써 목표 독립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개혁이 시행되었다. 당시 취약한 정치 거버넌스가 위기 초래의 근인(根因)이었지만 외환위기 이전 중앙은행의 권한이 과다해서 문제였다고 간주되었다. 분리된 은행감독원은 현재의 금융감독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감독권 없는 한은이 걸어온 길은 지난(至難)했다고 회고할 수 있다. 한은사(寺)라는 다소 시사적인 표현은 이때부터 등장했다. 금리정책과 신용규제정책의 엇박자, 금융 현장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정책 수립의 애로 등이 노정되었다. 그러던 중 10여년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건전성정책(macro-prudential policy)이 도입되며 이른바 정책의 여명지대(zone of twilight)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그 돌파구가 현실에서 실효성 있게 정착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이를 실감해 오는 가운데 다시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여전히 그 지난한 노력은 진행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조직개혁의 최적 모델을 단시간 내에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는 기대에 머물 수 있고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과 제고를 위한 사회적 지혜(combined wits of society)를 모으는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 독립성을 오히려 높여야 할 긴요함이 적지 않은 우리 시대의 여건과 대전환기의 대내외 정치 및 정책 환경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향후의 정부조직개혁 논의 과정에서는 성급하게 목표 독립성을 낮추려는 편향에서 벗어나 실현 가능성과 추진 시간의 순서에 입각하여 단기 과제와 중기 과제를 나누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조직 구성원의 역량 제고가 최우선적인 개혁 과제다. 1단계 과제는 바로 그 역량 제고 방안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다음 2단계 과제는 거버넌스의 균형, 특히 전문화된 독립적 분권화 거버넌스 설계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며 목표 독립성을 바꾸려는 개편은 3단계 과제로 다루는 통찰력이 요청된다. 이 최종 단계에서도 정부조직의 목표 독립성에 있어서 지적 자산과 경험의 축적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조직개혁 논의가 시야를 넓히며 균형 있는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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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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