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보좌진들 대거 실직…21대 개원 앞두고 '구직 전쟁'

김광호 / 2020-05-19 15:38:08
낙선 의원실 소속 보좌진, 대거 구직시장 내몰려
당선 의원실도 '캠프 인력' 진출로 여유 없긴 마찬가지

21대 국회가 개원을 열흘 가량 앞둔 가운데 20대 국회 출신 보좌진들의 '구직 전쟁'이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회 미화 관계자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한 의원실에서 서적 등 짐을 빼고 있다. [뉴시스]


지난 4·15총선에서 낙선한 의원실 소속 보좌진은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가 되게 생겼다. 특히 미래통합당의 경우 총선 참패로 의석수가 19석 감소하면서 산술적으로 150명이 넘는 보좌진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2명), 5급 비서관(2명), 6·7·8·9급 비서(각 1명) 등 총 8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당선에 성공한 의원실의 보좌진도 고용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채용 여부는 오로지 의원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구직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보좌진은 온갖 인맥을 동원해 당선자들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반면 일부 보좌진은 구직 활동을 아예 포기하고, 실업 급여 등을 받으며 후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선수 스카우트, 연봉 협상 등을 하는 프로스포츠계의 스토브리그처럼 여의도의 '스토브리그'도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다.

▲한 의원실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원실을 정리하면서 쌓아놓은 서적들. [뉴시스]


"미래통합당보단 상황이 낫지만 여기도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4·15총선은 예상대로 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공룡 여당'의 탄생을 알렸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 17명 가운데 소수정당 출신인 용혜인, 조정훈 당선인과 부동산 의혹으로 제명된 양정숙 당선인 등 3명을 제외한 14명의 비례대표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 의석은 지역구 163석에 비례대표 14석을 합쳐 177석이 됐으며, 500여 명의 보좌진을 새로 충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증된 보좌진 수는 한정돼 있다"며 "보좌진을 영입하려는 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여러 초선 의원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민주당 한 보좌관은 "모시는 의원들이 공천에서 떨어졌으나 다행히 러브콜을 받았다. 같은 방 식구 일부를 데리고 가고 싶지만 당선인이 선거 캠프에서 뛴 개국공신 일부를 국회에 데리고 오고 있다"며 "손발을 맞췄던 보좌진 일부를 채용해주는 당선인과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보좌진에게도 현실이 모두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늘어난 자리 만큼 당선인의 선거 캠프에서 뛴 '개국공신'이 그대로 국회에 입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좌진 8명 중 7명을 선거 캠프에서 채우고 나머지 1명만 국회 경험이 있는 보좌진을 채용하는 일이 많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당선인들이 행정비서 등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아무나 고용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보좌관 자리는 구직활동에 다소 어려움이 덜하지만 직급이 낮은 보좌진들의 구직활동은 매우 치열하다"고 전했다. 여기에 통합당 보좌진까지 직급을 낮춰서라도 민주당에 노크하고 있어, 민주당 보좌진의 구직활동도 다소 힘들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선거 후 들어오는 민원 중 '자신이 아는 유능한 인사를 써달라'는 보좌진 인사청탁 민원이 제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21대 초선 당선자들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1대 초선 당선자 대상 원내대표 후보자 합동 토론회에 참석해 후보자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4급 보좌관이 7급 비서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이들은 야당 출신 보좌진들에 비해선 그나마 사정이 낫다. 특히 총선에서 참패한 통합당 보좌진은 심각한 구직난을 겪고 있다.

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참패하면서 지역구 84곳에서만 승리했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19석을 확보했다. 이에 기존 통합당 의원 77명이 방을 빼게 되면서 600여 명이 넘는 보좌진이 구직시장에 내몰렸다.

더욱이 박근혜·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까지 구직활동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직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예전만 해도 초선 의원들은 국회 근무 경험이 많은 보좌관을 찾느라 동분서주했으나, 보좌진 공급이 대거 늘어난 요즘은 당선인들이 입맛에 맞는 보좌진을 골라 뽑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낙선한 의원들 중 일부는 당선인과 면담을 통해 "자신이 데리고 있는 보좌진 1명만 써달라"고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낙선한 한 통합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지금은 의원 '빽'은 이미 안통한지 오래다. 당선인과 교감하는 인사가 있다면 무조건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당장은 오라는 데가 없어 일단 (국회를) 나가서 다른 일을 알아볼 예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로 인해 보좌진 취업시장에서도 '수저 계급'이 존재한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금수저'는 의원의 친인척이거나 선거를 도와준 사람들의 친인척 보좌진, 아니면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의 보좌진이다.

이에 반해 '흙수저'인 보좌진들은 이력서를 아무리 내도 전화는커녕 면접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능력이 있어도 '줄'과 '빽'이 없어 관심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미래한국당 초선 당선인은 "선거가 끝난 후 낙선한 통합당 의원님들로부터 '우리 보좌관 일 잘 한다'는 전화를 여러통 받았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당인 민주당으로 이적을 결심하는 보좌진들도 생긴다. 최근 4급 보좌관 1명을 뽑는 민주당 의원실 채용에는 통합당 보좌진 10명 정도가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민주당이 타당 출신 보좌진에 '철벽'을 치고 있어 이마저도 어렵다. 민주당은 총선 승리 이후인 지난달 24일 윤호중 사무총장 명의로 각 의원실에 '제21대 국회 보좌진 구성 안내' 공문을 보내 '타당 출신 보좌진 임용 시 정밀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해당 행위 전력과 관련해 '이번 총선에서 민생당 일부 보좌진은 우리 당 후보 비방 및 네거티브로 해당 행위에 준하는 행위를 했다', '통합당 보좌진의 경우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국회에서 우리 당 보좌진과 물리적 충돌이 있었음을 양지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사실상 야당 출신 보좌진 채용을 금지한 것이다.

결국 보좌진 중 일부는 국회를 떠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들이 우선적으로 눈을 돌리는 곳은 기업 대관(對官) 부분이다. 정치나 정부를 대하는 자리인 대관 인력들 중에는 오랜 기간 국회에서 일했던 보좌진 출신들이 다수 있다.

낙선한 통합당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한숨을 내쉬면서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어디라도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가야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데 거대 여당의 탄생으로 여권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야권의 중요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기업들로부터 야당 출신 보좌진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원칙은 의원들에게도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당선자들은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인사들을 뽑기 위해 '궁합'을 보는 등 보좌진 구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인력시장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으면 공급자들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낙선한 의원은 물론 보좌진들에게도 이번 봄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인 셈이다.

K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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