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없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관한 관심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있었고,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은 없었다. 일 욕심이 많은 이재명 정부는 17년 만에 다시 그 문제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기관마다 생각이 크게 달라서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체계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다. 감독을 받는 금융기관보다 감독하는 상급기관이 훨씬 더 심각하고 치열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그 뿌리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은행(훗날 한국은행)과 조선식산은행(훗날 한국산업은행)이 은행 검사업무를 두고 아주 오랫동안 충돌했다.
은행업에서만 감독 권한에 충돌이 생긴 것은 조선을 급하게 점령하려다 보니 생긴 일본 법률 체계의 모순 때문이다. 1909년 3월 29일 일본 제국의회는 조선은행법(법률 제48호)을 제정했다. 그 법에 따라 조선은행이 설립되고, 대장상이 조선은행에게 검사업무를 위임했다.
그런데 조선을 지배하던 또 다른 지휘체제가 있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 강점이 시작되던 날 발표된 메이지(明治) 천황의 칙령(제319호)은 "조선 안에서는 조선총독이 입법, 사법, 행정을 아우르는 권한을 가진다"고 했다. 그 칙령에 따라 은행의 설립, 합병, 명령, 징계 권한은 조선총독이 가졌다. 1918년 6월 7일 조선총독은 조선식산은행령(총독명령 제7호)을 통해 조선식산은행에 검사업무를 맡겼다.
그럼으로써 은행감독권이 일본 대장성과 조선총독부로 쪼개졌다. 그것은 식민지 통치의 주도권을 건 정·관계와 군부 세력의 충돌이었다.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의 직원들은 각기 대장성과 조선총독부의 대리인이 되어서 으르렁거렸다. 한성은행을 비롯한 민족계 은행들은 양쪽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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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계 은행인 한성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조선식산은행에서 조선은행으로 이양한다는 신문 기사. 감독권 일원화가 금융분야의 오랜 숙제이며, 조선총독부의 중재로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이 타협했다는 것이 특이하다(1940년 4월 2일 자 조선일보 기사). |
해방이 되었다. 1948년 제정된 정부조직법(법률 제1호)에 따라 은행 감독은 재무부 소관이 되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은행법(법률 제138호)과 은행법(139호)이 제정되었다. 그 법들을 통해 한국은행(금융통화위원회)이 은행 감독 업무를 맡게 되었다. 재무부는 전전긍긍하면서 은행법 시행일(은행감독권 이관일)을 질질 끌다가 1953년 8월 마지못해 은행감독권을 한국은행에 넘겼다.
하지만 재무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권토중래를 도모하며 1955년 이기붕 국회부의장에게 한은법 개정을 요구했다. 겨우 2년 만에 감독권을 빼앗기게 생긴 한국은행은 발끈하면서 여론전을 펼쳤다. 그때부터 한은법 개정과 은행감독권 회수 문제는 재무장관이나 총재가 바뀌면 의례적으로 한 번씩 튀어나오는 문제가 되었다. 참고로 증권이나 보험 등 여타 금융업권에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오직 한국의 은행업에서만 충돌이 반복된 것은, 다른 법률들은 일본법을 수입했지만 한국은행법과 은행법은 미국법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양 기관의 충돌은 1997년 말 통합 금융감독기구 즉 금융감독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상과 같은 금융감독체계를 둘러싼 기관 간 다툼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감독(supervision)의 목적과 범위와 같은 철학적 논의를 생략한 채 검사(examination)와 같은 작은 문제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해 왔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의외로 갈등이 적었다.
한국은행이 은행감독권을 갖고 있었을 때 은행의 설립이나 합병 등 진짜 중요한 일은 정부가 결정했다. 은행 민영화(1954년), 제일은행(1958년), 서울은행(1959년), 한일은행(1960년) 등의 설립·증자·합병, 은행 국유화(1961년), 지방은행의 설립, 제2차 민영화(1981~1982년) 등이 그 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재무부의 의도대로 통과시키는 데 큰 이견이 없었다. 한국은행 실무자들은 상업은행의 업무 현장을 찾아가서 서류를 들척이며 꾸짖는 것이 은행 감독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 정부는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하고, 금융정책 업무를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금융기관의 신설과 합병, 청산 등은 금융정책인가 금융감독인가? 2003년 외환은행을 미국계 펀드 론스타에 매각하는 비밀회의에는 금융위원회 이외에 재정경제부와 청와대 직원이 참가했지만, 금융감독원은 빠졌다.
금융감독원은 작은 일에 매달린다. 1997년 말 허겁지겁 다듬어진 금융위 설치법, 한은법, 예금자보호법 등에 '공동검사'라는 용어가 추가되었다. 공동검사란, 한국은행 또는 예금보험공사 직원이 금융감독원 직원과 함께 금융기관을 방문하여 영업 실태를 파악하는 활동을 말한다. 금융감독 중에서는 상당히 말단지엽적인 문제인데, 금융감독원은 공동검사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검사는 허구적 개념이다. 어차피 감독권이 없는 한은과 예보 직원이 금감원 직원과 함께 움직인들 '공동검사'는 될 수 없다. 외교관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간들 공동으로 외교 업무를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한은과 예보가 금융기관을 탐문하는 것은 검사업무가 아니다. 대출과 보험료 징수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 업무는 상업은행이 대출 기업체를 탐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은 통합감독기구와 별도로 일본은행이 상업은행과 얼마든지 접촉한다. 이를 고사(考查)라고 하는데, 이는 감독기구가 아닌 대출자로서 행사하는 권한이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업무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 금감원, 한은, 예보 직원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넌센스다. 어떤 음식점의 영업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위생검사를 담당하는 구청과 소방시설을 점검하는 소방서가 반드시 함께 움직이지는 않는다. 목적이 다르면, 같이 출장갈 이유가 없다.
'공동검사'의 횟수와 방문기관 선정을 두고 유관기관끼리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참으로 민망하고 좀스럽다. 금융기관을 찾아가서 닦달하는 것이 은행 감독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일제강점기 조선인 은행원들의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공동검사'라는 신기루는 관련 법에서 삭제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금융감독원과 반대다. 거대 담론에 더 관심이 있다. 최근 국정기획위원회를 향해 거시건전성 정책을 위한 수단을 보강해달라고 건의했다. 사실 주요국에서는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심에 중앙은행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현행 한은법(제28조)에는 은행 대출 담보의 종류, 대출과 투자의 최고한도 또는 분야별 최고한도 등을 금통위가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 담보인정비율(LTV)이니, 총부채상환비율(DTI)이니 하는 거시건전성 감독 수단을 말한다. 그러니까 미시건전성 감독 기능을 정부에 귀속시키면서도 거시건전성 정책의 일부는 여전히 한은에 남겨둔 것이다. 한은은 그것을 제때 활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LTV와 DTI 규제는 투기지역의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서 2005년 건설교통부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러다가 2007년 금융위원회가 '은행업감독규정'에 그 내용을 담음으로써 금융감독 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한국은행은 LTV와 DTI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조사국은 LTV, DTI 규제에 적극적이었지만, 통화정책국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시장기능을 중시하여야 한다"는 한은법(제4조)을 내세우며 금리 조절에만 안주했다. 금융감독이 아닌 통화신용정책 차원에서 LTV, DTI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한은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한은은 국회와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기에 앞서 옛날 선배들의 판단과 소극적인 조직문화를 되돌아봐야 한다.
참고로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상업은행들이 예금 대신 RP(환매조건부 채권매매)를 통해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통화정책을 무력하게 했다. 그때 미 연준은 RP 거래도 예금이라고 선언하고 지급준비의무를 부여했다. 국채를 담보로 한 1일물 RP만 예외로 인정했다. 그 바람에 미국의 RP 거래는 지금도 1일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유럽은 일주일 만기 거래가 주류를 이룬다). 그런 전통은 미 연준이 문제를 초기에 파악하고 규제 수단을 주저하지 않고 활용한 결과다. 한국은행은 그런 점에서 한참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거시건전성 정책 중에는 한은법 등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최저자기자본 비율이나 경기대응 완충자본(CCyB)은 금융기관의 배당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서 현행법상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의 몫이 틀림없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는 통화정책과 감독정책의 중간 지점이다. 따라서 관련 법의 개정과 함께 유관 기관 간 의견 조율 장치도 고민해야 한다.
결론은 이렇다. 금융기관 감독의 영역은 무척 넓은데, 한낱 금융기관 접근권을 두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은 유치하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좀 더 넓은 눈으로 살피는 것이 좋다.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 공동검사에 관해서 관련 법률을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거시건전성 정책에 관한 한은의 입지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은의 자세도 다듬어야 한다. 필요한 법률의 개정과 더불어 정부와 한은, 예보 등 유관 기관 간 의견 조율 과정(가칭 F5 회의)을 내실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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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
● 차현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앙은행과 금융제도 전문가다. 38년에 걸친 한국은행 근무 기간 중 통화정책과 경제조사, 금융제도 등을 깊이 연구했으며, 2년의 예금보험공사 이사 경험을 통해 금융안정과 예금자보호를 다루었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Wharton School) MBA △ 1985년 한국은행 입행 △ 2003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 2005년 미주개발은행(IDB) 컨설턴트 △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커뮤니케이션국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 역임 △ 2023년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 △ 2025년 가을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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