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제주 4·3은 풍토병이 아니우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6-29 21:12:15
제주 4·3 그린 장편 '제주도우다' 펴낸 소설가 현기영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 가로질러 수난·항쟁 담아
참혹한 비극 넘어 젊은이들 열광과 열정, 사랑도 기록
"단순한 희생자 통계 넘어 공식 역사로 항쟁 기록해야"
원로 소설가 현기영(82)이 제주 4·3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긴 호흡의 장편 '제주도우다'(전3권·창비)를 펴냈다. 4년에 걸쳐 200자원고지 3500장에 담아낸 노작이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공간 4·3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제주인들의 수난뿐 아니라 항쟁에도 방점을 찍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단편 '순이 삼촌'(1978)으로 처음 제주 4·3을 햇빛 아래 끌어낸 이래 이를 본격 장편으로 펴낸 것은 45년 만이다. 등단 이래 추구해온 작업의 완결편인 셈이다. 그가 장편 출간을 계기로 29일 기자들과 만났다.

▲단편 '순이 삼촌'으로 제주 4·3의 비극을 처음 햇빛 아래 드러낸 지 45년 만에 장편으로 '필생의 역작'을 완성한 소설가 현기영.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작품 집필을 결심한 계기는?

"나는 순수한 문학지망생이었는데 문단에 데뷔하고 나니까 고향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걸 얘기하면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지만 4·3 영령들이 나를 선택했다는 생각으로 극복했다. 군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감옥살이도 겪은 뒤 고향의 부채를 갚았다는 심정이었는데, 두 번이나 고문당하는 악몽을 꾸었다. 고문의 주체는 4·3영령들이었다. 네가 뭘 했다고 4·3에서 벗어나려 하느냐고 꾸짖었다. 운명적으로 일생 4·3을 붙들게 된 맥락이다. 그동안 중단편들을 썼으니 장편을 제대로 써서 3만 원혼들에게 공물(貢物)로 바치고 싶었다."

-이전에 4·3을 다룬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가

"이전 작품들은 희생담론, 수난에 국한됐다고 할까. 4·3의 수난은 항쟁과 표리관계가 있다. 이전과 달리 항쟁 부분도 수난과 함께 다루었다. 너무 참혹한 이야기는 완화시켰다. 해방공간 3년 동안 제주 젊은이들의 피끓는 열정과 열광을 탐구하고 그들의 로맨스도 넣었다. 소설의 전략이 아니라, 실제 젊은이들의 삶이 그랬다. 이 작품에는 참혹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쁨과 낭만도 있다."

-집필 과정에서 가장 고민이 깊었던 순간은?

"내가 가장 큰 애정을 주었던 두 쌍의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이 1948년 대살육 국면에서 죽었다. 3만여 명이 죽었는데 그들이라고 살릴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 걸 그릴 때 가슴이 아팠고, 각양각색의 고문들을 그대로 묘사하자니 멀미가 나서 실제보다 가볍게 완화시켰다."

-이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게 만든 추동력은?

"진혼이 제대로 안 돼서 저승에 못 가고 허공을 떠돌고 있는 3만의 원혼들이 나를 추동시켰다. 4·3을 내 나름대로 총체적으로 다루려고 두꺼운 분량의 소설을 썼지만, 이것 또한 4·3의 일부이고 다른 관점도 있을 것이다. 캄캄한 방 속 압도적인 크기의 코끼리와 같다. 어둠 속에서 코끼리를 더듬는 거다. 1948년 겨울에 군경 토벌대가 한라산을 에워싸고 토벌을 벌일 때 많은 양민들이 캄캄한 동굴에 숨었다. 빛도 안 들어오는 동굴 속에서 더듬으면서 출구를 향해 나가는 듯한 암중모색의 4년이었다."


이 소설은 4·3에서 살아남은 안창세의 손녀 부부가 할아버지의 구술을 받아 다큐 영상을 완성하는 과정을 얼개로 삼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이 정점에 이르던 1943년부터 4·3사건이 발생하고 토벌이 이루어진 1948년 겨울까지를 주요 시간대로 삼아 11살 소년 안창세가 16살이 되는 이 기간을 따라간다. 할아버지 안창세는 손녀에게 말한다.

영미야, 너 방 안의 코끼리란 말 알지? 우리가 자는 어둡고 좁은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 너무 크고 너무 어두워서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는 것. 그게 4·3이야. 우리를 깔아뭉개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무게와 거대한 부피. 정말 무섭다!

-지금 독자들이 제주 4·3을 포함한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이유는?

"이번 내 소설을 역사소설이라 말하는데 나는 현대소설을 썼다. 역사소설이 아니다. 4·3은 아직도 대한민국 공식 역사에 편입되지 못한 당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주 4·3을 통해서 해방공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당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다. 역사책에는 4·3항쟁 때 3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소설은 통계숫자를 떠나서 죽은 3만 명 개개인을 다시 살려낸다. 그들에게 피와 살과 뼈를 부여해 그 사건의 진상을 드러낸다. 역사와 소설의 차이다."

-'순이 삼촌' 오페라는 순항하고 있는가

"세종문화회관에서도 공연됐고 제주도에서도 물론 여러번 무대에 올랐다. 부산에서도 8월에 올라갈 예정이고, 일본으로 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4·3은 제주에 국한된 풍토병이 아니다. 가해자는 육지 중앙에서 왔는데 어떻게 제주에 국한되는가. 이 사건은 전국이 알아야 된다는 의미에서 전국화가 필요하고, 미국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진출하는 세계화가 돼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상 규명이 돼서 대한민국 공식 역사에 제대로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현기영은 "내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닌 현대소설"이라며 "4·3은 아직 공식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당대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태영호)이 '제주 4·3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주장을 펴서 논란을 빚었다.

"그야말로 역사 왜곡이다. 우익들조차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 격이라고 표현했다. 4·3 직전 3명이 고문치사를 당했고, 1년 전에는 평화 시위 중 6명이 죽었다. 단독정부 수립 반대 명분이 합쳐진 것일 뿐, 앉아서 죽느니 서서 싸우다 죽겠다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조총련조차 4·3을 폄하했는데 무슨 김일성 지령 운운인가. 나중에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4·3이 조명되니까 북에서 날조해 자신들이 시켰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지령설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현기영은 "4·3은 젊은이들이 주도한 사건"이라면서 "지도부도 모두 20대 젊은이들이었고 30대 이상은 온건파였다"고 했다. 그는 "당시 새 시대 새 국가를 열망했던 젊은이들이 열광적인 떼춤과 떼창 속에 사랑하고 싸웠다"면서 "그들의 수많은 가족 친척, 무관한 양민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작가 현기영이 방점을 찍는 대목은 '남도 북도 아닌 제주도'의 정체성이다. 해방공간에서 새로 만들 나라를 두고 나누는 인물들의 대화.

우리는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다'라는 말이 난 좋아. 작년에 삼팔선이 그어진 직후에 일본에서 귀향민이 들어올 때 맥아더 사령부가 물었주, 남과 북 중에 어느 쪽으로 가겠느냐고. 그 때 우리 제주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다! / 맞수다! 우리 제주도는 북조선도 아니고 남조선도 아니고 거시기, 바로 우리 자신입주 장발이 삼춘. 이 과도기를 이용해서 우리 제주도가 육지부로부터 독립해사 되는 거 아니우꽈?'

▲현기영은 "그 당시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이고 인간은 또 무엇인지를 이 소설에서 탐구하고 싶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현기영은 애초에 이번 소설 제목을 '또 하나의 나라'라고 짓고 싶었다고 했다. 제주도가 역사적으로 외국 식민지와 비슷한 처지였다는 생각에서다. 또다른 제목 후보로는 70년 전 그해 겨울 유난히 폭설이 많이 내려서 '그해 겨울엔 참 눈이 많이 내렸주'라고 지을 뻔도 했지만, 너무 길어 망설이던 터에 편집부에서 '제주도우다'를 제안해 무릎을 쳤다고 했다.

'필생의 역작'이라는 수사가 마지막을 암시하지만, 이 작품을 탈고한 지 4개월 지난 시점에서 벌써 다른 작품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는 "도시의 회색 공간에서 살다 보니 인간이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서 "나무에 대한 소설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팔순의 노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

독자여, 그대가 이 소설을 읽기로 작심하였다면 그 길은 작가와 동행해 너무도 낯선 삶과 죽음의 비경을 찾아가는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그 먼 길을 느리게 걸어갈 텐데, 독자도 그 느린 행보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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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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