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정재 그렇게 염라가 되었다

홍종선 / 2018-07-30 15:37:48
26년차 이정재, ‘신과 함께-인과 연’ 조연으로 출연해 주연 연기
▲ 영화 '신과 함께'에서 염라대왕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정재는 26년째 배우로 살고 있다. 이른 데뷔 탓에 나이보다 한참 더 고참인데, 경력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영화 ‘신과 함께’ 염라대왕 연기를 통해 확인시키고 있다. 해외대작 ‘반지의 제왕’ 못잖은 신화적 분위기를 작품에 부여하고 염라대왕이 향후 한국적 판타지영화에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아도 좋겠다 싶을 만큼 강렬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점은 ‘신과 함께’의 주연이 아니라 특별출연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27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실 있는 26년차 배우의 연기 내공이 가능케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정재 배우의 설명을 듣고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니 3분의 1쯤 맞았다고 하는 게 적당할 정도로 배우 이정재의 염라 연기 뒤에는 예상 이상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정재는 어떻게 염라대왕이 되었나, 더 정확히는 이정재는 어떻게 조연으로 출연하여 주연만큼 영화에 기여하고 주연 이상 사랑받는 염라대왕이 되었나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사랑 받고 있나요? 사랑 받으면 좋겠어요, 정말 관객 여러분께 사랑 받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과정과 결과를 다 예상하지 못 한하지 않느냐며 이정재의 염라대왕 특별출연만큼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해진 결과는 드물 것 같다고, 관객들의 이러한 큰 관심과 사랑을 짐작이나 했는지 묻자 대번에 나온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답.

“특별출연이라는 말은 제가 정한 게 아니라 제작진의 고심에서 나온 말이에요. 촬영 끝나고 이정재 이름을 (엔드 크레딧에서) 어디다 놓느냐, 고민이 많았나 봐요. 그러다 특별출연으로 한 모양인데 사실은 7, 8번째 배역의 조연이죠. 저를 조금 더 좋게 만들어 주고 싶은 김용화 감독과 제작진의 마음이 아닌가 싶어요.”


▲ 염라대왕의 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온 배우 이정재.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내면연기의 준비와 실행

“(7, 8번째 조연이라고 해도) 염라 역시 1000년을 기다려온 인물인데, 그 나름의 깊은 감정이 있는데 너무 많이 표현할 수도 없고 너무 안 보여 줄 수도 없어 그게 제일 고민이 많았어요. 다른 배우들 연기한 거 꼼꼼히 챙겨 보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김용화 감독과 얘기 많이 했습니다.”

이정재는 조연이지만 주연만큼 준비했다. 출연 분량으로만 보면 일곱, 여덟 번째 조연이지만 전체 스토리와 분위기에서 염라에게 맡겨진 역할을 정확히 알았다. 그렇다고 주연만큼 표현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인물과 감정을 드러내면 극의 균형을 흩트린다. 조연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표현을 자제할 수도 없었다. 염라라는 인물의 1000년에 걸친 이야기가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돼야 영화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염라의 이야기를 표현할 장면을 양적으로 충분히 부여 받지 못 한 상황에서 질적으로는 제대로 관객에게 염라의 감정을 전해야 하는 ‘쉽지 않은’ 처지였다.

“출연 분량이 적으면 유리한 점도 있지만 불리한 점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본인의 감정을 보여 줄 수 있는 신(scene)이 적기 때문에 내 컷트(cut)에서 다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이야기 전체, 1·2편 전체를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속속들이 표현한 다른 분들의 연기 톤을 다 체크해야 하고, 염라의 톤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할지 수위를 정해야 하니까 흐름을 체크해 가며 대본을 다 봐야 했지요. 나름은 그래도 (주연으로 출연한) 다른 영화만큼 고민도 많이 하고, 제가 출연했던 다른 영화보다 적게 출연한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흔히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는 말로, 그 뛰어난 천재 역시 노력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이정재의 고심을 전달받을수록 배우인 그는 아니었는데 관객인 나는 ‘신과 함께’ 속 염라대왕의 탄생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봤다.

“염라는 강림의 변화를 기다려 줘야 하는 인물이에요. 이 인물이 외로울 수 있고 간절함도 있었을 거예요. 천년이라는 게 사실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잖아요. 이런 걸 베이스(기본)에 항상 가지고 다른 상황을 설명하는 연기를 했어요, 그게 놓치지 말고 가져가야 하는 중요 포인트라는 게 감독님과 얘기한 부분의 주요 대목입니다.”

비주얼 비하인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인과 연’ 편에 이르기까지 이정재는 시각적으로나 발성으로나 연기 톤으로나 흠잡을 데 없는 염라였다. 어릴 적 여러 설화 속에서 보고 ‘전설의 고향’ 등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염라의 최고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염라대왕에 신화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성과를 거뒀다.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각자의 상상으로 존재하는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것에는 적잖은 부담감이 따를 터. 이정재를 만난 ‘신과 함께’ 속 염라의 비주얼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제작진께서 12~13가지를 준비해 오셨어요. 저를 대입해 다양한 버전의 염라를 준비해 오신 걸 보여 주시면서 이 중 4가지를 시도하겠다고 하셨고요. 하루 4~5시간씩 이틀에 걸쳐서 4가지를 시도했어요. 그중 화관 쓴 모습과 머리 푼 것이 선택됐고요. 원래는 그 2가지 중 하나로 결정하고자 했는데 감독께서 둘 다 마음에 들어 해서 염라의 본업인 재판을 주관할 때 화관, 본인이 주관하는 재판이 아닐 때(재판하는 장면이 아닐 때 포함)는 풀기로 했지요.”

덕분에 관객은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됐는데,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보고서야 그 중 어느 하나를 버리기란 불가능했을 만큼 이정재는 두 스타일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정재는 ‘신과 함께’ 팬들이 염라를 아끼고 그 비주얼에 주목하는 이유를 후배의 공으로 돌렸다. “센스 있는 정우가 염라언니(긴 생머리가 잘 어울려서), 염라스틴(머릿결이 좋다는 뜻의 염라+엘라스틴) 같은 별명을 지어 주니까 관객들께서 더 염라에게 눈길을 주신 거겠죠. 워낙 모든 배우 분들이 잘하셔서 함께한 것으로도 좋습니다”.

인기 얘기에 멋쩍어하는 그지만 ‘신과 함께’ 홍보에 열심인 모습에는 팬들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려는 진심이 보인다. 이정재는 “1편 때는 (제작보고회나 시사회, 방송촬영 등 여러 홍보 행사 자리의) 맨 끝에 그저 응원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2편에서는 중요 역할이기도 해서 인터뷰까지 하게 되네요. (V앱도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네, 그것도 하고요(웃음)”라면서 “저야 관객들 자주 뵈니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특유의 눈이 보이지 않는 하회탈 미소를 지었다. 

 

▲ 연기의 낡은 틀을 깬 영화 '오! 브라더스'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에 대한 감사함이


염라의 시작, 김용화 감독과의 ‘인과 연’

감독 김용화와 배우 이정재는 연출과 연기자로 만난 ‘오! 브라더스’(2003) 이후 나이를 떠나 세상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김 감독은 인터뷰 등에서 “내가 언제든 기댈 수 있고 무슨 얘기든 다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이정재”라고 말하곤 한다. 관계라는 게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 배우 이정재는 김용화 감독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 걸까. 그 대답 속에 ‘신과 함께’ 염라대왕의 시작이 있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가장 막역한 동료 중 베스트가 김용화 감독이에요. ‘오! 브라더스’ 때 제가 느낀 바가 많고 받은 게 많아요. 새로운 연기를 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오! 브라더스’ 리허설 때 대본 리딩을 하자고 해서 갔는데, 갑자기 ‘나 왜 이렇게 옛날 배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감독이 원하는 템포, 호흡과 제가 연기하는 템포와 호흡이 달랐어요. 근데 김 감독이 원하는 게 맞다는 걸 느꼈어요. 나 여기서 바꿔야겠구나, 우리 리허설 더 하자, 했죠.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1주일 연습실 빌려서 범수 형이랑 연극하듯이 스탠딩 리허설을 1주일, 하루 5~6시간씩 했어요. 제가 데뷔 10년쯤 됐을 때인데 ‘오! 브라더스’를 통해 낡은 옷을 벗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마움이 있어서 ‘오! 브라더스’ 끝나고도 자주 만나죠.”

“물론 매 작품마다 포인트가 되는 지점이 있죠, 그 가운데 연기적으로 큰 흐름을 바꾸는 지점이 있는 거고요. ‘오! 브라더스’ 전에는 ‘태양은 없다’ 때 김성수 감독, 정우성 배우 만나서 연기적으로 재미를 느꼈어요. 연기하는 게 재미있구나, 영화하는 게 재밌구나, 재미를 느끼니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영화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이후 시간의 흐름 속에 낡았진 것을 ‘오! 브라더스’를 통해 바꿀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터 연습량이 많아진 게 사실이에요. (연극 같은 스탠딩 리허설 통해) 연습량이 많으면 현장에서 훨씬 유리하구나, 알게 된 거죠. 연습 너무 많이 하면 자기 주관에서 벗어나지 못 해 좋은 건 아니다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작품마다 유연성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연습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자유롭게 상상력이 필요할 때는 현장에서의 즉흥성으로 연기하기도 해요.”

크지 않은 배역에도 ‘신과 함께’ 출연을 결정한 배경에 10년 묵은 옷을 벗게 해 준 고마움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국영화 사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친구의 작업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내가 조금 덜어 줄 방법은 없을까 하는 우정이 작용했다.

“사실 ‘신과 함께’ 프로젝트에 대해 좀 걱정이 있었어요. 1, 2편을 동시에 찍어요, 2주나 4주 정도 간격을 둔 동시개봉도 아니고 6개월 혹은 1년 뒤 2편을 개봉한다는 얘기를 듣고…1편 안 되면 2편 개봉 쉽지 않을 텐데 우려가 됐죠. 또 그동안 여러 번 카메오 역할을 제안 받고 응하지 못 했는데 상황이 쉬워 보이지 않다 보니 되레 거절 않고 했어요.” 

 

▲ 배우 이정재가 연기하는 멜로가 보고 싶다. 감독 이정재의 모습은 어떨까.


그리고 ‘염라’ 이후

배우 이정재를 기억할 작품들을 어찌 다 열거하랴. 드라마 ‘모래시계’를 비롯해 영화 ‘젊은 남자’ ‘태양은 없다’ ‘정사’ ‘인터뷰’ ‘시월애’ ‘순애보’ ‘오! 브라더스’ ‘태풍’ ‘하녀’ ‘도둑들’ ‘신세계’ ‘관상’ ‘암살’ 그리고 ‘신과 함께’ 관객 곁에 서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변함 없이 그를 배우로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연기가 재미있죠. 오래 했었던 거니까 많이 익숙해졌어요, 현장도요. 캐릭터 만들어서 발전시켜 가는 게 재미있어요, 지금도 그 재미가 커지고 있고요. 염라 할 때 재미있었어요, 이런 역할도 해 보는구나. 김 감독이 하자고 해서 했지만 시작하고 나니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천행이다. 25년을 하고도 아직도 재미가 성장 중이다. 타고난 재주가 열심히 하는 노력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이 즐기면서 하는 걸 넘을 수 없다지 않는가.

“나이 들수록 멋있는 배우(설문)에 꼽히는 것에 감사하죠. (웃음) 저도 나름 열심히 노력합니다. (진지하게) 젊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걸 보여 드리려는 노력은 항상 해요. 그런 노력이 보였다면, 그 부분을 좋게 봐 주신 게 아닌가 합니다.”

대중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나 기대에 부응하는 대상을 향해선 더욱 커간다. 아티스트 이정재에게 2018년 지금 개인적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언뜻 보면 귀족적인 것만 보이지만 한 발짝 다가서면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 남자, 나이 드는 멋을 아는 이 배우의 멜로를 보고 싶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대중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실 멜로를 바라고 그 가운데 이미숙(정사)에서 전도연(하녀), 심은하(인터뷰)에서 전지현(시월애), 김혜수(도둑들)와 교감했던 이정재의 멜로를 기다린다.

그리고 편집할 때면 알게 된다는, 편집 점까지 생각하며 시선과 동선을 처리하고 캐릭터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조망하며 연기한다는 만 25년 내공을 감독이라는 자리에서 운용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배우와 감독, 배우와 프로듀서를 비교적 자유로이 오가는 할리우드 등 해외 제작환경의 한국적 적용도 좋지 아니한가.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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