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 탄광 사고 진실 인양한 한일 시민 연대의 힘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1-13 17:30:45
한일, 유해 신원 확인 위한 DNA 감정 추진하기로
1942년 수몰로 조선인 136명 등 183명 사망 참사
사측, 제대로 된 시신 수습·보상 없이 사고 은폐
일본 시민들, '새기는 모임' 중심으로 추도 등 활동
2025년 한일 시민 연대 바탕으로 유해 일부 발굴

한일 양국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2월 3일 해저에 있는 이 탄광이 바닷물에 잠겨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지 84년 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정상 회담을 한 후 공동 언론 발표 자리에서 이 사고와 관련해 "양국은 동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 사항에 대해서는 당국 간 실무적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낼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 지난해 8월 29, 30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 탄광에서 민간 잠수 조사를 진행하는 모습. [일본 시민 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조세이 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우베 탄전에 속한 해저 탄광이었다. 전성기였던 1940년 우베 탄전에는 59개의 탄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였다.

이 탄광은 '조선 탄광'으로 불렸다. 탄광 숙소에 조선인이 다수 거주했기 때문이다. 1942년 6월까지 조선인 1258명이 이 탄광에 강제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66%인 831명이 경상북도 출신이었다.

조선인이 많이 동원된 것은 상당수 일본인이 이곳에서 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세이 탄광은 해저 갱도의 사고 위험성이 높고 노동 조건이 열악해 기피 대상이었다.

조선인들은 울타리에 둘러싸인 기숙사 생활을 강요받았다. 감독관이 기숙사 출입을 통제했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걸리면 끌려가 두들겨 맞았다. 그런 가운데 강도 높은 노동이 연일 계속됐다. 중소 규모이던 조세이 탄광은 1941년 우베 탄전에서 석탄 생산량 3위 탄광으로 올라섰다.

채굴 제한 구역에서 석탄을 캐게 하는 등 무리한 작업이 이어진 끝에 1942년 갱도가 무너지며 수몰 사고가 발생했다. 제대로 된 시신 수습이나 보상은 없었다. 사측은 사고 갱도를 소나무로 막고 콘크리트를 부어 폐쇄했다. 사고의 전모를 밝히려는 움직임은 회사 외부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진실은 은폐되고 사고 희생자들은 차가운 바닷속에 영원히 묻히는 듯했다.

상황을 바꾼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사고 34년 후인 1976년 우베시에 있는 고등학교의 역사 교사였던 야마구치 다케노부가 이 참사를 재조명하는 글을 지역 학술지에 발표했다. 참사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선인 희생자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1991년 일본 시민들은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을 결성했다. '새기는 모임'은 수몰된 사람 명부를 확보해 유족에게 연락했다. 이를 계기로 1992년 한국에서 유족회가 결성됐다.

추도식 개최, 증언과 자료 수집 등이 이어졌고 2013년에는 추도비도 세웠다. 남은 핵심 과제는 희생자 유해를 수습해 한국으로 봉환하는 것이었다. '새기는 모임'은 일본 정부에 유해 발굴을 거듭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기는 모임'은 유해 발굴에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해저에서 수십 년 전 발생한 참사 희생자 유해를 찾는 것은 난이도가 매우 높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시민 단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도전이었지만 성과를 얻었다. 2024년 수중 수색 작업을 시작했고, 지난해 8월 희생자 유골로 추정되는 사람 머리뼈 등 유해 4점을 수습해 물 밖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유해만이 아니라 가라앉고 잊혔던 참사의 진실을 인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한일 시민들의 연대였다. 2010년대부터 '새기는 모임'과 함께하는 한국 시민 단체 활동이 늘었다. 종교계에서 대한불교관음종도 합류했다. 발굴 비용 마련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은 한일 양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두 나라의 수중 작업 전문가 가운데 유해 발굴에 자원해서 합류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일부 유해를 수습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양국,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때다. 일본 정부가 이번 정상 회담을 계기로 유해 추가 발굴 등의 사안에서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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