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출생률? 출산율?…용어도 불분명한 정부 대책

유충현 기자 / 2024-06-21 17:29:26
정부합동 발표에 '출산'과 '출생' 명확한 구분없이 사용
인구학자들 "저출산과 저출생은 바꿔 쓸 수 없는 개념"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출산이 맞지 않나요. 쭉 그렇게 알았는데 왜 출생으로 바뀐 거죠." 

 

정부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지난 19일, 관련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 한 독자가 남긴 댓글(네이버 아이디 hap****)이다. 충분히 가질 법한 의문이다. 정부, 학자, 국민 대다수가 여태껏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오랜 기간 익숙하게 써 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용어가 명확하지 않을 때 국민이 혼란을 겪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번 대책은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발표했다. '저출산' 위원회에서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으니 이상하긴 하다. '출생'과 '출산'은 관계부처 합동 자료에서도 번갈아 나온다. 총 51쪽짜리 자료에 출산이 97번, 출생이 114번 등장한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인구위기 상황을 '출산율 통계'로 설명했지만 대응 방안으로는 '저출생대응기획부'와 '저출생수석실'을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 진단에 동원된 개념과 해결에 동원된 개념이 따로 논다. 

 

정부가 둘 중에서 '저출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정치적인 용어선택이다. 최근 여성계 일각에서 제기된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이들은 '출산'이라는 단어가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인식을 갖게 하므로, 태어나는 아기에 초점을 둔 '출생'으로 바꿔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사실 두 개념은 엄연히 다르다. 출산율이라고 하면 보통 합계출산율을 뜻한다. 출산율의 대표적 지표인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15~49세)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출생률은 그해에 태어난 신생아 수를 인구로 나눈 지표다. 애초에 서로 정의가 다르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출생률과 출산율의 방향성이 어긋날 수도 있다. 출생율이 오르지만 출산률이 떨어지는 상황도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정부 정책의 언어는 적확해야 한다. 정책 언어가 법과 제도에 반영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조문 하나하나가 국민의 삶에 다른 영향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용어 한끗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며 어물쩡 넘어간다면 예상치 못한 뒤탈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출생률 반전'을 이번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 잘 한 걸까. 예컨대 20년 뒤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현재보다 높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정부 정책이 그때쯤 먹혀들어서가 아니다. 인구구조상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출생률이 조금 올라봐야 인구절벽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생률과 별개의 차원에서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여전히 낮을 것이다. 청년들이 느끼는 경쟁 압박과 고용불안,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그로 인한 박탈감은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낮은 출산율을 목격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정부는 '우리의 목표는 출생률이었으니 정책이 성공한 것'이라며 좋아할 것인가.

 

전문가들도 같은 문제인식을 공유한다. "출산율이라는 단어가 기분나쁘다고 해서 출생률로 바꿔 쓸 수 없다"(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저출산은 저출산이고 저출생은 저출생"(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라는 것이다. 

 

김근태 고려대 공공사회학과 교수도 "수백 년 동안 그렇게(저출산으로) 써 왔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다 같은 기준을 사용한다"며 "인구학을 연구하는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산'은 이미 널리 쓰이면서 의미가 굳어진 용어다.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무언가가 아니다. 정 불편하다면 차라리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붙일 일이다. '출생'으로 바꿔쓰거나 혼용할 수는 없다. 젠더 문제의 민감성을 감안해 단어를 신중히 골라야 했던 정부 입장도 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출산 정책은 앞으로 두고두고 국가 미래에 영향을 줄 과제다. 용어 정리조차 제대로 안 됐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 유충현 경제산업부 기자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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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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