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본주의 체제에는 큰 모순이 있다. 인본주의를 추구하면서 인간을 몰랐던 것처럼 자본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자본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뵘바베르크, 영국의 하이에크, 미국의 피셔, 베블린, 사무엘슨이 생각하는 자본의 정의와 속성은 전부 달랐다.
그러다 보니 영국의 좌파 경제학자인 조안 로빈슨은 "자본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진짜 자본은 없도다"라고 탄식했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조롱이다. 우리나라의 감사(監事)가 딱 그렇다. 감사라는 자리는 있지만, 도대체 감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 상법은 회사설립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감사의 선임을 요구한다. 하지만 감사의 역할은 정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정부 산하 공기업들을 일괄적으로 규율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감사의 선임 절차와 감사위원회의 운영 방식을 규정하지만, 정작 감사의 업무는 정의하지 않는다. 한국은행법(제45조)에서는 "감사(監事)는 감사(監査)한다(The auditor shall audit)"는 식으로 설명한다. "요리사는 요리한다", "운전사는 운전한다"는 식의 공허한 순환논리다. 용어의 정의를 상식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감사원이 정책감사나 수사 등을 명목으로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들을 괴롭혀서 의욕을 꺾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감사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정책감사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기업 임직원들은 솔직히 그런 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들은 엄청나게 환호한다. 그동안 정책감사라는 이름으로 감사원이 공무원과 공기업을 압박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2003년에 도입된 정책감사가 22년 만에 폐지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틀렸다. 필자의 계산으로는 정책감사가 폐지되는 것은 49년 만의 일이다. 그러니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은 두 세대 이상 누적되었던 '적폐'를 정리하자는 호소다.
오늘날 감사원의 전신은 심계원(審計院)이다. 심계(審計)라는 말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한나라 시대부터 써왔던 말이다. 심사하고 계산하는 일 즉, 오늘날의 회계감사에 속한다. 그래서 중국에는 심계서(審計署), 대만에는 심계부(審計部)가 있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할 때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심계원을 설치하는 한편, 그 업무를 회계감사로 국한했다. 일본 헌법(제90조)에 따른 회계검사원과 똑같았다. 1960년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도 심계원의 명칭과 업무 범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3공화국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 헌법(제92조)을 통해 심계원을 감사원으로 바꾸고, 그 기능에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추가했다. 그러니까 감사는 심계보다 훨씬 큰 개념이다. 거기부터 문제가 생겼다.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감찰'(직무감찰)은 공무원의 비리와 품위손상, 독직을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공무원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직무감찰을 행정안전부가 하든, 감사원이 하든 문제는 없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직무에 관한 감찰'(정책감사)은 다르다.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국회의 국정조사와 국정감사를 제도화했는데, 대통령 직속 기구가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도전이요, 업무의 중복이요, 세금 낭비다. 당시 헌법에 잠재된 논리적 모순이다!
적어도 1972년의 유신헌법은 그 모순을 해결했다. 국회의 국정감사 기능을 폐지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감사원의 위상과 기능이 훨씬 중요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의 국정감사가 사라진 뒤 공직사회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감사원을 한껏 추켜세웠다.
박정희 대통령은 광복군 출신의 독립투사 이석제 씨를 감사원장에 앉혔다. 청렴과 결기의 상징이었던 이석제 감사원장은 당대의 권력자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도 충돌을 불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이석제 감사원장의 입에서 1976년 "공직사회의 부조리 척결을 위해 정책감사에 주력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정책감사'라는 말의 시작이었다. 이후 '정책감사'와 '서정쇄신(庶政刷新)'은 유신 시대의 공직자들이 머리에 담아두어야 하는 화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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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년 1월 8일자 경향신문. 정책감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
1981년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국회의 국정감사 기능은 여전히 중단된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 역시 감사원의 위상과 기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공직사회를 휘어잡는 데는 직무감찰과 정책감찰이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제3, 4공화국에서는 주로 장군 출신에게 감사원을 맡겼으나 전두환 대통령은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이한기 서울대 교수를 발탁했다. 이어서 검사 출신의 정희택 변호사를 감사원장에 임명했다(이 두 사람을 계기로 법조계 인사가 감사원장에 임명되는 관행이 생겼다). 전두환 대통령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감사원장에 앉힌 사람은 12·12 쿠데타를 함께 준비했던 군 선배 황영시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한기, 정희택, 황영시 감사원장은 한결같이 정책감사를 강조했다. '국회의 국정감사를 대신해서 감사원이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정치적 제스처였다. 매년 초 업무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감사원의 정책감사 방침을 적극적으로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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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년 6월 2일 동아일보. 이한기 감사원장이 정책감사 방향을 강조했다. |
그러나 정책감사라는 말이 국민의 뇌리에 깊게 박힌 시점은 이회창 감사원장 시절이었다. 영락없는 차기 대법원장감으로 손꼽히던 사람이 느닷없이 감사원장을 맡게 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간곡한 설득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감사원장 공관에 입주하는 것을 사양하고 권위주의 혁파에 주력했다(당시 크게 인기를 얻었던 대만 TV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 이미지에 딱 맞았지만, 그 별명은 2년 뒤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이해찬 민주당 고문이 눈썹이 희다는 것을 착안해서 조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그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회창 감사원장은 성역 없는 감사를 지휘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물론이고, 국방부의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사업까지 뒤지면서 노태우 정부의 급소들을 파헤쳤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감사원을 견제할 정도였다. 그때 우리나라 국민은 이회창식 정책감사를 열렬히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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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11월 23일자 한겨레 신문 1면 기사. 이회창 감사원장의 정책감사 방향을 대서특필했다. |
하지만,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정무적 판단과 직업공무원의 전문성에 기초하여 적법하게 내린 정책 결정을 대통령 직속기구가 다시 한번 파헤치는 것은 업무 낭비다. 감사원이 행정부 안에서 옥상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1987년 개헌을 통해 국회의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가 복원되었으므로 국회의 기능과도 충돌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감사 폐지' 주문은 만시지탄에 가깝다. 차제에 중국, 일본의 헌법과 관련법을 참고해서 대한민국헌법과 감사원법에서도 '행정기관에 대한 감찰'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세금이 잘 쓰이고, 잘 관리되는 지를 조사하는 것이 최우선 사명인 기관이 타 부처의 정책영역을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온 국민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치러졌던 이회창식 정책감사는 일회성으로 그쳤어야 했다. 그 이후의 정책감사는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을 조장하는 면이 컸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감사 폐지는 그의 첫 업적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책감사 폐지가 이재명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방탄조끼를 입힌다고 의심하지만, 그렇지 않다. 감사원이라는 중요한 국가기관이 자기 위치를 또렷하고 업무 영역을 확실하게 지킬 때 공직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나라가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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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
● 차현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앙은행과 금융제도 전문가다. 38년에 걸친 한국은행 근무 기간 중 통화정책과 경제조사, 금융제도 등을 깊이 연구했으며, 2년의 예금보험공사 이사 경험을 통해 금융안정과 예금자보호를 다루었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Wharton School) MBA △ 1985년 한국은행 입행 △ 2003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 2005년 미주개발은행(IDB) 컨설턴트 △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커뮤니케이션국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 역임 △ 2023년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 △ 2025년 가을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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